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골목 속으로
19. 젊음·핫함 궁금하다면…여기지! 부산대
부산대 앞은 젊음의 거리다. 학생과 연인들, 저렴한 술집을 찾는 젊은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찾는 명소다. 지역 최고 명문대인 부산대 앞은 전국을 대표하는 대학가이기도 하다. 수도권 쏠림으로 지방대 위기라는 말도 많지만 나에게 부산대 골목은 신선하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골목은 사람이 만든다. 대학가 골목은 청춘의 낭만과 미래의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저렴한 곳일수록 북적이고, 튀는 복장의 괴짜들이 거리를 누빈다. 누가 뭐래도 삶의 전성기는 20대다. 피 끓는 청춘들이 만드는 영역이다. 부산의 유난히 센 바람과 짭짤한 바다, 대표적인 주택가까지 동래로 이어지는 길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부산에서 일부러 부산대 앞을 찾는 이들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특별한 여행이 된다. 나라면 하루 정도는 종일 부산대 주변만 돌겠다. 지루할 틈이 없는 가게와 사람 풍경을 여행 고수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물가
근처에서 강연이 있어 모처럼 부산대를 찾았다. 대학생 시절 부산대 앞은 지금보다 더 유명했다. 인천의 인하대와 함께 ‘가장 저렴하게 안주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통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부산 물가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서울 대비 거의 절반이었다. 낯선 부산 사투리가 어디서나 들려 더 신기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부산대 앞은 정돈돼 있었다. 날씨까지 좋아 타임머신을 타고 스무 살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대학가 거리를 좋아한다. 20대는 20대가 얼마나 좋은 때인지 모른다. 미래의 고민에 갇혀 늘 심각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고민하고, 밤새 PC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후회로 숨듯이 걷는다. 그 어떤 방황도 특권임을 나처럼 나이를 먹어서야 안다. 여전히 부산은 물가가 저렴했다. 1만 원도 안 하는 파스타집이 손님으로 가득했는데, 들어가 볼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돌아섰다. ‘혼밥’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파스타집에서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먹는 건 어쩐지 좀 눈치가 보였다. 당연히 맛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며 부산대 골목을 거닐었다.
1970~1980년대 국가대표 명문대, 부산대
1970~1980년대 부산대는 서울 명문대급의 입시 결과를 자랑했다. 여전히 부산 최고의 명문대지만 MZ세대의 수도권 사랑 때문에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들었다. 상권도 광안리, 전포동 등에 빼앗겨 전성기에 비하면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한다. 첫인상만 보면 한결 멀끔해진 것 같은데 실제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속이 타들어 가는 모양이었다. 정문 앞 토스트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등교하기 전 토스트 하나 먹고 강의실로 바로 들어가는 부산대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대학가 앞이야 사실 전국 어디나 다 비슷하다. 부산대 앞도 마찬가지. 하지만 부산대 주변은 ‘부산대’와 ‘동래’가 섞여 있다. 동래는 부산에서 가장 사랑받는 주택가다. 대학가와 주택가가 붙어 있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대학생과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아이 엄마가 공존한다. 부산에서 한 달 살기로 한 곳을 골라야 한다면 단연코 부산대다. 물가도 저렴하지, 깨끗하지, 그러면서 활기가 넘치지. 이 귀한 곳을 몰라보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라도 좀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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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카페 골목 급부상
부산대에는 ‘톤쇼우’라는 전국구급 돈가스집이 있다. 식당 앱에서 예약해야 하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인기 가수 콘서트나 뮤지컬 예매할 때의 긴장감이 없으면 먹을 생각도 하면 안 된다. 예전엔 남포동, 서면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3대 상권이었다. 폐허 분위기에 활력을 넣고 있는 건 뜻밖에도 주택가다. 부산대역과 래미안 장전아파트 사이에는 주택가가 형성돼 있다. 서울의 가로수길이나 송리단길과 얼추 비슷하다. 평범한 옛집들을 리모델링해서 아기자기한 카페와 빵집으로 재탄생시켰다. 파리만 날리는 부산대 앞과는 사뭇 다른 활력이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던 예전 부산대와는 전혀 다른 멋과 여유로 치장한 카페 골목은 MZ세대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부산대를 졸업했다는 한 독자가 ‘웍헤이’라는 식당을 추천했다. 쌀국수와 볶음밥, 그리고 새우튀김까지 메뉴는 단 세 가지. 쌀국수 8500원, 볶음밥 8000원, 새우튀김 5000원. 줄 서는 맛집인데 가격이 이 정도다. 라이스페이퍼로 감싼 새우튀김은 꼭 먹어 볼 것. 인기 없는 상권은 이유가 있다고? 틀렸다. 남들이 안 가는 곳엔 숨은 진주들이 숨어 있다. 부산대 앞 ‘웍헤이’가 그 증거다.
아시아 최대 온천 ‘허심청’
부산대역에서 온천장역까지는 지하철로 딱 한 정거장 거리. 온천장은 삼국시대 때부터 이미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신라의 수도 경주와 가까웠기 때문에 경주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치유하는 요양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동국여지승람』에선 신라의 왕이 온천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찾았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다. ‘허심청’이라는 초대형 목욕탕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온천수탕. 태어나서 이렇게 규모가 큰 목욕탕은 처음이다. 외국인도 부산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외국에선 공개적으로 옷을 다 벗고 돌아다니고 샤워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서구권은 왠지 다 개방적일 것 같아도 그들이 가장 놀라는 게 우리나라의 목욕 문화라고 한다. 아무리 동성 사이라도 대담하게 올누드로 함께 목욕을 즐기진 않는다. 허심청을 방문한 외국인은 그 규모에 놀라고, 수많은 벌거벗은 몸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게다가 한국의 세신 문화 역시 독특하고 강렬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는 때를 밀지 않는다. 때를 그것도 아주 박박 문질러서 벗기는 한국 세신 문화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고 한다. 부산대에서 온천장까지 이어지는 길엔 온천천이 흐른다. 산책하기에도 좋고 가볍게 달리기하거나 운동하기에도 좋다. 부산대역에서 온천장역 쪽 말고 반대 방향으로 한 역만 더 가면 장전역이다. ‘해물천국’이란 식당이 있는데 강력 추천한다. 인생 해물라면을 먹게 될 것이다.
부산 최애 시장, 동래시장
글을 쓰는 직업은 늘 마감과의 싸움이다. 코카서스 여행기가 도대체 끝이 안 나 시름시름 앓다가 부산으로 왔다. 동래시장 근처 숙소에서 1주일을 묵었다. 동래는 부산에서 가장 학군이 좋고, 집값도 비싼 곳 중 하나. 서울로 치자면 강남의 8학군 같은 곳이다. 부산대와 동래시장은 좀 멀기는 한데, 부산대가 있는 금정구와 동래시장이 있는 동래구는 붙어 있다. 골목을 중심으로 반경 1㎞만 깨작깨작 걷는 것도 재미나지만, 온천천이 흐르는 산책로를 따라 걷고 쉬면서 흥미롭다 싶은 곳에 들르는 여행도 얼마나 재미난 줄 모른다. 부산의 전통시장이 많지만, 동래 시장을 가장 좋아한다. 부산은 어묵의 도시다. ‘황가네 부산 어묵’은 동래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다. 주말에만 파는 고추튀김이 가장 유명하다. 아쉽게도 주말이 아니어서 다른 어묵만 몇 개 골랐다. 이 가격이 맞아? 서울 시장 가격의 딱 절반이다. 방부제나 색소가 전혀 안 들어간 깨끗한 어묵 맛에 한 번 더 놀랐다. 동래시장 ‘신가네 호떡 김밥 떡볶이’는 부산에서 1·2등을 다투는 떡볶이 맛집. 호떡도 유명하다. 맛도 맛이지만 가장 놀랐던 건 영업시간. 아침 6시부터 문을 여는 떡볶이집이다. 아침 공복에 따끈따끈 최고로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면 동래시장으로 와야 한다. 아, 그전에 동래에 숙소부터 잡을 것. 동래까지 내려가서 코카서스 여행기를 과연 잘 마쳤을까? 결과는 대성공, 떡볶이와 어묵에 그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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