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

입력 2024. 10. 11   16:39
업데이트 2024. 10. 13   14:44
0 댓글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고통과 마주하는 여정입니다. 트라우마는 극도로 위협적이거나 끔찍한 사건을 말하며, 우리가 맞닥뜨리는 가장 커다란 고통 중 하나입니다. 70~80%의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 이상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그중 절반은 두 번 이상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누구나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사고, 재난, 범죄, 성폭행, 가족의 죽음 등 사건 상황과 내용은 다르지만 트라우마는 생명과 안녕의 위협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뒤에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비상대응체계가 가동됩니다. 각성 수준이 올라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부분은 차단되고 기억에서 지워지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상황이나 대상을 피하느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대개 1~2년 안에 잦아듭니다. 강렬한 긴장반응이 가라앉고, 용기를 내 다시 세상에 발을 내디디면서 긍정적인 경험을 쌓아 가고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습니다. 앞날이 희망적으로 여겨질 때 드디어 트라우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심리학·사회학·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경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를 연구한 결과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는 사회적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안정적인 애착, 가족의 응원, 주변인들과의 긍정적인 관계가 역경을 극복하는 데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미국 하와이의 카우아이섬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열악한 가정환경과 알코올 중독 또는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를 둔 자녀 중 3분의 1은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고 학업 성적도 우수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역경으로부터 보호했을까요? 그들 곁에는 아이를 믿어 주고 지지해 준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비록 가정환경은 열악했지만 좋은 친구·선생님·이웃과의 사회적 애착이 역경을 이겨 내는 디딤돌이 됐습니다.

‘심리적 응급처치(PFA)’는 재난이나 위기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을 돕는 위기 개입법으로 ‘보고(Look), 듣고(Listen), 연결하기(Link)’의 3L을 강조합니다. 고통의 징후를 살펴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적극적으로 듣고 자원과 정보를 연결하는 것을 뜻합니다. 트라우마는 혼자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연결될 때 우리는 더 나은 회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회복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연결과 지지입니다. 서로를 지켜 준다는 믿음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희망과 연민이 담긴 응원을 받을 때 우리의 회복력이 발휘될 것입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