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국제인도법 바로 알기

지킬수록 피해 유도하는 법률전 새 법으로 대응 ‘무법’과 같아

입력 2024. 10. 04   16:50
업데이트 2024. 10. 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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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인도법 바로알기
하이브리드 전쟁과 국제인도법의 도전


러시아계 다수 우크라이나 크림지역
기습적으로 독립 선언 뒤 러와 합병
게릴라전·테러·사이버·역정보전 등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현대전 전형
전쟁 규제법 선별 적용·악의적 사용도
효과적 규제 위해 개정 주장 있지만
잦은 법 제정, 법적 안정성 훼손 우려

201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표식이 없는 녹색 군복을 입고 복면한 채로 등장한 러시아 무장 군인을 일컫는 ‘리틀 그린맨’. 출처=위키피디아
201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표식이 없는 녹색 군복을 입고 복면한 채로 등장한 러시아 무장 군인을 일컫는 ‘리틀 그린맨’. 출처=위키피디아

 


2014년 3월 11일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우크라이나의 크림지역과 세바스토폴 지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주장함과 동시에 크림공화국이 결성됐음을 선포했다. 이어 16일 전격적인 주민투표와 96.6%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크림공화국은 러시아와 합병을 추진했다. 전통적인 군사력에서 절대 우세했던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반군과 범죄단체, 그리고 러시아 특수부대이긴 하지만 소규모인 부대(러시아 특수부대원임을 숨기기 위해 부대 등 식별표지를 제거함)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자국 영토를 내줬다. 소련연방 해체 이후 국제사회에서 절대적으로 국방력이 쇠퇴한 것으로 판단된 러시아가 ‘무혈입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무런 피해도 없이 크림반도를 병합했다는 사실에 유럽과 미국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러 하이브리드전쟁에 당한 우크라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라는 강력한 재래식 전력을 바탕으로 한 유럽연합(EU)의 지지를 받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어떠한 피해도 없이 합병할 수 있었던 러시아의 전쟁 수행 방식에 관한 연구와 평가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이라는 용어로 지칭했다. 물론 크림 사태의 원인은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한 유럽 국가들이 제대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고, 우크라이나 정규 군이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전략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군사학적 담론에 비해 법적 담론은 많지 않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호프만 정의에 따르면 국가 또는 정치집단이 재래식 전쟁 수행 능력, 비정규전 전술과 조직, 무차별적인 폭력과 강압을 동반하는 테러 행위, 범죄행위 등의 다양한 방식을 수행하는 전쟁을 일컫는다.


하이브리드전 특징-다양성·동시성·융합

하이브리드 전쟁은 이런 특징이 있다. 첫째, 전쟁 수행 방법의 다양성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재래식 전쟁, 비정규전, 역정보전(disinformation), 테러 및 범죄행위 등 다양한 전쟁 수행 방식이 융합돼 나타난다. 둘째, 동시성이다. 이는 정규전, 비정규전, 테러, 범죄 등의 여러 방식이 동시에 한곳에서 진행된다는 의미다. 셋째, 융합이다. 여러 전투행위가 단순히 더해진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된 특정 목적의 달성을 위해 여러 형태의 전쟁 수행 방법이 마치 용광로에 녹아 각각의 특징이 모두 발현할 수 있는 형태로 수행된다는 걸 의미한다. 끝으로 여러 전투 수행 방식에서 우열이 없다는 점이다. 비정규전(게릴라전), 테러 또는 범죄, 사이버, 역정보전 등 앞서 열거한 전쟁 수행 방식이 전통적인 군사력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공통의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면 우선 적용된다.


태클에 태클로 대응한다면 규칙 어긴 것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국제인도법은 무의미한 것인가?

앞서 살펴본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관련해 주된 법적 담론 중 하나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는 법적 제약 없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와 비국가행위자는 전쟁수단에서 무제한적이다. 아울러 하이브리드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 또는 비국가행위자들이 관련 국제법을 선별적으로 적용하거나 상대방의 규범 준수를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법률전(Lawfare)’을 수행하고, 국제인도법을 준수하는 국가는 오히려 피해를 봐 국제인도법 등 관련 국제법의 준수 의지가 점점 퇴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전쟁에서는 국제인도법을 위반하는 국가(또는 비국가행위자)와 준수하는 국가 모두가 국제인도법의 효용성 또는 규범력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력 충돌 기간 중 의도적으로 국제인도법 또는 관련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 그들에게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일방 당사자가 의도적으로 국제인도법을 무시하고 중대한 위반을 한다면 상대방도 국제인도법 적용을 형평이라는 관점에서 그 준수를 중지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1949년 8월 12일 자 제네바협약 공통 2조는 “충돌 당사국의 하나가 본 협약 당사국이 아닌 경우 본 협약 당사국은 그들 상호관계에서 본 협약의 적용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상대방의 위반을 이유로 국제인도법을 준수할 의무가 중지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상대가 계속 위험한 태클을 하며 경기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규칙 자체가 불필요하거나 지키는 쪽만 불리하다고 규칙을 지키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규칙을 위반하는 상대방과 같이 자신도 규칙을 어긴다고 해 경기에서 더 이상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지거나 동일한 위반자에 불과하다는 평판처럼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전쟁 규제 법규 항상 불변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전쟁에서는 국제인도법을 준수하는 국가가 사실상 불리해 새로운 국제인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결론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첫째, 과연 하이브리드 전쟁이 새로운 유형인가의 문제다. 새로운 전쟁 유형이므로 이를 규율하기 위한 법규범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이브리드 전쟁이 새로운 전쟁 유형은 아니라는 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둘째, 이러한 주장은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무기와 전쟁 수행 방식은 계속 출현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동등한 전력을 갖추지 못한 일방은 비대칭적인 전략 또는 전술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상대방의 취약점을 극대화하려 했다. 매번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전략, 전술을 직면할 때마다 이를 규율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은 결국 법규가 없는 상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하이브리드 전쟁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국제인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휘호 흐로티위스의 격언 “전쟁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금지되는 것도 아니다”를 자주 인용한다. 그런데 흐로티위스의 격언을 이렇게도 생각해 보면 어떨지 제안해 본다. “전쟁을 규제하는 법규가 항상 불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상 변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 김회동은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전쟁법)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법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한국제법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필자 김회동은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인도법(전쟁법)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법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한국제법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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