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오늘도 내 뒤를 밟고 있다
눈 코 입을 가린 보이지 않는 손가락 그 검은 동선을 따라 말들은 뛰어가고 달리는 말 앞질러서 더 세게 달리는 말, 주변을 둘러싼 얼룩무늬 소리 따라 더 높이 더 멀리 떠오르는 말풍선 실시간 말꼬리 잡고 늘어지던 말꼬리 먹통이 된 모니터 속 어딘가에 숨은 손이 수시로 들락날락 방을 털고 마스크 쓴 입들이 현란하게 떠도는 밤
바닥엔
찢긴 말들이
필름처럼 쌓여 있다
<시 감상>
얼핏 스릴러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시작하는 이 시는 “모니터 속” 말들의 세계다. “눈 코 입을 가린”, 즉 탈(페르소나·persona)을 쓴 공간이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조작하는 “검은 동선을 따라” 말(言)이 말(馬)처럼 경쟁하고 “말풍선 실시간 말꼬리 잡고 늘어지”며 싸우는 진창이다. 그런데 시인이 보여 주는 그곳이 과연 “모니터 속” 가상의 공간뿐일까?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진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편리한 소셜미디어 소통 도구에서 말이 통합과 웃음의 추동력을 견인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과 갈등의 전시장이 돼 난무하는 세태 말이다.
심리학에서는 페르소나를 내적 인격인 영혼과 대비되는 외적 인격으로 본다. 사회적 관계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밖으로 내놓는 공적 얼굴, 그 페르소나는 단지 사회적 욕망의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존재가 된다.
언어는 그 사람의 문화체험에서 비롯하는 것이어서 그 사람의 삶·지식·생각 등이 배어 있는데, 진정한 자신과 동떨어진 사회적 욕망의 페르소나에는 진정한 자아의 언어가 없다. 시인은 거침없이 쏟아 내는 욕설이나 비속어,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비틀린 언어들이 욕망의 페르소나 배설물에 지나지 않음을 넌지시 비춰 준다. 결국 “바닥엔/찢긴 말들이/필름처럼 쌓여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좋든 싫든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곳에서 발현하는 페르소나가 빛이 되느냐, 어둠이 되느냐는 우리의 생각과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자체가 빛과 어둠의 일방적 행위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은 한 편의 사설시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일면을 넌지시 비춰 준다. 그 풍자시 표면의 언어는 씁쓸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언어의 안쪽에서 환한 웃음으로 피어날 화목의 불씨를 본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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