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극복, 그리고 성장. 여군이 창설된 지 74년, 그동안 많은 이들이 새로움에 ‘도전’했고, 힘든 순간을 ‘극복’했고, 마지막엔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땀방울은 후배들을 위한 이정표가 됐습니다. 2024년 한 해, 선배전우의 발자취를 따라 도전·극복·성장 과정을 경험하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땅과 바다, 하늘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이들을 만나 봤습니다. 글=이원준·조수연·김해령/사진=김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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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12사단 을지대대 GOP 중대장 원가연 소령(진)
사람 업무 환경 벽 넘어 최전방 사수
지난 2일 강원도 양구군 육군12보병사단 을지대대 최전방 일반전초(GOP). 중대원 집합을 알리는 원가연(소령·진) 중대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서글서글한 인상이지만 부하들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눈매가 빛났다. 지난 훈련 내용을 묻는 중대장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무조건 반사’에 가까운 중대원들의 대답이 쩌렁쩌렁하게 돌아왔다.
추위와 더위, 고독이 일상인 이곳에 스스로 뛰어든 그는 22개월 째 묵묵히 임무를 이어왔다.
“군의 존재이유는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GOP는 늘 적을 바라보고 있기에 ‘왜 군인으로서 이곳에 있는가’에 대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상황이 발생하면 전 나가야 하고 싸워야 합니다. 여기서 죽는 게 당연하다고 병사들에게도 항상 말합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원 소령(진)에게 성별이란 잣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제가 2022년에 처음 대대에 왔을 때보다 여군 비율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여군이) 어떤 직책에 가더라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힘들 때가 많지만 ‘그래, 못할 게 뭐 있어?’란 생각으로 헤쳐나갑니다. 여군 후배들이 GOP 중대장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
‘유리벽’을 깨고 GOP 중대장에 보임됐을 때 후배들의 존경 어린 시선과 연락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의미있는 길을 걷고 있는 만큼 책임감도 커 원 소령(진)의 어깨는 무겁다.
“남들 앞에서 티는 안 내지만 뒤에서 여군 후배들의 애로사항을 자주 묻습니다. 저도 분명히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 버티고 잘 해내야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편견 없이 능력있는 군인을 GOP 중대장에 보임한 지휘관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당시 지휘관은 원 소령(진)에게 ‘사람의 벽’ ‘업무의 벽’ ‘환경의 벽’을 극복하라고 당부했다고. 이른바 ‘3벽 극복’은 원 소령(진)의 군생활 지표가 됐다. 이·취임식날 SNS 프로필에 걸어둔 ‘3벽을 극복하자’는 문구는 지금도 그대로다.
그는 앞으로의 다짐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부대원들이 다치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키면서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임무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각자 묵묵히 맡은 역할을 하면 인정은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목적 의식을 갖고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정신으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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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심해잠수사 문희우 대위(진)
심해잠수사 휘장 휘날리며 구조 완수
짧게 다듬은 머리, 구릿빛 피부. 지난달 30일 해난구조 기본과정 수료식에서 만난 문희우 대위(진)는 다른 심해잠수사처럼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수료식 내내 무표정을 유지하던 그는 갑자기 소녀가 돼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심해잠수사 휘장을 달아주는 부모님과 꽃다발을 건네는 임관 동기들을 보니 악으로 버틴 순간이 생각났는지 울먹이기도 했다.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체 뜀걸음을 할 때는 동기생 발만 보고 ‘다리야 굴러가라’라고 외치면서 뛰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면 일주일이 지나 있었고, 또 버티다 보니 한 달이 갔습니다.”
12주 동안 진행되는 해난구조 기본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이들만 도전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낙오한다. 해난구조 현장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문 대위(진)도 남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교육을 소화했다. 짧은 머리, 검게 탄 피부는 그의 분투가 남긴 영광스러운 증거다.
“입교 전날 어깨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카락을 약 1㎝만 남기고 모두 잘랐습니다. 짧은 머리 탓에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여군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훈련 초반에 매일 7시간씩 수영하고, 뛰고, 해난구조 특수체조를 하며 체력적으로 부담을 겪었고 고비도 여러 번 왔습니다. 퇴교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이를 더 악물었습니다.”
문 대위(진)에게 해군 심해잠수사는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았다. 바다에서 국가에 헌신하는 해군과 각종 해상재난사고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심해잠수사는 동경의 대상이자 군 생활의 목표였다.
그리고 꿈은 현실이 됐다. 이제 그는 최고의 구조작전 전문가로 성장해 후배들을 위한 나침반이 되고자 한다.
“해군에서 심해잠수사의 꿈을 가졌고, 도전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뤄냈습니다. 왼쪽 가슴에 단 심해잠수사 휘장은 땀과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입니다. 심해잠수사의 꿈은 이뤘지만, 아직 해군에서 펼치고 싶은 꿈이 많습니다. 첫 여군 심해잠수사로서 후배들이 저를 보고 도전할 수 있도록 성장하겠습니다.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 구조임무 완수라는 목표 지점을 향해 굳세게 나아갈 것입니다. 구조작전 전문가가 되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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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KF-21 시험비행 조종사 정다정 소령
첫째도 둘째도 끝까지 안전비행 고수
4일 오전 서산기지, 2026년 도입을 목표로 체계개발에 한창인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수십 분의 준비 끝에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KF-21은 기지 상공을 300피트, 저공으로 통과하더니 순식간에 높이 솟아올라 구름 위, 3만 피트를 비행하며 탑재된 첨단 장비를 시험했다.
막중한 서산기지 첫 시험비행에서 KF-21 전방석 조종간을 잡은 건 공군시험평가단 52시험비행전대 시험비행조종사 정다정 소령. 그는 2019년 여군 최초로 개발시험비행 교육과정에 선발됐다.
11개월의 국내 시험비행 교육·훈련, 9개월간 해외 비행시험학교에서 실무연수 과정을 마친 뒤 지난달 23일 시험비행조종사로 거듭났다.
KF-21 개발시험비행 자격을 얻는 과정은 험난했다.
1350여 시간을 비행한 ‘베테랑 조종사’ 정 소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KF-21이 개발 중인 탓에 비행 운영 절차·규정·교범도 계속 수정되죠. 지난주에 적용됐던 비행절차도 이번 주 변경되고, 같은 장비 사용법도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동료 조종사들뿐만 아니라 개발사 엔지니어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 소령은 혹독한 개발시험비행 자격 획득 과정 중 위기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여름철 갑작스러운 뇌우 속에서 비행했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이륙한 지 15분 정도 지난 후 기지 일대에 뇌우경보가 있다는 소식에 급하게 복귀해야 했습니다. 비를 뚫고 착륙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체로 악천후 속에서 착륙하는 건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했습니다. 후방석 교관의 조언을 들으며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는데, 이 경험으로 비행임무에서 ‘기본’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무엇보다 KF-21의 우수성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 소령은 ‘여군 최초 KF-21 시험비행조종사’라는 수식어가 대수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한 임무 완수로 항공우주력 강화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여군 최초 KF-21 시험비행조종사’는 없습니다. 그냥 ‘KF-21 시험비행조종사’만 있을 뿐. ‘우리가 처음이다! 끝까지 안전하게!’ 281시험비행대대 구호대로 끝까지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게 최종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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