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美 핵전략의 변화와 ‘한반도 비핵화’ 목표

입력 2024. 09. 06   16:25
업데이트 2024. 09. 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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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올해 들어 미국 핵전략이 변화의 기류를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에 이은 ‘핵무기 역할 축소론자’여서 취임하면서 단일 목적(sole purpose) 핵 사용, 선제 핵 사용 포기(NFU) 등을 주장했다. 핵무기는 미국이 핵 공격을 받을 때만 사용하고 먼저 핵을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정책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핵태세검토서(NPR)에 명시되면 핵우산이 약화돼 동맹국의 불신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했다. 이를 의식한 듯 2022년 NPR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곳곳에 바이든의 핵기조를 담아냈다. 핵순항미사일(SLCM-N) 개발이 중단됐고, 항공기 투하 B83-1(1.2Mt) 미사일의 퇴역이 결정됐다.

그랬던 바이든 행정부가 러·북·중이 협력해 미국에 핵으로 공격을 가하는 상황에 대비하는 군사지침을 만들고, 핵 운용체계 현대화도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월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러·북·중의 위험한 핵 행보를 경고하며 배치 핵무기를 늘리겠다고 했고, 선제 핵 사용 가능성도 내비쳤다.

북핵 기조에서도 다소 변화를 보였다. 미국은 지난 3월 NSC와 전문가들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간단계(interim steps)’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협상을 위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미국 민주·공화당의 정강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표현이 사라졌다.

국내에선 “미국이 북핵을 용인하는 것인가” “대북제재를 풀어 주고 핵 동결과 같은 땜질식 협상에 나서려는가”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브로맨스(bromance)가 재현되는가” 등의 우려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오해할 필요는 없으며 ‘북한 비핵화’라는 한미 양국의 지향점이 달라진 것으로 보긴 어렵다. 우선은 미 핵독트린의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 핵전략 변화의 핵심은 신냉전하 러·북·중의 핵무력 증강 및 핵 공조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며,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중간단계’를 언급하는 것은 당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북한 핵 포기에만 매달리기보다 ‘북한의 핵 사용 방지’로 초점을 옮기면서 러·북·중이 제기하는 핵 위협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또한 미국은 북핵을 용인(accept)하는 게 아니라 인지(recognize)하는 것뿐이며,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북핵을 용인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미국의 이런 현실적 접근이 한국에 불리할 건 없다. 그럼에도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는 한미 간 계속적인 협의와 합의가 필요하며, 한국은 비핵화로 가는 다른 경로도 준비해야 마땅하다.

통상 핵군축이나 비핵화 합의는 한쪽이 물에 빠지면 상대방도 함께 빠지는 ‘통나무 타기(log-rolling)’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양쪽 모두가 핵 경쟁을 ‘부담스러운 독’으로 느낄 때 협상이 시작된다. 대기권 핵실험금지조약(PTBT·1963), 핵확산금지조약(NPT·1970), 중거리핵폐기조약(INFT·1987) 등 숱한 핵군축 조약이 그렇게 성사됐다. 1991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핵물질감시통제기구(ABACC) 설치로 핵 개발 경쟁을 포기한 것도 두 국가 모두 핵 경쟁에 큰 경제·군사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만이 ‘핵 보유 특권(?)’을 누리는 현 핵 비대칭 상황하에서 평양이 비핵화 요구를 경청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은 미 전술핵이나 자체 핵무장으로 핵 균형을 맞추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한다. 이런 방안들은 결코 ‘완전한 북한 비핵화’ 목표와 상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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