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 교회 앞에는 화단이 2개 있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어난다. 누군가 심어 놓은 씨앗 덕분에 매년 꽃이 피지만, 이제는 그 씨앗을 누가 심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처음 그 씨를 심었던 이는 이 작은 화단이 이렇게 오랜 세월 계절마다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 줄 알았을까? 어쩌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지나가며 뿌린 씨앗이 지금의 화단을 이루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떤 기대를 품었든, 중요한 것은 지금도 이 화단이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시 ‘말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의 말이 마치 씨앗과 같다고 표현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우리는 수많은 말을 하며 살아간다. 더러는 별 의미 없이 허공 속으로 흩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해인 수녀의 말처럼 누군가의 가슴속에 남아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한 말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그녀의 말처럼 왠지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박준 작가는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산문에서 말에 관해 이렇게 썼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그는 덧붙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해인 수녀가 말을 씨앗에 비유하며 누군가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다면, 박준 작가는 말은 죽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살아남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두 사람의 말은 표현만 다를 뿐 그 의미는 같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계속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현듯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력을 가진 씨앗과 같다. 말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아프게도 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서로에게 더 좋은 씨앗을 심고 있는지, 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오늘의 말이 내일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씨앗이 될 수 있도록.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말과 글이 단순히 머릿속에만 남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다고 얘기한다. 그는 마음에 깊이 새겨진 언어는 지지 않는 꽃과 같아 그 꽃을 바라보며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반대도 가능하다. 우리가 뿌려 놓은 말의 씨앗이 따뜻한 꽃으로 피어나지 않고, 끊임없이 마음을 찌르는 가시나무로 자라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우리 교회 화단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며 가을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부디 우리의 말도 교회 앞 화단에 뿌려진 씨앗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인생의 계절마다 위로와 위안을 주는 언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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