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 - 명품의 탄생 <하>
제1·2차 세계대전 후
억압된 여성성 해방
사회적 지위·정체성 표현
자아실현·심리적 안정 도구로
삶에 가치 더해 소유욕 자극
루이비통으로 대표되는 프로덕트 브랜딩(Product branding) 혁신으로 명품은 비로소 많은 이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이에게는 쉽게 손이 닿지 않는 소비재로 남아 있었다. 이런 미묘한 상황이 단번에 뒤집히며 사회 대부분이 전에 없던 대격변을 겪는 사건이 무려 두 차례나 발생한다. 바로 제1·2차 세계대전이다. 유사 이래 본 적 없던 총력전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사회 구성원 전부가 참여한 이 전쟁이 가져온 결과로 이제 인류는 법이나 국가관에 명시된 귀족 중심 사회를 해체해야 할 과제에 직면했다. 이후 바로 이어지는 냉전에 휘말린 국가들은 신분질서가 철저히 무너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미국이 세계에 퍼뜨린 자유주의 질서에 기대어 새로운 업종과 사회참여 기회로 부유해진 중산층이 대거 등장했다. 이는 사회에서 구매력을 견인하는 계층이 대폭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명품기업은 다양해진 소비자 수요에 맞춰 국내외에 생산 라인을 구축해 나갔고, 새로운 디자인과 다양한 가격으로 대중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럭셔리’를 추구했던 샤넬(Chanel)은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으로 주로 중산층 여성을 매료시켰다. 특히 모던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슈트와 가방은 패션의 아이콘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디올(Dior)은 ‘뉴룩(New Look)’이라는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선보였다.
뉴룩은 여성의 곡선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 풍성한 옷감의 사용과 쿠튀르의 제작 기술이 총동원됐다. 뉴룩의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알려진 ‘바(Bar) 슈트’는 슈트 한 벌을 제작하는 데만 20마의 옷감이 들 정도였다. 전쟁으로 인해 억압된 여성성을 해방시키며 대중에게 확실하게 디올의 브랜드 가치를 각인시켰다. 구찌(Gucci)는 고급스러운 가죽 제품과 패션 아이템으로 유명했다. 구찌는 아티스트,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독특하고 트렌디한 제품을 출시했다. 이를 통해 상류층과 중산층으로부터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명품 브랜드가 대기업에 인수되거나 합병되면서 대중화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하면서도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정판 전략을 사용하고, 광고 캠페인을 통해 명품 브랜드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들은 TV와 영화 등의 각종 매체 기반 마케팅 전략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들의 경쟁력 있는 제품군을 홍보했다. 이는 대중에게 명품을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게 만들고, 그들의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했다. 동시에 이러한 명품 브랜드는 중산층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가격대를 다양하게 조정하고, 대중적인 유통 채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고객층을 확보했다. 이로써 상류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한 브랜드들은 품질 관리와 브랜드 가치 유지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명품을 소유하는 것이 곧 높은 지위와 숭고한 품격을 나타내는 상징성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렇듯 명품은 과거 지도층이나 권력자를 상징하는 ‘귀한 가치가 있는 물건’에서 시작해 여러 사회적 변화를 거치며 점차 대중화됐다. 오늘날에는 비교적 구매력이 약한 젊은 세대마저도 소비층으로 포함되며 ‘보편적인 고급 소비재’로 자리 잡게 됐다. 이 역사 속에서 우리는 명품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고유적 가치다.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는 명품에 대한 열광은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과 새로운 소비층인 밀레니얼, MZ세대가 등장함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명품을 단순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인식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러한 열광의 근원은 명품이 주는 물질적 가치나 만족감이 아닌, 그것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상징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왜 명품에 열광하고, 그것이 현대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갖는 사회적 상징성이다.
명품은 희소성과 높은 가격대로 말미암아 대중 사이에서 일종의 상징적 지위를 갖게 됐다. 이러한 상징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축적이 곧 성공과 지위를 의미한다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유자가 명품을 통해 사회적인 신분을 드러내고자 하는 행동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특정 사회적 계층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그 집단의 일원임을 과시하려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소비는 오늘날 개인들이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그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법으로써 명품을 선택하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자아실현과 개성 표현으로써의 명품이다.
현대사회에서 ‘나’라는 개인을 나타내는 방식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SNS 같은 플랫폼은 사람들이 저마다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장이 됐다. 이에 보편성과 구별되는 개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고, 특히 근대 이후 젊은 층은 대중적인 제품보다는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는다. 이들은 명품을 통해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예를 들어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패턴이나 구찌의 로고를 보이는 행동은 단순한 브랜드 소유를 넘어, 세련된 이미지와 정체성을 함께 누리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진다. 오늘날 명품은 경제적 여유의 과시를 넘어 정체성을 구체화하고, 이를 타인에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셋째, 명품 소비를 통해 얻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명품 소비를 통해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명확히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사회적 인정과 자부심을 느낀다. 이러한 심리적 안정감은 단순히 제품의 내구성과 품질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소유자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기를 원하는지 기대를 충족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명품은 우리 사회에 경제적 기여를 넘어 문화적 의미를 제공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명품산업은 패션과 미술 등 고급 인력을 유치하고, 창의적인 노동을 촉진해 국가 경제와 일자리에 기여한다. 명품은 소비자에게 장인정신과 고품질의 가치를 알리며,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명품을 대외적으로 소비할 때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 표현을 가능케 해 개인이 자아를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명품은 단순히 비싼 물건이 아니라 고유한 이야기와 가치,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철학을 내포한 상징물로서 인류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아 우리 삶에 독특한 가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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