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은 아련한 종목이다. 어린 시절 얽힌 추억이 적지 않다. 비극으로 남은 기억도 있다. 영화 일을 하는 아버지 덕택에 어려서부터 TV로 ‘주말의 명화’나 ‘토요 명화’를 자주 시청했다. 가장 좋아했던 작품 가운데 하나가 ‘록키’(1976)다. 복싱영화다. 국내에선 1977년 개봉했다고 한다. TV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건 1980년대 초반이 아니었나 싶다.
복싱에 재능은 있으나 뒷골목 건달에 가깝게 살아가던 주인공이 세계 챔피언과 맞붙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게 되고, 부단한 훈련 끝에 세간의 예상을 깨고 선전을 펼친다.
무명 복서가 세계 챔피언을 링에 눕혔더라면 그저 그런 작품이 됐겠으나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이 담긴 결말로 향한다. 세계 챔피언은 주인공을 만만하게 보다가 혼쭐나지만 결국 판정승을 거둔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부은 주인공은 경기 뒤 링에서 애절하게 여주인공의 이름을 외친다. 빌 콘티의 음악이 이 장면을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이후 여러 번 ‘록키’를 봤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 뭉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이 챔피언과의 대결을 앞두고 훈련하며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 계단을 뛰어오르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복싱을 두 번째로 가슴 깊숙이 각인한 건 한 권의 책이다. 집에서 한가로이 빈둥대던 초등학교 시절 책장에서 『빛을 내리소서』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WBA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출신 김태식의 자서전이었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을 뜨겁게 달군 한국의 복싱 영웅이었다. 돌주먹에 화끈한 인파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 17승(13KO) 3패의 전적을 남기고 링을 떠났다.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태식이 원했던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자서전이 출간됐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지만, 처음 책을 펼쳤을 때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 그리고 너무나 가슴 아팠던 김득구의 비극. 1982년 11월 어느 일요일이었다. 일요일 오전은 ‘은하철도 999’ ‘천년 여왕’ 등 TV 애니메이션 시간대였는데, 그때는 스포츠 특선이 중계방송됐다. 동양 챔피언이었던 20대 중반의 김득구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WBA 라이트급 챔피언 레이 맨시니와 맞섰다. 경기 중후반까지 호각세였던 김득구를 응원하던 기억 또한 또렷하다.
하지만 김득구는 14회에 챔피언의 펀치에 무너지고 만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링 위의 비극’으로 남았다.
복싱 기억을 줄줄이 소환하게 된 건 ‘왕년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때문이다. 예순을 2년 앞둔 타이슨이 최근 19년 만에 ‘사각의 링’에 올랐다. 1986년 20세로 역대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을 차지했고, 이듬해 WBC·WBA·IBF 3대 기구 통합 챔피언이 됐다. 37연승을 달리며 6차례 챔피언 벨트를 지키는 등 강펀치로 링을 주름잡았던 그다.
상대가 유명 유튜버 출신 복서였던 데다 타이슨이 고령인 점을 참작해 정규 3분 12라운드가 아닌 2분 8라운드로 경기가 진행됐고, 글러브도 정규 10온스(283.4g) 대신 더 두꺼운 14온스(396.8g)를 낀 점을 보면 이벤트에 가까운 대결이었다.
사실 경기 내용도 기대했던 것만큼 화끈하지는 않았다. 전 세계 6000만 가구가 시청했다는 경기가 끝나자 ‘졸전 끝에 완패했다’ ‘솜주먹으로 279억 원을 벌었다’ ‘타이슨 엉덩이만 봤다’ 등 부정적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그래도 서른한 살이나 어린 아들뻘 선수의 주먹세례를 받으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았던 타이슨의 모습이 멋져 보였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더불어 복싱의 아련한 기억을 되살려 준 타이슨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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