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31- 2012년 국군교향악단 베트남 공연
연예병사로 구성된 홍보지원대
숙소 오갈 때면 고막 찢을 듯 팬 함성
아미 시어터 등서 열정적인 무대
한국국제학교선 교민들에 추억 선물
지하 10m·3층 규모 땅굴 모형에 놀라
오토바이·차량 난무 거리 횡단 스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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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 1일 한국 외교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가 세워졌다. 정부 수립 41년 만에 사회주의 국가와 처음으로 수교를 맺은 것이다. 대상은 헝가리. 이어 폴란드, 유고슬라비아와도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다음 해인 1990년 10월에는 러시아(당시 명칭 소련), 1992년 8월에는 중국, 12월에는 베트남과 수교했다. 평화통일 조성과 국가적 실리 추구를 위한 외교정책 변화의 결과였다.
이들 국가 중 하나인 베트남에 가게 된 것은 수교 20주년을 맞은 2012년 3월. 베트남 정부의 공식 초청에 따른 국군교향악단 공연에 동행하게 된 것. 2010년 창단된 국군교향악단은 육·해·공군 장병과 군무원으로 구성된 세계 유일의 군 오케스트라다. 국군교향악단이 외국 정부의 초청으로 해외 연주에 나서는 것은 창단 이후 그때가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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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교향악단과 육군전통악대, 이른바 ‘연예병사’로 불린 홍보지원대 등 92명으로 편성된 공연단이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발을 디딘 것은 2012년 3월 18일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비느님(비+하느님) 사랑해요’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플래카드 옆에 모여 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 당시 홍보지원대는 정지훈(비) 일병을 비롯해 최진(미쓰라진) 병장, 김지훈·박효신·유승찬 상병, 강창모(KCM) 이병 등 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숙소에 오갈 때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 우리 스타를 사랑해줘 고마웠다.
숙소에 짐을 내린 후 첫 일정으로 하노이 시내 군사박물관을 찾았다. 입구에는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이 새겨진 커다란 부조 작품이 있었다. 호찌민 주위로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이 외세에 맞서 싸운 모습이 표현돼 있다. 30m 높이의 깃발탑에 올라갔다. 평지인 하노이에서 전망대 역할도 했다는 탑이다. 야외 전시물 중에는 특이한 생김새의 항공기도 있다. 처음에는 추락한 항공기를 그대로 전시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베트남전쟁 당시 추락한 미군 항공기 4000여 대의 부품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전시된 땅굴 모형은 놀라움을 자아냈다. 전쟁 때 만들어 사용했다는 땅굴은 지하 10m 깊이에 3층 규모였다. 1층은 지하 1~2m, 2층은 5~6m, 3층은 8~9m에 있다. 문득 궁금했다. 북한과 베트남 중 어느 나라가 땅굴을 더 잘 팔까?
본격적인 초청 공연은 19일 국가 소유 극장인 아미 시어터(Army Theater)에서 막이 올랐다. 21일에는 하노이 오페라하우스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또 ‘찾아가는 연주회’로 군예술음악대학, 베트남 군악대, 한국국제학교, 한국문화원에서 공연했다. 특히 한국국제학교 공연은 교민들에게 남다른 감정과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교민 자녀들은 7년간 다른 학교에서 셋방살이하다 건물을 신축했고, 지난 3월부터 자체 건물에서 수업하고 있다. 그런 기쁨이 남아 있는 가운데 고국에서 날아와 공연까지 했으니 감동이 더 컸으리라.
중간중간 소규모 연주회도 열었다. 사실 소규모 연주회는 일정에 없었다. 원래 계획은 세계적인 명소인 하롱베이 관람이었다. 하지만 군사문화 교류를 위해 공연하러 간 군인들이 관광이나 하고 다니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정이 바뀌었다.
군인이 아닌 나는 그래도 시간을 내 거리를 둘러봤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지다. 모두 자연스럽게 오토바이를 즐긴다. 차량이 수입돼 예전보다는 줄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아 보인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함께 타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무질서 가운데 질서라고 해야 할까? 틈만 나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좌회전, 유턴을 한다. 자동차도 예외가 없다. 그러다 뒤섞이곤 하는데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용하다. 대신 과속은 보지 못했다. 다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오토바이와 차량이 난무하는 거리를 무단횡단하는 장면도 자연스럽다. 거리를 건너는 요령을 배웠다. 일단 운전사들과 눈을 마주치고, 평소 걷는 것처럼 움직여야 한다. 나도, 상대방도 예측할 수 있게. 처음에는 거리를 건너는 게 두려웠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재미와 스릴이 느껴졌다.
베트남 전통의 수상인형극도 관람했다. 10여 편 정도로 구성됐는데, 말도 안 통하고 내용을 모르니 답답했다. 그동안 피곤이 몰려왔는지 깜빡 잠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같이 간 일행과 이야기해 보니 대부분 졸았다고 한다. 다행이다. 왠지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이 생겼다.
22일, 하노이 체류 마지막 날이다. 오전 10시 숙소 로비로 내려갔다. 전날 홍보지원대 병사들에게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에서 만나 단체사진을 촬영하자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가는 법이 없다. 약속 시간에 한 명도 내려오지 않았다. 빨리 사진을 찍어 송고해야 하는데. 안 되겠다 싶어 방으로 가보니 모두 뻗어 있었다. 베트남에 있던 지인이 공연하느라 수고했다며 음식을 대접했고 이로 인해 늦게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 사정을 듣자니 속만 타들어 갔다. 사진을 찍어야 하니 1시간 뒤 내려와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맞춰 내려온 병사들을 보니 얼굴에 뽀송뽀송 윤이 났다. 프로는 역시 다르구나.
그런 일들이 있은 지 12년이 흘렀다. 이후 베트남을 다시 가보지 못했지만, 기억은 선명하다. 특히 길거리에서 마신 커피의 강렬했던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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