떠나볼까 미국 여행 - 12. 북마리아나제도
사이판 대형 리조트 벗어나 렌터카로 구석구석
깎아지른 절벽 앞 ‘새섬’ 등 덜 알려진 비경 많아
바다 동굴 그로토서 스쿠버다이빙…탄성이 절로
때 묻지 않은 자연·아픈 역사 간직한 티니언
천연분수 ‘블로홀’ 바닷물 10m 높이로 치솟아
섬 남쪽엔 강제징용 한인들 뛰어내린 자살절벽
태평양에 떠 있는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를 아시는지. 휴양지 사이판은 익숙해도 사이판이 섬 14개가 모여 있는 제도(諸島)의 일부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마리아나제도에는 일찌감치 관광지로 개발된 사이판 말고도 흥미로운 섬이 많다. 사이판에서도 리조트 단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어느덧 ‘떠나볼까 미국여행’ 연재의 마지막 순서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인 북마리아나제도를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을 전해 드린다. 겨울은 태평양의 작은 섬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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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 여행 즐기고 스쿠버다이빙까지
사이판은 작다. 면적이 115㎢로 제주도의 6% 수준에 불과하다. 한데 한국인은 이 섬을 더 좁게 여행한다. 대부분 대형 리조트에서 머물다가 여행사의 섬 일주 관광 프로그램을 즐기는 정도다. 구석구석 숨은 섬의 매력을 발견하고 싶다면 직접 차를 빌려 보길 권한다. 사이판에서는 한국면허증이 통용되므로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렌터카 사무소를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거리·속도 단위가 ㎞가 아니라 마일이고, 신호 없는 사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보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것 정도만 주의하면 된다. 도로 폭이나 주차공간이 한국보다 넓고, 중심가인 가라판 외에는 어디를 가나 한산하다.
불과 몇 해 전까지는 하루나 반나절 차를 빌려 면세점 쇼핑을 즐기고 섬을 바쁘게 둘러보는 이가 많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2~3일 빌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차가 있으면 그냥 ‘호텔 앞 해변’이 아니라 관광객이 적은 근사한 해변을 찾아갈 수 있다. 사이판 최대 번화가인 가라판 근처에 있는 마이크로비치뿐만 아니라 섬 동쪽 오브잔비치·래더비치를 방문하거나 섬 북서쪽의 한적한 파우파우비치 등을 들를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 명소로 통하는 라우라우비치는 진입로가 비포장도로여서 ‘오프로드 운전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버드아일랜드도 차를 타고 가 볼 만한 명소다. 깎아지른 절벽 앞에 있는 작은 섬인데, 이 주변에 많은 새가 찾아와 ‘새섬’이라고 부른다. 맥주 거품처럼 부서지는 파도를 배경으로 온갖 새가 지저귀며 날아다닌다.
차가 있으면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편하다. 미국 본토만큼 식당이 다양하진 않아도 입맛에 따라 선택할 만한 곳이 의외로 많다. 참치회가 유명한 일식당 ‘긴파치’, 가격이 저렴한 편인 태국식당 ‘스파이시 타이 누들 플레이스’, 소금을 넣은 커피가 유명한 ‘차 카페’ 등을 들를 만하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 ‘가라판 스트리트마켓’에 가면 현지인 틈에 섞여 갖가지 구이요리와 열대과일 음료 등을 맛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바다에서 놀기 위해 사이판을 찾는다. 마스크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물위에 떠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스노클링이 가장 인기지만, 이왕이면 바다 깊이 잠수하는 스쿠버다이빙을 해 보자. 현지 교육업체에서 자격증을 따도 좋고, 체험 다이빙만 해 봐도 된다. 필리핀이나 태국 등의 다이빙 명소와 비교했을 때 사이판 바다는 화려한 산호와 희귀 어종은 적어도 압도적으로 맑은 수중 시야를 자랑한다.
2017년 11월 사이판에서 스쿠버다이빙 입문 자격증을 땄다. 슈가덕비치·라우라우비치에서 기초교육을 마친 뒤 바다 동굴 ‘그로토’에서 다이빙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로토는 동굴 3개가 이어진 독특한 지형으로, 다이버 사이에서는 한 번쯤 가 봐야 할 버킷리스트로 꼽힌다. 그로토는 진입로부터 험난하다. 무거운 다이빙 장비를 이고 100개 이상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깎아지른 석회암 절벽 아래 우물처럼 고인 채 출렁이는 바다가 나타난다.
물에 풍덩 빠진 뒤 잠수를 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짙은 감색 바다와 웅장한 동굴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 물속에서도 탄성이 터진다. 바위틈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최근 그로토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한국인이 많은데, 물에 둥둥 뜬 채로는 이런 장관을 볼 수 없다.
아픈 역사 품은 아름다운 섬
이제 이웃 섬으로 가 보자. 먼저 티니언섬.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를 타면 15분 만에 도착한다. 놀라지 마시라. 대형 리조트가 줄지어 있는 사이판과 달리 티니언은 한국의 낙도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숙소·식당·편의시설 등 모든 인프라가 열악하다. 로타섬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 모든 걸 감수하고 찾아갈 가치가 충분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어서다. 참고로 티니언이나 로타를 가려면 여행사의 일일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빌려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된다.
티니언에도 멋진 바다가 많다. 타가비치·타촉냐비치 등은 사이판의 여느 바다보다 맑고 한가롭다. 관광 성수기나 주말이 아니라면 바다를 독차지하고 놀 수 있다. 북서쪽 출루비치는 모래가 특별하다. 별처럼 생긴 작은 모래 알갱이가 반짝인다. 죽은 산호가 오랜 세월 파도에 갈리고 깎여 별 모양이 됐다고 한다. 섬 북동쪽에는 바닷물이 10m 높이로 치솟는 천연분수 ‘블로홀’이 있다. 갯바위에 지름 50㎝ 구멍이 있는데, 파도가 칠 때마다 물이 솟구친다.
섬 남쪽에는 자살절벽이 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섬을 점령했던 일본군과 민간인 수천 명이 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내린 결정이었다. 민간인 중 상당수는 강제징용된 한국인이었다. 산호세마을에 한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섬을 점령한 미군은 1년 뒤인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바로 티니언 공군기지에서 B-29기에 실은 원자폭탄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다.
북마리아나제도 최남단에 자리한 로타를 가려면 역시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를 타야 한다. 로타 역시 멋진 바다가 섬 곳곳에 포진해 있다. ‘스위밍홀’이 대표적이다. 지름 약 20~30m에 이르는 타원형 천연 수영장이다. 에메랄드빛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놀거나 해변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기 좋다. 테테토비치도 유명하다. 모래사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거대한 산호밭이 나타나는 청정 해변이다.
일몰시간에는 테테토비치 인근 송송전망대에 올라 보길 권한다. 전망대에서는 ‘송송마을’과 마을 뒤편에 솟은 ‘웨딩케이크산’, 쪽빛 바다가 한눈에 담긴다. ‘송송’은 원주민 언어인 차모로어로 마을을 뜻한다. 웨딩케이크산은 결혼식 때 쓰는 2단 케이크처럼 생겼다. 이름도 생김새도 참 귀엽고 친근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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