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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앙상한 다리로 굳게 딛고 서다

입력 2024. 09. 05   16:11
업데이트 2024. 09. 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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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⑫ 자코메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


흙으로 형상 빚은 뒤 청동 부어 굳혀

손으로 매만진 흔적 고스란히 남아
비쩍 마른 모습…왠지 안쓰럽지만 
쭉 뻗은 손·거친 표면 강인함 느껴져

 

알베르토 자코메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  출처=크리스티 홈페이지
알베르토 자코메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  출처=크리스티 홈페이지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다시 보니 비쩍 마른 인간의 형상이다. 만지면 으스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몸이지만 제법 두 다리를 쭉 펴고 버틴다. 왼손으로는 후방의 누군가를 부르고, 오른손으로는 정면을 가리키는 걸 보니 함께 해 보자는 굳건한 의지를 표하는 모습이다. 수많은 고초를 이겨낸 듯한 거친 표면은 강인함을 더한다.

고개까지 꼿꼿하게 들어 기개가 느껴지는 이 청동상은 스위스 태생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가 1947년 제작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로, 약 180㎝ 높이의 실물 크기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조각으로 2015년 5월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1억4130만 달러(약 1549억 원)에 낙찰됐다. 이전 조각 경매 최고가 역시 자코메티의 작품으로 2010년 2월 런던 소더비경매에서 6500만 파운드(약 1067억 원)에 판매된 ‘걸어가는 사람’(1960년 작)이다.

고가 미술품 순으로 상위 100위 안에서 회화가 아닌 건 자코메티의 조각뿐이다. 조각은 회화에 비해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편이다. 회화가 주로 거래되는 미술시장에서 자코메티의 조각만이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대까지 거래되는 이유는 다양한데 무엇보다 그가 일군 미학적 혁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자코메티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한 이탈리아계 혈통의 스위스인으로 아버지는 후기 인상파 화가인 조반니 자코메티다. 형제인 디에고와 브루노, 사촌들 상당수가 화가나 건축가였을 만큼 집안에는 예술가가 많았다. 가족 영향 때문인지 일찍이 예술가가 되고자 제네바 예술학교 졸업 후 1922년 파리로 건너가 파블로 피카소, 후앙 미로 등의 예술가와 교류하며 유럽 화단을 지배하던 입체파와 초현실주의에 눈을 떴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의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과 오만이 야기한 비극을 개탄하며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었다. 자코메티는 대세에 따라 기이한 형태의 작업에 몰입하다 점차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에 한계를 느끼며 기존 작품 대부분을 파괴하고 인간의 실재를 형상화하겠다는 의욕을 키워 나갔다. 마침 인간의 존재성과 주체성을 파헤치는 장 폴 사르트르를 포함한 철학자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실존주의 철학을 흡수해 갔다.

주변 인물을 모델로 손바닥 크기의 작은 조각을 만들던 중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스위스로 피란을 떠난 자코메티는 파리의 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왜소한 조각상을 만들고 해체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편집증적 증상이 짙어졌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7년의 어느 날, 작은 인물상의 미약한 존재감을 확장하다 길고 가느다란 형상을 완성했다. 고전시대 인물상의 풍요로움을 제거한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난 앙상하고 고독한 인간상이었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허약하게 키워냈지만 발 크기만큼은 큼직하게 만들어 바닥에 굳건히 붙여 놓았다.

자코메티의 조각은 흙으로 형상을 빚은 뒤 주물을 떠서 그 주물에 청동을 부어 굳혀 만들기 때문에 손으로 주무르고 매만진 작가의 손결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러한 거친 표면은 원시의 돌이나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유럽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바라보며 문명의 남용과 탐욕을 버리고 원시 사회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던 시기였다. 원시의 인간상을 떠올리게 만들면서도 온몸으로 고통을 겪은 고단한 인간이 버티고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위안을 얻었다.

이때 제작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를 1948년 1월 뉴욕의 피에르 마티스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선보였다. 다른 유명한 작품인 ‘걸어가는 사람’ ‘서 있는 여인’과 함께 전시장의 전면에 배치됐다. 당시 미국 미술을 주도하던 추상표현주의와 다르게 인간 본연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유럽에서도 시대를 풍미하던 실존주의와 흐름을 같이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는 같은 주물로 6점의 에디션과 작가 소장용 에디션 1점도 만들었다. 그 가운데 5점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모던 등 유수의 미술관과 재단에 소장됐다. 훗날 개인 컬렉터가 소장한 두 점 중 한 점이 미술시장에 나오자 세계적인 미술관이 인정한 작품을 소장하기 위한 컬렉터들의 경합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자코메티는 1962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조각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회화 작업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는 파리 맹드롬가 46번지에 있는 약 7평짜리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다. 완성에 이르렀다고 여긴 적이 없었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조각하기 위해 끊임없이 매달렸다. 동일한 주제와 비슷한 형태의 작업을 지속한 이유다. 한 주물로 수많은 에디션을 만들 수 있음에도 작품을 남발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은 바로 폐기하는 엄격한 예술가였다. 1966년 65세의 나이에 만성기관지염이 심장쇠약으로 이어져 갑작스레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다 나은 완성을 위한 도전을 지속했다.

예술 작품은 시대와 문화권의 차이가 주는 공감대 형성에 대한 한계를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공감을 일으키는 보편적 정서로 환원될 때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자코메티의 작품은 불안과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의 초상과도 다름없다. 관람자들은 점점 더한 경쟁에 치닫는 사회에 놓인 자신을 투영하며 작품에 몰입하고, 견디고 지내야 할 상황에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한다.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를 얘기하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바라보며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도 땅에 발을 단단히 디디며 힘차게 나아간다.


필자 백승옥 비커밍아트 대표는 미술사와 문화정책을 전공했고,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한 전시기획과 강의를 한다. 해외 미술 동향과 예술 후원에 관한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필자 백승옥 비커밍아트 대표는 미술사와 문화정책을 전공했고,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한 전시기획과 강의를 한다. 해외 미술 동향과 예술 후원에 관한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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