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연·뮤·클 이야기

핵 빨간맛 … 세상의 편견에 아찔하게 하이킥

입력 2024. 10. 29   16:41
업데이트 2024. 10. 29   16:45
0 댓글

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킹키부츠’ 

드래그퀸 롤라 위한 튼튼하고 아찔한 부츠 제작 과정 그려
국내 초연 10년…묵은맛에 더 강력하고 매운맛으로
드래그퀸 칼군무 ‘랜드 오브 롤라’ 명불허전 명장면
근육 섹시 서경수·농익은 강홍석 ‘롤라’ 다른 맛도
섬세하고 힘 있는 ‘찰리’로 몰입도 높인 김호영 역시!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킹키부츠(Kinky boots)’가 이번 시즌 더 빨갛고 강력한 맛을 선사 중이다. 2014년 12월 국내 초연을 했으니 어느덧 10주년. 10년 묵은맛은 과연 이 정도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오는 11월 10일까지 공연된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킹키(kinky)’는 ‘변태적인’ ‘특이한’이란 뜻의 단어로, 은근 성적인 냄새를 노골적으로 풍긴다. 이 뮤지컬에서의 ‘킹키’는 이런 이미지를 밟고 넘어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킹키부츠는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이들을 위한 찬가다. 그래서 이 뮤지컬의 배우와 팬들은 마치 “파이팅”처럼 외친다. “킹키하라!”

2012년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됐으니 국내에 꽤 빨리 들어왔다. 킹키부츠의 음악은 1980년대 마돈나와 함께 여성 팝스타 자리를 양분했던 신디 로퍼가 만들었다. 신디 로퍼의 팬이라면 이 작품의 넘버 몇몇 곡에서 그의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을 터.

드래그퀸(drag queen) 롤라의 등장과 함께 펼쳐지는 ‘랜드 오브 롤라(Land of Lola)’는 롤라의 박력 있는 에너지와 아낌없는 조명, 드래그퀸 앙상블의 칼군무가 어우러진 이 작품 최고의 명넘버이자 명장면이다. 드래그퀸은 쇼와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과장된 여성 의상과 화장을 하는 사람으로 대부분 남자다. 드래그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뮤지컬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헤드윅’일 것이다.

3대째 이어져 온 전통 수제화 공장 ‘프라이스 앤 선’이 폐업 위기에 몰렸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공장을 물려받은 청년 찰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디자인과 경영난으로 고심하던 중 우연히 드래그퀸 롤라를 만나게 된다. 롤라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위해 튼튼하면서도 아름다운 부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찰리는 롤라와 함께 특별한 부츠를 만들어 틈새시장을 노리고자 하는데, 이 부츠의 이름이 바로 뮤지컬의 제목인 ‘킹키부츠’ 되시겠다.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 장면. 사진=CJ ENM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 장면. 사진=CJ ENM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장 직원들과의 갈등을 하나하나 극복하며 최종 목표인 밀라노 패션쇼에 오르기까지 이 작품은 빨갛고 길다. 무엇보다 튼튼한 부츠로 사회적 편견에 시원한 하이킥을 날린다. 

주인공이 찰리인지 롤라인지 헷갈릴 정도로 롤라의 비중이 큰 편인데, ‘랜드 오브 롤라’ 말고도 ‘섹스 이즈 인 더 힐(Sex is in the Heel)’이 또 하나의 명넘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1막이 끝날 때 나오는 ‘트레드밀 신’이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노래하는 배우들의 숨가쁜 움직임은 아크로바틱에 가까울 정도다. 오십견도 낫게 할 만큼 시원한 쾌감을 선사하는 장면. 신디 로퍼의 펑키한 음악도 최고다.

서경수가 연기한 롤라는 기존의 롤라와는 확연히 다른 색깔이다. 근육질 몸에 섹시함을 겉바른 서경수 롤라는 푹 익은 맛의 강홍석 롤라와는 딱 선을 그었다. ‘섹스 이즈 인 더 힐’ 후반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에너지는 오케스트라의 투티 연주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정평이 나 있는 김호영 찰리는 섬세하면서도 힘이 있다. 2막에서 롤라와 갈등하는 장면은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듯 몰입도를 높인다. 찰리와 롤라가 제각기 아버지에 관한 아픔을 노래하는 ‘낫 마이 파더스 선(Not My Father’s Son)’이 참 좋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뼈대를 드러내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찰리를 김호영이 연기하면 확실히 입체감이 살아난다. 찰리는 나약하고 무능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각성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김환희는 안정적인 로렌 연기를 선보였지만, 로렌의 일명 ‘연애 흑역사송(The History of Wrong Guys)’만큼은 역시 김지우 로렌이 최고다. 여러 시즌 동안 로렌을 연기하며 쌓인 공력은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누가 연기하든 로렌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100% 공감 가는 찌질함은 객석에 웃음폭탄을 투하한다.

킹키부츠는 사실 뮤지컬보다 영화가 먼저다. 2005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의 영국영화가 있었다. 찰리의 실존 인물인 스티브 팻맨이라는 공장 사장은 드래그퀸의 의뢰를 받고 남성용 하이힐을 제작했다고 한다. ‘웃픈’ 현실은 영화가 나오기 5년 전 이미 공장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는 것. 스티브 팻맨은 공장이 망하자 소방관이 됐다는 후문이 있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