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공연 시작 전 객석 누비는 배우들
무대 위에선 악기도 직접 다뤄
집시킹스 음악에 플라멩코 안무
러닝타임 2시간30분 동안
눈과 귀가 델 듯한 스패니시 에너지
커튼콜까지 관객에 대한 배려 넘쳐
주조연·앙상블 배우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워 관객 마음에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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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걸 조로를 기억하시는지.
검은 모자에 눈만 살짝 가린 검은 마스크, 검은 망토를 두르고 바람처럼 나타나 약자를 괴롭히는 악당들의 배때기 위에 날카로운 검 끝으로 갈지자(Z다)를 그려 넣는 영웅이다. 정체를 숨기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마스크 영웅의 이미지는 이후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의 히어로 캐릭터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대단한 가면족 영웅들 사이에서 조로는 가장 유쾌하고 로맨틱한 영웅일 것이다.
조로는 사실 소설 속 캐릭터다. 1919년 미국 작가 존스턴 매컬리의 소설 『카피스트라노의 저주』(The Curse of Capistrano)에서 처음 등장했다. 시간이 흘러 조로에 대한 판권을 보유한 조로재단에서 남미 여성작가 이사벨 아옌데에게 새로운 조로 집필을 의뢰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유학을 떠난 귀족 도련님 디에고가 어떻게 조로가 돼 스페인 지배를 받던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는지를 다룬 ‘조로(Zorro)’다.
오늘 소개할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은 이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배우들이 객석을 누비며 관객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눈다. “와! 새로워!” 할 만한 스타일은 이제 아니지만, 배우들은 꽤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중극장 크기(대학로 인터파크 유니플렉스 1관)의 공연인데 무려 러닝타임이 2시간30분. 하나뿐인 무대세트지만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눈과 귀가 델 듯한’ 스패니시 에너지 덕분일 것이다.
이 작품의 음악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집시밴드 집시킹스의 음악을 사용했다. 밤볼레오와 볼라레가 유명하다. 들어보면 “아, 이 노래” 싶을 것이다. 물론 뮤지컬에도 삽입됐다. 이들의 음악과 함께 집시음악과 궁합이 찰떡인 플라멩코 안무가 넘실대는 작품. 배우들의 기량도 고급스러워 느긋하게 관극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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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제목에 부제처럼 붙어 있는 ‘액터뮤지션’은 말 그대로 액터(배우)와 뮤지션(연주자)을 합쳐 놓은 단어다. 쉽게 말해 무대 위의 배우가 연기는 물론 악기 연주까지 한다. ‘조로’에는 중극장 공연치고는 꽤 많은 앙상블 배우가 등장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기타, 바이올린, 아코디언, 카혼, 트럼펫에 캐스터네츠, 탬버린까지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모두 오디션을 통해 뽑은 ‘액터뮤지션’이다.
‘조로/디에고’ 민규, ‘라몬’ 김승대, ‘이네즈’ 배수정, ‘루이자’ 서채이, ‘스토리텔러’ 심건우가 그렇게 캐스팅됐다. 아이돌 가수(DKZ)이자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꾸준히 서 온 민규는 대사와 노래 톤이 상당히 독특한 편이다. 사실 꽤 튀는 색깔이라 극에서도 도드라지는 쪽인데, 여기에 대해선 좋은 평가도 반대의 평가도 있을 것이다.
라몬의 김승대는 오랜만이다. 요즘 작품이 뜸했던 것 같다. 잔혹하고 냉혈한인 라몬이지만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자격지심, 두려움을 잘 표현했다. 예전부터 노래, 연기 다 좋았던 배우다. 전직 무술사범답게 액션도 능숙하게 소화했다.
집시퀸 이네즈는 불같은 성미를 지녔지만, 농염한 매력에 집시 특유의 지혜를 갖춘 여인. 어쩐 일인지 여주인공 루이자보다 이네즈 쪽이 더 인기가 높다. 배수정으로 관람했지만, 더블캐스팅된 홍륜희의 연기도 궁금하다. 이네즈의 경우 다소 두껍고 중성적인 음색이 잘 어울리는데(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집시여인 카르멘도 메조소프라노다), 배수정도 이네즈다운 소리를 냈다. 다만 원래 컬러는 이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당차고 용기있는 루이자의 서채이 역시 처음 본 배우. 투명하고 맑은 소리를 지녔다. 이런 소리를 가진 배우는 꽤 오랜만인 듯. 음정도 정확해 몰입해서 봤다.
커튼콜까지 관객에 대한 배려가 충실했던 조로다. 주조연은 물론 앙상블 배우들까지 너무나 사랑스러워 관객이 많이 좋아할 것 같다. 토요일 낮이었지만, 객석은 가득 찼다.
정보 하나 추가. 이사벨 아옌데 원작의 ‘조로’ 뮤지컬은 2011년에도 있었다. 당시 ‘조로’는 조승우, 박건형, 김준현이, ‘이네즈’는 이영미, 김선영이, ‘루이자’ 역에는 조정은, 구원영으로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2014년 재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 이번 공연은 삼연인 셈. 다만 ‘액터뮤지션’ 스타일로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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