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가 있는 병영] 손

입력 2024. 10. 31   16:57
업데이트 2024. 10. 3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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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웅 시인
김종웅 시인



불끈 쥐면 주먹이지만 
그냥 펴면 손바닥이다 
주먹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지만 
손바닥으로야 
그 어떤 것도 감쌀 수 있으니 
꽉 쥐고 있을 것인가 
그대로 펴고 있을 것인가 
불끈 쥐어야 할 일 왜 없겠는가 
불끈불끈 치솟는 
끊임없는 세상의 화나는 일 
그러나 펴고 보면 
감쌀 일 왜 또한 없겠는가 
나는 나의 손을 믿는다 
까닭이야 서러운 줄 왜 모르겠는가 
감싸 줌으로서 사랑은 더 빛나는 것을 
왜 또 모르겠는가 


<시감상> 

시인은 크고 작은 사회적 관계망에 얽힌 우리네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분노와 포용의 감정을 손을 쥐고 펴는 행위 동작에 비유해 보여준다.

특히 이편저편으로 구분해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관계와 결속에서 안심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한 사회일수록 갈등은 언제든 분출할 수 있는 잠재태로 숨어 있는 것이어서 “불끈불끈 치솟는” “화나는 일”에 손을 “불끈 쥐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 손은 공격성으로 무장된 주먹이 되면서 손의 다양한 기능을 잃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돌아보면 세상엔 손을 펴서 “감쌀 일” 또한 많이 있고 “감싸 줌으로서 사랑은 더 빛나는 것”이기에 다소 서럽고 분한 마음을 다독이며 손을 펴서 내밀면 진정한 화해와 사랑이 그 안으로 들어옴을 알게 된다. 이런 성찰의 깨달음을 주먹과 손바닥의 비유를 통해 말하는 시인의 어조는 다소 아포리즘적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울림은 거북하지 않다. 화자 내면에서 순화 과정을 거쳐 나온 진솔한 고백의 언술로 새롭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궁극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데, 그 시의 새로움이란 전혀 없는 무엇을 찾아내는 것이라기보다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노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익숙한 것(곳)에도 새로운 감각과 느낌으로 다가가면 새로움이 탄생한다. 꽉 쥔 주먹에는 아무런 새로움을 담을 수 없지만, 활짝 편 손바닥의 용도와 그곳에서 탄생하는 새로움의 가치는 무궁하다. 눈 밝은 시인은 그것을 꺼내 전해주고 있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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