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스테이지 - 연극 ‘더 파더’
프랑스 희곡이 원작
국민배우 캐스팅해 흥행
전무송이 기용된 이유
대사에 치매 언급 없이
‘파더’ 시선으로 본 일상
긴장감에 눈 뗄 수 없어
끝내 드러난 진실은…
딸 전현아와 첫 부녀 연기
말다툼 장면 등 실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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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노인을 잘 보살피자’는 계몽연극인 줄 알고 갔다가 뒤통수를 호되게 맞았다. 스릴러물을 보듯 마지막까지 주먹을 쥐고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연극 ‘더 파더(The Father)’. 한국어 제목에까지 굳이 ‘더(The)’를 넣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지금도 풀리지 않지만, 평범한 ‘파더’는 확실히 아니었다.
한국 연극사의 대배우로 칭송받는 전무송 출연작이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 연극은 예로부터 효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작품인 듯하지만, 실은 프랑스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이 원작이다. 이 작가는 ‘더 파더’에 앞서 ‘더 마더’를 썼다. ‘부모님 2부작’인 것이다. 이 작품이 한국과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흥행작이 된 비결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스타 기용 시스템이었다. 두 작품 모두 그 나라에서 연극 경력이 많은 국민배우를 캐스팅해 화제성을 높였다. 전무송이 이 연극을 하게 된 강력한 이유다.
알고 보러 가면 좋은 정보 하나 더. 아버지 ‘앙드레’를 돌보는 딸 ‘안느’ 역의 전현아는 알려져 있듯이 전무송의 친딸이다. 아버지에 비할 순 없지만 전현아 역시 연극무대를 기반으로 영화·드라마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자신의 연기 세계관을 형성해 온 명배우다. 전무송과 전현아가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은 몇 번 있지만, 부녀 역할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더 파더’가 특별한 것은 치매환자의 시선으로 극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가상현실(VR) 고글을 쓰듯 앙드레의 시선으로 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프랑스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사는 앙드레는 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스러워진다. 5년 전 이혼한 딸 안느는 자신을 혼자 두고 새로 사귄 남자의 직장이 있는 영국 런던으로 가겠다고 하고, 우여곡절 끝에 파리의 딸 집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안느의 새 남자 피에르의 태도는 차갑기만 하다. 시계를 훔쳤다고 오해해 쫓아낸 간병인 대신 새로 온 ‘로라’는 연락 두절된 딸 앨리스와 혼동할 정도로 닮았고, 그나마 일상을 통제할 수 있게 해 줬던 손목시계는 사라져 버렸다. 결국 요양시설까지 오게 된 앙드레는 자신의 존재에 의구심마저 들며 어린애처럼 울고 만다.
간략한 설명이지만, 극은 앞서 말한 대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스릴감으로 가득하다.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감이 무대를 옥죈다. 치매노인의 눈으로 본 세상은 관객에게 ‘알고 있는 진실’과 ‘왜곡된 진실’ 사이에서 몸을 떨게 만든다.
그런 눈으로 보고 있자니 무대도 범상치 않다. 무대 세트는 연극답게 단출하다. 가운데에 앙드레가 주로 앉아 있는 소파가 있고, 그 앞쪽에는 첫 장면에서 안느가 꽃을 꽂아 놓는 화병이 있다. 암전 후 종종 이 소파와 화병의 각도가 틀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여기엔 상당히 흥미로운 연출이 숨겨져 있다. 기본적으로 소파가 객석에서 바라볼 때 세로로 틀어져 있을 경우 요양시설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물론 앙드레의 시선에서는 자신의 아파트 또는 딸의 아파트로 보이기에 관객도 속을 수밖에 없다.
화병의 꽃은 활짝 피었다가 시들었다가 아예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데, 이 역시 자신을 잃어 가는 앙드레를 상징한다. 비슷한 의미로 문틀 위의 촛불이 있다.
놀라운 것은 연극 내내 단 한 번도 ‘치매’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에르가 ‘환자’를 언급하지만, 그것도 딱 한 번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건의 진실을 아무도 입으로 꺼내지 않는다는 묘한 긴장감도 만만치 않다.
전무송·전현아 부녀 배우가 보여 주는 연기의 합만으로도 이 연극을 보러 갈 가치는 충분하다. 두 사람은 무대에서 멋진 부녀이자 동료이자 사제지간이었다. ‘정말 연기 잘한다. 진짜 부녀 같아’ 생각하다가 ‘참, 진짜 부녀지’ 하고 화들짝 놀라 버린 장면도 있다(특히 말다툼하던 장면이 그랬다).
아버지 전무송은 딸 전현아에게 이러쿵저러쿵 연기 조언(잔소리일지도) 같은 것을 할까. 실례를 무릅쓰고 딸에게 질문해 봤다.
“그게 무척 우스운데요. 서로의 연기는 터치하지 않습니다(웃음). 아버지께선 ‘그 대사 분명히 해. 안 들려’ 하시는 정도?”
마지막으로 VR 고글을 벗고 관객의 시선으로 돌아온다. 안느는 남편 피에르와 10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런던에서 지낸다. 그토록 보고 싶은 둘째 딸 앨리스는 몇 년 전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이 연극은 2021년 영국·프랑스 합작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대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아버지 ‘안소니’ 역를 연기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딸 ‘앤’ 역의 올리비아 콜먼은 ‘미나리’ 윤여정과 여우조연상을 놓고 마지막까지 경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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