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 트럼프 2.0 시대의 글로벌 안보 ①
이라크전 후 미국 주도 국제 질서 변화
타국에 민주주의체제 강압 실패 입증
중·러 급부상…세력 균형 필요성 대두
극단적 자국 중심주의 대외정책 펼 듯
동맹·우방국 방위보다 국익 챙길 수도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등 제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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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제47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2016년 대선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이러한 트럼프 2.0 시대의 출범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 대전략(grand strategy)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투영된 결과다.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이 극단적 자국 중심주의에 기반한 대외정책 추진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안보적 파급효과에 주목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냉전·탈냉전기 미국의 대전략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국은 ‘자유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에 기반한 패권 질서를 구축했다. 이는 법치·합의·개방성에 기반한 미국의 자유주의적 정체성을 글로벌 질서 차원에서 제도화한 결과다. 특히 미국은 압도적 능력을 자유주의 이념과 결합해 경제와 시장을 개방적으로 운영하면서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다른 국가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미국 주도의 자유 국제주의 질서는 냉전기와 탈냉전기를 거치면서 진화했다. 우선 냉전기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공통성을 지닌 서유럽 국가들과의 합의로 특권적 리더십을 인정받았으며, 서유럽은 미국의 대소련 체제 경쟁을 조력하는 기반이 됐다. 그 대신 미국은 안전보장과 시장 개방 등의 공공재를 제공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국제통화기금(IMF) 등 일련의 국제제도를 출범시켰다. 미국은 이러한 냉전기의 국제 질서를 주도하면서 군사·정치·경제·심리적 수단을 총동원한 대소련 봉쇄정책(strategy of containment)을 추진했다.
이러한 봉쇄정책이 소련의 해체로 연결되면서 미국의 일극(unipolar) 시대로 규정된 탈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미국은 패권과 동맹이라는 현실주의적 요소와 자유주의적 이념을 결합한 대전략을 수립했다. 즉 일극체제의 국제정치적 안정성을 강조한 패권안정론의 논리를 기반으로 동맹·우방국의 중요성에도 주목한 것이다.
이와 함께 1992년의 국방기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에 따라 미국의 핵심 이익지역에서 지역 패권주의의 부상을 방지하면서 역내 질서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균형자 역할도 했다. 그 결과 대서양에 한정됐던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글로벌 차원으로 확산했으며, 중국 등 비서구 국가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미국 대전략의 위기와 대안
탈냉전기 일극체제는 미국이 원하는 바를 대외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는 유례없는 우호적 환경을 제공했다. 미국 대전략을 견제할 세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일극체제의 국제 질서는 자유 국제주의 질서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국제체제의 근간인 세력 균형과 주권 불가침의 원칙에 변화를 수반해서다. 즉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세력 불균형을 초래한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원칙의 대외적 전파 과정에서 내정불간섭 원칙이라는 국가 주권의 규범을 침해할 가능성도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자유 국제주의 질서의 위기는 2001년 9·11테러를 통해 단적으로 표출됐다. 극단주의 집단의 테러라는 새로운 유형의 안보 위협을 겪은 미국이 기존 국제 질서 운용의 근간인 합의 방식 대신 일방주의적 개입주의의 대외정책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일방적으로 사용한 사례로 지목되면서 자유 국제주의 질서와 관련한 미국의 공약이 유지될 것인지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초래했다. 그 결과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대한 신뢰성 하락과 질서 작동에 필수적인 파트너십의 약화가 발생했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대외 개입정책의 실패가 필연적이라는 현실주의 진영의 비판도 제기됐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2003년 이라크전쟁은 타국의 민주주의체제 전환을 강압하는 프로젝트의 실패가 필연적임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다. 오히려 이런 대외정책 프로젝트는 민족주의적 저항을 초래하면서 개입비용이 매우 커지게 된다. 세력 균형의 논리에 따른 미국 견제 행보도 본격화할 수 있으며, 미 자유주의의 국내적 정당성 훼손도 불가피하다.
이러한 비판에 따라 미국 대전략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기존의 대전략을 현실주의 기반의 대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실주의 대전략에 기반한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실패가 필연적인 자유주의적 개입 프로젝트를 지양할 수 있으며,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서다.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부활로 대표되는 다극체제로의 전환 가능성 역시 세력 균형에 기반한 현실주의적 대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정당화했다.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 대외정책
2016년 11월의 미국 대선 결과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를 내세운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렇게 출범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미국이 직면한 안보환경을 점증하는 정치·경제·군사적 경쟁의 시대로 규정했다. 특히 수정주의적 경쟁국인 중국·러시아를 최우선적인 도전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전략경쟁의 도래에 따라 미국은 기존에 견지해 온 대외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원칙적 현실주의(principled realism)’에 기반을 둔 국가 안보전략을 천명했다. 이념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면서 미국의 국가 이익을 명확히 정의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국가 안보전략은 탈냉전기 미국 대전략의 위기에 주목하면서 현실주의적 대전략에 토대를 둔 대외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극단적인 자국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미국 안보에 치명적 영향을 초래하지 않는 국가들의 안전보장엔 소극적 모습을 보여 주면서 미사일방어와 사이버 역량 확충 등을 하면서 본토 안보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국익과 무관하다고 판단하면서 동맹·우방국 방위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의 국익과 직접 연관되는 범위 내에서 항행의 자유와 같은 공공재 제공의 범위를 제한할 가능성도 있다.
거래적 접근법에 따라 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면서 비용 분담의 논리를 압박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따라서 국방예산의 대대적 증액 요구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등의 이슈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동맹의 관점에서도 주목해야 하는 현안이다.
2020년 11월 미 대선을 거쳐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 국제주의 질서의 복원을 천명하면서 일련의 대외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그 추동력이 상실됐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나토 동맹국 등 자유 국제주의 질서의 가치를 내재화한 국가를 중심으로 트럼프 2.0 시대의 자유 국제주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시도가 본격화할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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