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열혈사제2’ 선택적 분노와 연대로 정의 구현
사회 악·부조리에 맞선 김해일 신부
숨겨진 신분 ‘벨라또’로 공적 사명
‘구벤저스’는 조력자 ‘코메스’로 활약
마약 카르텔로 한층 커진 스케일
통쾌한 액션·B급 유머로 긴장 완화
폭력적 응징 방식은 여전히 논쟁 여지
정의 실현 도구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
“분노는 인간이 부당한 상황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분노가 적절히 조절되고 올바른 대상을 향할 때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 시리즈는 이 철학적 통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선택적 분노와 유연한 연대를 주축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서사를 탄생시켰다.
‘열혈사제’의 타이틀롤 김해일(김남길) 신부는 선택적 분노의 상징적 인물이다. 영어 타이틀 ‘The Fiery Priest’(불 같은 신부)가 암시하듯, 그의 분노는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이 분노가 단순한 감정적 폭발이 아니라 사회적 악과 부조리를 겨냥한 정밀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김해일은 약자에게는 따뜻하고 관대하지만 강자와 부패한 권력 앞에서는 망설임 없이 분노를 표출한다. 이는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약자에게만 강한 ‘선택적 분노조절장애’ 범죄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흥미로운 설정은 김해일의 숨겨진 신분, 벨라또(Bellator)에도 있다. 라틴어로 ‘전사’를 의미하는 벨라또는 교황청이 정의 구현을 위해 특별히 임명한 존재. 이러한 설정은 그의 행동에 정당성과 역사적 깊이를 부여하며, 개인적 정의 실현을 넘어 공적 사명으로 확장시킨다.
이를 통해 김해일의 분노는 단순한 폭력적 해소가 아닌, 사회적 악에 맞서는 필연적 과정으로 재해석된다. 시청자는 그의 분노를 단순한 사적 제재로 소비하기보다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공적인 정의의 실천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와 함께 ‘열혈사제’ 시리즈는 유연한 연대를 통해 현대적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김해일을 중심으로 뭉친 ‘구벤저스’ 멤버들은 단순 조력자를 넘어 코메스(Comes)라는 특별한 신분으로 정의된다. 라틴어로 ‘동반자’를 뜻하는 코메스는 벨라또와 함께 협력하며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다. 이들의 협력은 각자의 전문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로 이뤄진다. 현대사회가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의 목표를 중심으로 유연하게 뭉쳐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능력을 할애해 협력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박경선(이하늬) 검사, 구대영(김성균) 형사, 구자영(김형서) 형사뿐만 아니라 중국집 배달원 쏭삭(안창환), 편의점 사장 오요환(고규필), 김수녀(백지원), 한신부(전성우) 등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활약하며 협력의 폭을 넓힌다. 이러한 연대는 공통의 목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개인과 집단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방식의 협력을 실현한다.
5년 만에 돌아온 시즌2는 부산이라는 새로운 무대를 배경으로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마약 카르텔을 주요 서사로 삼아 한층 더 스케일을 확장했다. 성준이 연기하는 김홍식은 온화한 겉모습 뒤에 잔혹함을 감춘 빌런으로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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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2’는 통쾌한 액션과 B급 유머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김해일의 ‘불꽃 주먹’ 액션이나 롱테이크 드론신은 스타일리시한 코믹 액션의 정점을 찍으며, ‘짝패’ ‘해적’ ‘범죄와의 전쟁’ 등 다양한 작품을 패러디한 장면들은 풍자적 유머를 더해 긴장을 완화시킨다. 이는 작품의 대중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이슈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주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물론 폭력적 응징 방식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노는 올바른 대상에 적절히 사용될 때 미덕이 될 수 있다”고 긍정한 반면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두 철학자의 시선은 분노와 폭력이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그 위험성과 한계를 동시에 상기시킨다.
‘열혈사제’ 시리즈는 폭력의 정당성과 그로 인한 결과를 암묵적으로 탐구한다. 김해일의 행동은 시청자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기지만, 동시에 ‘폭력이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한 오락적 쾌감을 넘어 현대사회에서 정의 구현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지 성찰로 이어진다.
특히 선택적 분노와 유연한 연대를 축으로 삼은 ‘열혈사제’는 악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정의의 새로운 얼굴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공감과 참여를 촉구한다. ‘열혈사제’가 제시하는 정의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일상의 부조리에 맞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까운 가치다. 정의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연대를 통해 현실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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