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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해 지키는 장병들에 ‘내돈내차’ 투어 하나도 아깝지 않죠

입력 2024. 11. 07   17:34
업데이트 2024. 11. 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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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 대상 무료여행 가이드
‘남해 추억쌓기 택시’ 김영빈 씨

남해군청 공무원으로 32년…정년퇴직 후 잡은 택시 운전대로 장병들과 인연
군 생활 내내 버스터미널~부대만 왕복 안타까워 부대에 ‘남해 투어’ 제안
매달 사비 털어 모범 장병 3명 유명 관광지~핫플 데려가고 식사 대접까지
육군소령 딸·사위도 물심양면 지원…장병들 장문 메시지 볼 때마다 피로 싹~

 

“남해 추억쌓기 택시 투어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한 중년 택시 기사가 친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이런 멘트를 날린다. 이 택시를 타면 늠름하던 군인도 막내아들이 된다. ‘남해 추억쌓기 택시’는 지역 토박이인 김영빈 씨가 매달 장병들을 싣고 남해 곳곳을 운행하는 개인택시의 애칭이다. 지난달 30일 그를 만나러 경남 남해군으로 갔다. 글=조수연/사진=김병문 기자

 

경남 남해군 일대에서 육군39보병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택시투어를 하는 김영빈 씨가 자신의 택시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경남 남해군 일대에서 육군39보병사단 장병들을 대상으로 택시투어를 하는 김영빈 씨가 자신의 택시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들 같은 군인에게 아낌없이

호수처럼 잔잔한 남해 바다. 해안도로를 따라 검은 개인택시 한 대가 유유히 달린다. 사방 어디로 눈을 돌려도 온통 엽서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택시가 보리암 주차장에 멈춰서더니 군복을 입은 장병 세 명이 내렸다. 그들을 따라 중년의 택시 기사도 운전대를 놓고 함께했다. 개인택시 기사인 김영빈 씨와 육군39보병사단 14해안감시기동대대 황종민 하사, 장현민 일병, 유현석 이병이었다.

김씨는 지난 1월부터 매달 남해지역 군부대 장병 3명을 택시에 태워 남해의 절경을 소개하는 무료 여행가이드를 자처하고 있다. 관광은 오전 9시 부대 픽업을 시작으로 오후 5시까지 이어진다. 다랭이마을·독일마을·보리암 등 유명한 관광지부터 현지인만 아는 숨은 맛집까지 장병들과 곳곳을 유랑한다.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감사의 뜻으로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사찰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꾼 거예요.”

보리암까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이곳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장병들에게 도란도란 들려준다. 그 모습이 자식 사랑에 푹 빠진 영락없는 아버지 같다. 이런저런 포즈를 권해가며 인생샷도 여러 장 찍어준다. 장병들도 효자처럼 김씨 주문에 척척 화답한다.

반나절 이어지는 관광에 드는 비용은 전부 김씨가 사비로 부담하고 있다. 입장료와 밥값까지 써야 하니 제법 비용이 들어간다. “아깝지 않느냐”는 지인들 타박도 있었지만 애초에 베풀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이날 아침엔 39보병사단장의 감사장을 받고 오던 참이었다.

“아깝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현역 육군소령인 딸과 사위도 저한테 ‘정말 좋은 일 하신다. 후배 군인들 맛있는 거 많이 사주시라’면서 많이 지원해줍니다.”

오전 내내 이어진 다정한 관광. 남해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이라며 한 횟집에 장병들을 데려갔다. 낯익은 듯 식당 직원과 인사를 주고받고는 줄줄이 주문한다. 이윽고 푸짐한 회 한 접시와 팔뚝만 한 타이거새우가 나오자 장갑을 끼더니 새우살을 발라 장병들 앞 접시에 놔준다. 김씨에게 남은 건 새우 껍데기뿐인데도 연신 싱글벙글한다.

“병영식당 방침상 날것은 안 나온대요. 생선회를 먹을 기회가 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들 같고 동생 같은 군인들이 고생하는데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참 좋아요.”

 

 

장병들을 태우고 남해를 배경으로 달리는 김씨의 택시.
장병들을 태우고 남해를 배경으로 달리는 김씨의 택시.

 

씨가 투어를 함께한 장병에게 받은 감사문자.
씨가 투어를 함께한 장병에게 받은 감사문자.

 

장병들에게 보리암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김씨.
장병들에게 보리암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김씨.

 


부대·터미널만 왕복하는 군인들 아쉬워

남해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남해군청에서 32년간 우직하게 일한 공무원이었다. 정년퇴직 후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김씨와 장병들의 인연은 올해 초 시작됐다.

“대중교통 이용이 취약한 지역 특성상 휴가 나가거나 전역하는 군 장병들이 택시를 많이 탑니다. 대부분 군 생활 내내 버스터미널·기차역과 부대만 왕복하다 보니 남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잘 모르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웠죠.”

‘장병들을 택시에 태워 관광시켜 주고 싶다’는 바람을 개인택시협회에 전하고 부대에 공문을 보냈다. 부대 지휘관도 모범 장병 세 명을 달마다 보내겠다고 화답했다. 토박이인 만큼 자신 있었다. 산골짜기 비탈진 곳부터 젊은 관광객들이 찾는 ‘핫플’까지 섭렵하고 있다.

“제가 군 생활을 강원도 철원군에서 했습니다. 그때 한 번 부대버스를 타고 강원도를 둘러봤는데 그게 정말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아있어요.”

인터뷰가 처음이라 어색하다던 김씨는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팔불출이 됐다. 반나절 내내 이어지는 투어 프로그램으론 ‘겉핥기’에 불과할 정도로 남해에 아름다운 곳이 정말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수많은 해전을 치른 곳이기도 하잖아요. 이순신 순국공원도 있고 독일마을엔 파독전시관도 있습니다. 군인들의 정신력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공부도 정말 많이 했어요.”

아무런 보상도 없이 일 년 가까이 이어온 이 일이 어찌 고단하지 않았을까. 김씨의 극진한 마음은 장병들에게도 닿았다. 김씨가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추억쌓기 택시’에 다녀간 장병들이 남긴 카톡을 보여줄 때에야 그 마음을 이해했다. ‘전체 보기’를 눌러야 할 정도로 긴, 진심이 담긴 장문 메시지들이었다.

“그날 찍어준 사진들을 보내주려고 연락처를 교환하거든요. 어느 날 불쑥 메시지가 와요. ‘남해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정말 좋았다, 감사하다’고요. (장병들과) 헤어질 땐 못내 아쉽다가도 그런 연락을 받으면 기분 정말 좋죠.”

 

 

김씨가 장병들과 함께 독일마을 일대를 걷고 있다.
김씨가 장병들과 함께 독일마을 일대를 걷고 있다.

 

잊지 못할 기념사진을 남겨주는 김씨.
잊지 못할 기념사진을 남겨주는 김씨.

 



지자체 지원 늘었으면 

절경을 둘러보고 산해진미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컴컴해진 시간. 장병 셋을 소초 앞에 내려주고선 휘휘 흔드는 김씨 손짓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원래는 1년 정도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소초마다 30~40명은 복무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최대한 많은 장병이 남해를 여행해 볼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김씨가 그리는 미래는 하나다. 장병들이 마음 놓고 자신이 군 생활한 남해를 둘러보고, 전역 후에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

“사정을 들려드리면 ‘좋은 일 한다’고 무료입장시켜주는 고마운 분들도 계세요. 지역에서 군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에게는 입장료 감면이나 전문 문화해설사 지원 등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동료 택시 기사들에게도 함께하자고 성화를 부리고 있단다. “우리 개인택시 기사 동료들도 많이 동참해서 프로그램이 활성화됐으면 하고, 장병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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