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프랑스혁명에서 시작…개인의 자유가 사회보다 우선

입력 2024. 09. 04   14:37
업데이트 2024. 09. 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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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17. 19세기 자유주의(상)
-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주창하다! 

‘자유로울수록 더 나은 존재’ 주장

모든 일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믿어
입헌주의 도입 통해 책임도 강조
참정권 확대·독립국가 건설 추구

프랑스 2월 혁명(1848) 때 파리 시청 앞에 운집한 시위대. 프랑스 화가 앙리 에마뉘엘 펠릭스 필리포토가 그린 ‘1848년 시청에서 혁명의 붉은 깃발을 물리치는 라마르틴’. 출처=위키피디아
프랑스 2월 혁명(1848) 때 파리 시청 앞에 운집한 시위대. 프랑스 화가 앙리 에마뉘엘 펠릭스 필리포토가 그린 ‘1848년 시청에서 혁명의 붉은 깃발을 물리치는 라마르틴’. 출처=위키피디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를 축으로 개인의 경제활동과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있다.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자유(自由·freedom)’다. 앞 회에서 언급했듯, 인류 역사에서 서양의 19세기는 지성사적으로 수많은 ‘이즘’이 분출한 다이내믹한 세기였다. 우리는 여전히 19세기에 출현한 사상들이 배태한 이슈 범주 속에서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이즘 중 19세기 서양 지성사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19세기 전반기에는 자유주의(liberalism)를, 19세기 후반기에는 민족주의(nationalism)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인류 역사 전면에 등장해 역사 진보의 중요한 지적 동력으로 작동했을까? 바로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앞선 글에서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계몽주의를 지적 토양 삼아 18세기 말 유럽사회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프랑스혁명에서 주창된 것이 바로 자유(Liberty)·평등(Equality)·우애(Fraternity)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랑스혁명 이념은 19세기 초반에 나폴레옹과 그의 프랑스 군대를 통해 전쟁이라는 방식을 매개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과연 자유주의는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을까? 대표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자의적 권위로부터의 해방으로 인간 각자의 이성과 그에 따른 행동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역사 속에서 자유주의는 각 분야에 따라 약간씩 다른 모습으로 구현됐다. 정치적으로는 입헌주의와 참정권 확대를 추구하는 것으로, 경제적으로는 자유방임주의로, 사회적으로는 노동조건 개선으로, 그리고 종교 및 문화적으로는 종교적 관용과 언론의 자유라는 형태로 말이다. 현실적으로 자유주의의 전개 양상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크게 봐 영국, 프랑스처럼 이미 개인의 자유가 확보된 곳에서는 선거권 획득 및 공화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탈리아, 독일 등 외세 간섭과 지배 아래 놓여 있던 곳에서는 민족의 자유, 즉 독립 국가 수립을 위한 열망과 투쟁으로 이어졌다.

본질상 자유주의는 근대적 이념으로 프랑스혁명 이후 19세기 시동을 걸었으나, 실제로 인간의 ‘자유’ 추구는 나름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넓게 보면 신·인간·자연의 삼자 관계에서 인간 위상의 변화 및 인간 각자의 존엄성 확보와 관련돼 있다. 자유의 실현은 공짜가 아니라 장기간의 투쟁과 특히 혁명적 사건을 통해 달성될 수밖에 없었다. 르네상스가 중세 교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는 인간을 찾고자 했다면, 종교개혁은 루터의 만인사제주의 주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성서를 통해 신과의 직접적 만남을 추구하는 인간을 내세웠다.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정합(整合)적인 세계관을 모색한 17세기 과학혁명을 거친 후에는 계몽주의를 통해 합리주의와 인간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표출했다. 이러한 지성사적 흐름은 마침내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탄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 8. 26)’ 속에서 ‘자유·평등·우애’라는 개념으로 명문화됐다.

이러한 흐름을 지성사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양의 중세에는 신의 권위가 모든 것 위에 있었다. 따라서 신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달성됐다.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드디어 역사 시작 이래 인간을 속박해온 자연마저도 숭배하고 두려워할 존재에서 제외됐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끼리의 속박관계를 해소하는 일이었다.”

자유주의는 19세기 서양세계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간주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이란 자유로울수록 더 나은 존재(자아의 최고 잠재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개성적 인간)로 향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어의 ‘자유주의적(liberal)’이란 말도 ‘자유로운’에 해당하는 라틴어 ‘리베르(liber)’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에게 최고의 선은 곧 ‘개인의 자유’였기에 반대로 이들에게 최고의 적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이었다. 자유주의는 사회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등과 달리 인류 사회가 언젠가는 이상향에 도달하리라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은 세계를 개혁하고자 했을 뿐, 세계를 완전히 변화시키거나 인간 본성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러한 차원에서 거대하고 급격한 변화를 바라는 자에게 자유주의는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지루한 사상이었다. 현실적으로 자유주의는 어느 정도 재산이 있고 교육을 통해 교양도 갖춘 중산계층 정부가 통치하는 세상을 추구했다.

‘자유’는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임에는 분명하나 이것이 진보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용(tolerance)’과 동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일찍이 19세기의 대표적 자유주의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명저 『자유론』(1859)에서 “자유란 타인의 행복을 빼앗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파했다. 개개인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추구해야 한다. 더불어 개인의 운명은 오로지 본인의 품성과 재능으로만 결정돼야 했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다른 무엇보다도 앞에서 언급했듯, 개인주의를 기초로 한다. 이는 개인은 사회보다 실재하며 우선한다는 원리 아래 집단에 대해 개인의 우선성과 우월성을 옹호한다. 단적으로 모든 일은 개인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근대과학이 자연과 인간을 떼어놓은 데서 탄생했듯이 자유(주의)는 인간과 인간을 서로 분리시키는 개인주의 철학의 토대 위에서 자체 사상과 이론체계를 정립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자연 속에서 개인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문명이 탄생한 이래로는 더욱더 공동체를 형성해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불가피하게 개인 간에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입헌주의가 전제돼 있어야만 했다. 이는 자의적 지배를 방지하고, 개인의 자유 남용을 배격하는 동시에 법에 의한 지배(법치주의)와 법 테두리 안에서의 개인 자유 향유를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법의 공정하고 보편적인 적용을 중시하는 동시에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 강조돼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과 출판의 자유, 즉 한 인간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생각(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야만 했다. 모든 개인은 각자의 삶과 사유의 절대적인 주인이기에 타자나 권력기구의 견해가 개인의 영역을 간섭하거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었다. 심지어 밀은 『자유론』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고 있다: “단 한 사람만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다음 회에서는 정치적 자유에 이어 현대사회의 화두이기도 한 사회경제적 측면의 자유주의에 대해 살펴본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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