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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5개 마을 순회 태권도·한글 교실 현지인에 인기

입력 2024. 11. 15   16:10
업데이트 2024. 11. 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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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30. 2010년 레바논 동명부대<하>

신호등·차선 없는 도로 추월은 일상
주민들 장병 볼 때마다 손 흔들며 환영
‘벤허’ 쵤영지 안전 문제로 못 가 아쉬워
내전 당시 파괴된 건물 그대로 방치
외출할 땐 무장병력과 항상 함께해야

 

동명부대 장병들이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동명부대 장병들이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동명부대 방문 3일 차인 9일 폭발물처리반(EOD) 활동과 리타니강 감시작전에 동행했다. 이를 위해 차량 3대가 투입됐다. 리타니강은 남부 레바논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특히 불법무기 반입을 감시하기에 매우 수월한 지점이다.

그런데 여기는 교통질서가 엉망이다. 신호등이 없고, 차선도 보이지 않았다. 공간만 있으면 바로 추월이 이뤄진다. 추월하는 차량을 또 추월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무전기를 통해 들은 단어 중 가장 많이 거론된 말이 바로 추월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각형 모양의 맨홀은 지표면에서 5~10㎝가량 튀어나와 있어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컸다.

이 지역에서 눈에 띄는 농작물은 바나나, 만다린(귤), 오렌지다. 올리브도 많이 보인다. 궁금증은 도대체 누가 일을 하는지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4개월째 근무 중인 안내장교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광경에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사람이 아니라 ‘달팽이 각시’가 일한다고 했다. 밤이면 부대 울타리에 달팽이들이 잔뜩 모여 있다가 아침이면 모두 사라진다. 이것을 보고 우리의 ‘우렁각시’처럼 밤이 되면 달팽이가 사람으로 변해 일하고, 해가 뜨면 다시 달팽이로 변해 사라진다고 빗댄 것이다.

 

 

현지인을 진료하는 군의관.
현지인을 진료하는 군의관.

 

가축을 진료하는 수의과 군의관.
가축을 진료하는 수의과 군의관.

 


오후에도 바쁘게 다녔다. 부르즈라할 시장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태권도와 한글을 가르치는 현장을 찾았다. 부르즈라할은 인구 7000명의 마을이다. 임기 6년의 시장은 선거로 뽑는다. 태권도와 한글 교실은 1주일에 1차례씩 부대 주둔 지역의 5개 마을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월요일은 부르글리야, 화요일은 디비, 수요일은 압바시야 등 순이다.

동명부대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은 호의 그 자체다. 며칠 안 되는 방문이었지만, 주민들은 장병들을 볼 때마다 미소 짓고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지역 언론매체인 nbnTV 빌랄 키시말 기자는 “전혀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라며 “동명부대가 마음을 담아 주민들을 친구같이 생각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유엔레바논평화유지군(UNIFIL)에는 32개국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각 나라와의 교류도 중요해 주요 행사가 열리면 속속 모인다. 부대 지휘관 교체에 따른 작전권 이양과 유엔 메달 퍼레이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엔 활동을 6개월 이상 하면 유엔에서 공로 메달을 수여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유엔 메달 퍼레이드다. 그런데 여기서 국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는 태권도 시범, 난타 공연 등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음식도 푸짐하게 차려 우리 측 행사가 있을 때는 항상 초청 인원을 초과한다. 초대하지 않아도 오는 일이 많아서다. 그러나 몇몇 나라는 초대해도 최소 인원만 갈 정도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아프리카 어느 나라(가나)의 경우 대대장 취임식이 있었는데 널따란 식탁에 차려놓은 것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깐 아몬드, 다른 하나는 안 깐 아몬드.

 

 

태극기를 들고 활짝 웃는 어린이들.
태극기를 들고 활짝 웃는 어린이들.

 

베이루트 시내의 극장. 내전 당시 피해를 당한 후 복구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베이루트 시내의 극장. 내전 당시 피해를 당한 후 복구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리타니강에 대한 감시 정찰을 하고 있는 장병들.
리타니강에 대한 감시 정찰을 하고 있는 장병들.

 

 

10일, 3박4일 체류의 마지막 날이다. 여태껏 부대를 찾은 언론매체 중에서 가장 짧은 일정이라고 한다. 대개 5박6일, 또는 6박7일을 예정한다는데. 나도 아쉽다. 언제 이곳에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점심을 먹은 후 부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을 남긴 채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여유시간을 이용해 티르의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영화 ‘벤허’가 촬영된 곳 중 하나다. 그 장소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하지만 불발. 당시 순교한 이슬람교의 한 성인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진행 중으로 자칫 행사에 휩쓸려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이다.

대신 베이루트에 조금 일찍 도착해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간을 보니 공항에 들어갈 때까지 4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레바논은 옛날 페니키아 문명의 발원지며, 로마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함께 꽃피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중동의 진주’라는 애칭을 가진 수도 베이루트는 이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경에 나온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도 이 지역에서 전해진 것이라 한다. 하지만 베이루트는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내전을 겪은 아픈 역사도 있다. 당시 파괴됐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실상을 알려주고 있다. 베이루트의 상징인 비둘기 바위도 그렇다. 이전에 비둘기가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비둘기들이 사라져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정파의 다툼으로 레바논이 혼란스럽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PS : 동명부대 주둔지는 그리 넓지 않다. 대략 반경 1㎞ 정도다. 영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10여 분이면 된다. 예전에 자이툰부대에서도 영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1시간40여 분이 걸렸다. 동명부대에서는 외출을 받더라도 국내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다. 항상 무장병력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장병들은 이 좁은 주둔지에서 7개월간 생활하면서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레바논에 평화를! 조국에 영광을!’’이라는 구호를 가슴에 새긴 채. 머나먼 이국땅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이들을 응원한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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