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과 평양 정권의 딜레마

입력 2024. 10. 28   16:23
업데이트 2024. 10. 28   16:25
0 댓글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세계가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방의 대응조치를 호소하는 가운데 미 국방장관의 키이우 방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 등이 있었다. 유엔총회에선 남북 대표 간 설전도 벌어졌다. 정치권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파병을 규탄하고 정부도 ‘단계적 대응’을 경고하며 한·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보협력에 나서는 등 발 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 자신들이 벌인 전쟁에 불량국가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동원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몰염치와 핵보유 빈소(貧小)국의 끝모르는 무모함에 다시 한번 경악해야 했다. 하지만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은 러시아는 물론 평양 정권에도 엄중한 딜레마를 강요하고 있다.

우선, 북한군의 선전 여부와 무관하게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북한군의 선전은 나토가 더 많은 군사지원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쟁은 더 많은 살상·파괴를 수반하는 장기전으로 갈 것이고, 북한은 국제전으로 확전시킨 범죄국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반대로 북한군이 패전군으로 전락한다면 평양 정권의 대내외적 체면은 크게 손상될 것이고, 러·북 군사협력이 빛을 잃으면서 북한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할 수 있다.

둘째, 북·중 관계의 소원화도 북한이 자초한 부담이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생존을 지켜 주는 ‘뒷배’였고, 북한이 대외정책에서 가장 중시해 온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경제적 파트너였다. 하지만 러·북 밀착이 급진전하고 북한이 러시아를 도와 파병까지 하는 ‘차이나 패싱’이 발생하면서 중국이 불편해하는 건 당연하다. 중국이 10년 전 완공된 신압록강대교의 개통을 거부하는 등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정황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급속히 악화됐던 한·중 관계는 개선의 여지가 생겨나고 있다.

셋째, 북한군의 인명피해가 커지는 경우 인권 문제가 부상하고 북한 정권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 케네스 로스 전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 등 서방 소식통은 북한군이 장비·보급 부족, 라스푸티차, 러·북군 간 소통·협력 애로 등으로 고전할 것이며 러시아군을 대신해 총알받이나 대포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크라이나도 ‘북한을 탈출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투항하면 좋은 대접을 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심리전을 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의 대규모 인명피해는 ‘외화벌이를 위해 젊은 목숨을 사지(死地)로 보낸 비정한 정권’이라는 비난을 촉발할 것이다. 북한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고 탈영자와 투항자가 속출한다면 북한 정권은 내부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이렇듯 세계는 북한군 파병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지만, 파병을 강행한 북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후 사태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파병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첨단 정찰위성, 핵추진 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재진입·다탄두 기술 등을 제공받아 북핵이 더욱 고도화하고 러시아의 기술지원으로 재래 군사력과 군수산업이 강화된다면 한국 안보에 엄청난 악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러시아와 북한을 향해 ‘선을 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세상을 위태롭게 하면서 공연한 딜레마를 자초해 왔음을 깨닫고 ‘몰염치와 무모함’을 거둬들이기로 작정만 해 준다면 선을 넘는 일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걱정하는 ‘최악의 사태’도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