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 이범석 다시알기 - 건군(建軍)과 국군의 정체성
장관 취임 즉시 국군 정체성 확립 주력
미군정하의 조선경비대와 명확히 구분
대한민국 국군이 ‘흡수 편입’ 법적 명시
광복군 출신 중용…독립투쟁정신 계승
장병이 지녀야 할 정신적 자세도 당부
군인복무기본법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대한민국 국군은 미군정의 조선경비대를 이용해 대대·연대와 같은 야전의 단위부대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국군은 아니다. 무력집단에 불과하다. 그 무력집단이 국군이 되려면 우선 법적 근거와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성격이 규정돼야 한다. 바로 정체성이다. 국군의 정체성이란 국군에 속한 모든 조직원이 지향해야 할 공통의 가치와 신념으로 국군의 이념과 사명, 군인정신을 말한다. 이는 전 소속원을 하나로 묶어 주는 가장 큰 얼개이자 지향 방향이다. 철기는 취임 후 첫 장관 명령인 훈령 제1호를 통해 국군의 정체성을 최우선으로 천명했다.
난립한 군사단체 정비 ‘국방사령부 설치’
광복 후 광복군이 미군정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국내에는 많은 군사단체가 우후죽순 난립했다.
1945년 11월 미 군정청에 등록된 군사단체는 30여 개에 달했다. 미 군정청은 난립한 군사단체를 정비하고 향후 정부 수립에 대비하기 위해 1945년 11월 13일 군정청 법령 28호로 ‘국방사령부 설치’를 선포했다. 이어 12월 5일에는 서울 냉천동에 ‘군사영어학교’를 설립해 간부 양성을 추진했다.
미군정의 2대 국방사령관 아서 S. 참페니 대령은 2만5000여 명 규모의 필리핀식 ‘경찰예비대’(약칭 경비대) 창설을 계획했다. ‘대나무(Bamboo) 계획’으로 알려진 경비대 창설계획에 의해 1946년 1월 서울 태릉, 현 육군사관학교 자리의 제1연대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도별로 1개 연대씩 총 9개 연대가 창설됐다. 제1연대 창설시점에 경비대를 제외한 모든 군사단체에 해산령을 내렸다.
한반도 북부에 진주한 소련군은 일찍부터 북한의 군사력을 길렀다. 1945년 10월 21일 소련 제25군 사령부의 명령으로 보안대가 창설됐다. 이어 1946년 2월부터 군 내 정치사상교육과 군사 분야 간부 양성을 위한 평양학원, 중앙보안간부학교 등의 군사교육기관이 잇달아 설립됐다.
1946년 9월에는 모든 무력기구를 총괄하는 인민집단군 총사령부를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김일성은 북한 정권 공식 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을 창설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국군이 창설되기 6개월 전의 일이었다. 말로는 민족 통합을 외치면서 안으로는 한반도 적화를 위한 군대를 먼저 만든 것이다.
국방부 설치와 국방부 장관 임명
법적인 면에서 국군의 출발은 정부 수립 1개월 전인 1948년 7월 17일 헌법과 법률 제1호로 공표된 정부조직법에 근거를 둔 국군의 총사령부 격인 국방부 설치에서 비롯된다.
8월 15일 국방부 장관 임명부터 국방조직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국방부 장관은 정부조직법과 국군조직법에 의거, 육·해·공군의 군정권과 대통령이 위임하는 군령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정부 출범과 동시에 한미 간에는 미군정이 설립한 조선경비대 이관 협정이 맺어졌다. 8월 24일 헌법상 국군의 총사령관인 이승만 대통령과 주한미군사령관 존 리드 하지 중장 간에 서명이 이뤄졌다. 협정에선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까지의 한시적 상황에서 한국과 미 주둔군의 공동 안전보장을 다뤘다. 국방조직(경찰, 통위부, 해군경비대)의 통솔권과 통수권을 조속히, 점진적으로 이양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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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국방부 장관 취임…첫 훈령 발표
철기는 대한민국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군정과 군령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정부 수립 다음 날인 8월 16일 전문과 3개 항으로 이뤄진 ‘국방부 훈령 제1호’를 발령했다. 훈령 제1호에서 국군과 미군정으로부터 인수한 조선경비대라는 무력집단과의 관계를 분명히 했다. 훈령 제1호는 대한민국 국군의 정체성, 즉 국군의 근본과 본질을 규정한 대한민국 정부가 최초로 국군에 내린 기념비적 명령행위다. 훈령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본인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아울러 대통령령에 의해 국방부 장관을 겸임하게 되었다. 금일부터 아 육?해군(경비대를 의미) 각급 장병은 대한민국의 ‘국방군’으로 ‘편성’되는 명예를 획득하게 됐다. 이에 장병 제군은 오직 근면진충보국의 정신으로 직책을 극진히 하고 군기를 엄수하며 친애협동하는 국군의 미덕을 발휘하라.”
이 훈령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국군은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었음’을 분명히 했다. 미군정하의 조선경비대가 국군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 주인인 대한민국이 조선경비대를 ‘대한민국 국방군’으로 ‘흡수 편입’한 조직임을 법령으로 명시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출범 시 국군 창설에 관한 다양한 주장이 있었는데, 정부는 이러한 여론을 감안해 경비대를 국군으로 편입시켰다.
또한 국방부 장?차관에 광복군 출신인 이범석 장관, 최용덕 차관을 임명해 국군이 광복군의 독립투쟁정신을 계승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둘째, 국군의 성격을 ‘국방군’으로 천명했다. 국군은 ‘국민의 군대’이고 ‘국가를 방위’하는 군대임을 대내외에 명확히 공표한 것이다. 이는 국군의 이념과 사명을 말한다. 반면 북한의 군대는 조선노동당 규약 제46조에 의거해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력’을 사용하는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일 뿐이다.
셋째, 국군 장병이 지녀야 할 정신적 자세인 ‘군인정신’을 명확히 했다. 이범석 장관은 전 장병에게 ‘진충보국’ ‘군기엄수’ ‘친애협동’ ‘근면충실’ ‘정성단결’을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한자체로 기록돼 요즘의 장병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다. 현재 말로 표현한다면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군기를 엄수하며, 전우애를 굳건히 하고, 직무에 최선을 다해 국민을 위한,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군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훈령은 군인복무기본법으로 계승·발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군이 창설되자 철기는 건국이념의 토대인 독립투쟁정신과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민족적 자각·소명의식을 건군정신으로 삼도록 하고, 이를 ‘건군혼’이라고 불렀다. 철기에 의해 대한민국 국군은 독립군·광복군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현대식 국방군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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