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도법 바로 알기 - 전쟁범죄와 군 지휘관의 책임
민간인 고의 공격 이스라엘 책임자로
네타냐후 총리·갈란트 전 장관에 영장
필리핀인 학살행위 ‘지시 증거’ 없이도
야마시타 日 제14집단군 사령관 ‘사형’
부하의 범죄 묵인·의도적 회피도 책임
단, 지휘관이 직면한 상황 종합적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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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은 지난 5월 20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당시 국방장관의 체포영장을 ICC 전심 재판부에 청구했다. 11월 21일 전심 재판부는 “민간인을 고의로 공격한 것으로 간주되는 두 사건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장관이 전쟁범죄 실행을 예방 또는 억제하거나 권한 있는 당국에 그 문제를 회부하기 위한 조치를 할 수 있었음에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기에 민간인 상급자로서 형사책임을 져야 할 근거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장관은 직접 전쟁범죄를 실행하지 않았음에도 왜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을까? 몇 가지 쟁점사항을 Q&A 형태로 정리했다.
Q1)국제형사법상 지휘책임이란 무엇인가.
A)지휘관은 전쟁법상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부하가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른 부하를 처벌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지는 책임이 바로 지휘책임이다. 부하에게 전쟁범죄를 지시해 실행하게 한 전쟁범죄 교사범과는 별개의 개념이고, 형사책임이란 점에서 부하의 범죄 등에 대해 상급 지휘관이 지는 징계책임과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Q2)실제 지휘책임이 인정돼 처벌된 지휘관이 있나.
A)지휘관이 처벌된 사건은 많다. 그 가운데 야마시타 도모유키 사건이 최초이자 대표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마시타가 1944년 10월 초부터 태평양전쟁 종전까지 일본군의 제14집단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일 때 일본군은 필리핀의 루손 지역과 마닐라 등지에서 수많은 학살행위를 했다. 야마시타가 직접 학살하거나 학살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었음에도 그는 부하들이 저지른 학살행위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국 군사위원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미국 군사위원회는 “살인이나 강간 또는 악의적 보복행위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음에도 이를 식별하거나 통제하고자 하는 효과적인 시도를 하지 않은 경우, 범죄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부하의 불법행위에 지휘관은 형사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야마시타 지휘하에 있던 일본군이 필리핀 열도 전역에서 민간인과 포로에게 오랜 기간 중대범죄를 저질렀고, 일본 장교 또는 부사관의 감독하에 이뤄진 범죄행위가 많았기에 유죄를 선고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지휘관에게는 포로와 민간인 보호를 위해 자신의 권한 내에서 그 상황에 적합한 조치를 취할 작위의무가 있는데, 야마시타는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전쟁법규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Q3)지휘책임이 인정되는 사람은.
A)군 지휘관이나 사실상 군 지휘관으로 행동하는 사람, 또는 대통령·장관 등의 민간인 상급자가 일정한 조건하에 지휘책임을 질 수 있다. 지휘책임을 지는 군 지휘관에는 우리나라 군형법과 달리 소대장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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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지휘책임은 어떤 경우에 인정되는가.
A)지휘책임은 국제법규와 판례로 형성되는 법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부하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전쟁범죄를 저지른 경우 부하에게 전쟁범죄를 저지르라고 지시한 지휘관은 전쟁범죄 교사범으로 처벌되지만, 이는 지휘책임이 아니라 전쟁범죄를 지시한 불법행위의 형사책임이다.
둘째, 부하가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알았으나 지휘관이 묵인한 경우 또는 부하가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비록 일정한 요건이 요구되긴 하지만 지휘관은 지휘책임을 진다.
셋째, 부하가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묵인에 가까울 정도로 내버려 둔 경우 유고 전범재판소(ICTY)와 르완다 전범재판소(ICTR)는 “자신의 부하가 전쟁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았을 만한 사유가 있는 때는 그러한 위반을 방지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합리적 조치를 취하지 못한 그 상급자의 형사책임을 면제시키지 않는다”고 하여 ‘알았을 만한 사유가 있는(had reason to know)’이라는 기준을 적용했다.
이 기준에 의할 때 군 지휘관은 부하의 범죄에 관해 ‘알아야 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므로 상급자는 부하의 범죄를 알려 줄 수 있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는 처벌되지 않고, 그러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의도적으로 그 정보를 피한 경우 책임을 지게 된다.
Q5)만약 지휘책임이 인정될 경우 어떻게 처벌되나.
A)ICC는 보충적 관할권을 가지므로 관할권이 있는 국가가 우선적으로 자국의 법을 적용해 재판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와 15조에 의해 처벌되는데, 우리나라 법률이 부하의 집단살해죄 등을 방지 또는 제지하지 못하거나 과실한 경우까지 다소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어 이의 재논의가 필요하다.
만일 관할권을 가진 국가가 처벌하지 않는 경우 ICC가 해당 지휘관 등을 기소해 처벌하게 된다. 이때는 ICC의 기본법인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로마규정)이 적용된다.
로마규정상 군 지휘관 또는 사실상 군 지휘관의 지휘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선 △명령·복종 관계가 존재할 것 △해당 지휘관은 부하의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실효적 지휘와 통제권을 갖고 있을 것 △그 지휘관이 부하의 범행을 방지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또는 그 사항을 수사·기소 목적으로 권한 있는 기관에 회부하기 위해 권한 내의 모든 필요하고 합리적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것 △이 같은 의무 불이행으로 부하의 범행이 발생했을 것 △그 지휘관이 부하가 범행을 범하고 있거나 범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당시 정황상 알았어야(should have known) 할 것이라는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Q6)지휘책임의 인정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어차피 어떤 지휘관도 지휘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모두 처벌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A)지휘관이 처분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건 아니다. 벰바 캄보 사건에서 ICC 항소심 재판부의 다수의견은 비례성과 실행 가능성을 고려해 지휘관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러한 입장에 의할 때 재판부는 지휘관이 직면했던 당시 작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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