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 게오르크 빌프리드 슈미트 주한 독일대사
한반도 평화·안정 기여
한국과 긴밀 공조…6개월 만에 가입
밀접해지는 러·북 관계 대응
양국 안보협력에 도움 판단
공고해진 군사협력
사이버안보·방위산업 협력 강화
유엔사 다국적 훈련도 참가 계획
남은 임기 동안 목표
기후위기·인구변화 대응안 모색
해결책 마련 매개체 역할 하고파
‘독일제국을 대표하는 독일 황제이자 프로이센 국왕과 조선의 국왕은 양 제국의 지속적인 우호관계와 양국 국민의 편안한 통상 교류를 위해 조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1883년 11월 26일 체결한 조·독(한·독) 통상우호항해조약의 첫 문구다.
141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한·독 관계는 6·25전쟁을 계기로 더욱 밀접해졌다. 독일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인 1954년 5월 부산에 적십자병원을 열었다. 독일적십자병원은 1959년 3월 문을 닫을 때까지 24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1만6000여 건의 수술을 시행하고, 6000여 명의 신생아 출산을 도왔다. 우리 정부는 2018년 독일을 6·25전쟁 의료지원국으로 공식 인정하고 참전국에도 포함했다.
1960년대 들어서는 경제 분야 교류가 활발해졌다. 1963년 ‘한국 광부의 임시 고용계획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며 우리나라 광부들이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66년부터 간호사들도 독일로 향했다. 1963~1977년 사이 독일로 파견된 광부는 8000여 명, 간호사는 1만1000여 명에 이른다. 독일 정부는 한국 경제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 차관을 제공하는 한편 산림·축산 등의 분야에서도 협력하며 ‘한강의 기적’ 토대를 지원했다. 현재 독일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자 유럽 국가 중 한국의 최대 교역 대상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883년 조약 문구 속 ‘지속적인 우호관계와 양국 국민의 편안한 통상 교류’가 현실화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양국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마련됐다. 지난 2일 독일의 유엔군사령부(유엔사) 가입이 바로 그것이다. 글=최한영/사진=조종원 기자
국제법 준수·유엔 역할 중요하게 여겨
“한국이 1953년 7월 이후로 정전(停戰·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함) 상태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잊고 있다. 한국에 오면 평화롭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체결 후 유엔사에서 (한반도 내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협정 준수 여부를 감독하고 있다. 독일이 유엔사에 가입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안정에 기여하려는 의지, 한국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상징을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게오르크 빌프리드 슈미트 주한 독일대사는 지난 21일 주한 독일대사관저에서 진행된 안터뷰에서 유엔사 가입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슈미트 대사는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큰 틀에서 보면 독일이 국제법을 준수하며, 유엔의 역할과 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언급했다. 6·25전쟁 초기 유엔 안보리 결의, 정전협정 체결 후 한국에 전투병력을 파병한 참전국 대표들이 미 워싱턴DC에서 채택한 ‘한국 휴전에 관한 16개국 공동정책 선언문(워싱턴선언)’에 따라 창설·유지 중인 유엔사의 역할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엔사 가입은 독일 정부가 내놓은 ‘인도·태평양 가이드라인’의 일환이자 유럽과 아시아 안보가 긴밀히 연결됐다는 생각의 연장선”이라고 덧붙였다. 슈미트 대사는 이 대목에서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 후 긴밀해지는 러·북 관계를 언급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유엔 대북제재를 피해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제공받고 있다. 러시아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제재를 결의했음에도 북한과 거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에서 (북한산 무기를) 사용한다. 이는 독일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반대로 북한도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한 대가로 각종 지원을 받고 있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모르지만 한국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가 상호 연관됐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한국과의 안보협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슈미트 대사는 지난 2월 2일 독일이 유엔사 가입신청서를 냈다고 밝혔다. “신청서를 제출한 뒤 유엔사가 제시한 가입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엔사 주재국인 한국과도 긴밀히 협력했다(한국은 6·25전쟁 당사국이자 유엔사 주재국이지만, 회원국은 아니다). 지난달 나토 정상회의 중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유엔사 가입을 위한 좋은 신호가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독일의 유엔사 가입이 6개월 만에 성공리에 끝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내달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 참석 추진
독일의 유엔사 활동은 활발해질 전망이다. 슈미트 대사는 지난 20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폴 러캐머라 사령관 주관 유엔사 회원국 대사 원탁회의에 참석했다. 독일의 유엔사 가입 후 첫 공식 행보다. 독일 무관부는 최근 유엔사 연락관 승인을 받았으며, 다음 달 10일 제2차 한·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슈미트 대사는 “각종 회의·행사 외에 유엔사 주관 다국적 훈련에도 참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독일의 군사협력도 긴밀해질 전망이다. 슈미트 대사는 다음 달 초 인천항에 독일 해군 프리깃함 바덴뷔르템베르크함과 군수지원함 프랑크푸르트암마인함이 입항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이는 독일 정부가 ‘인도·태평양 가이드라인’에 기반해 이 지역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라며 “한국 해군과 협력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지난 2일 우리 국방부에서 열린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과의 회담에 배석했던 슈미트 대사는 양측이 사이버안보와 방위산업 분야 등에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앞서 언급한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가 연결됐다’는 사실은 사이버공간에서 정도가 더하다. 군과 민간 영역이 겹치기도 한다. (해커집단의) 원자력발전소나 금융시스템 공격은 국방과 연관되며, 전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는 공감대 속에 양 장관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방위산업의 경우 보안 문제로 다른 나라와 협력이 활발하지 않지만, 양국이 방산 강국이기에 교류가 가능한 분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 독일적십자병원, 피란민에게 큰 도움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예로 2018년 독일의 6·25전쟁 의료지원국 포함을 빼놓을 수 없다. 1953년 4월 콘라트 아데나워 서독 총리는 한국에 독일적십자 야전병원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1954년 5월 민간인을 위한 적십자병원을 부산에 개원했다. 슈미트 대사는 “정전협정 체결 후였지만 민간 의료지원 수요는 여전히 많았다”며 “힘든 삶을 살던 피란민들에게 독일 의료진이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1959년까지 독일 의료진이 머물며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한국 의료인력 교육도 병행했으며, 교육받은 간호사 중 일부가 1960년대 독일로 파견됐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슈미트 대사는 “양국 간 정서적 차원의 유대가 6·25전쟁 의료지원국 인정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21년 10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광장에 독일의 6·25전쟁 참전기념비가, 지난 5월 베를린 독일적십자사 본부에 참전기념 조형물이 각각 들어선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70여 년 전 독일을 포함한 6·25전쟁 참전국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 주는 기념물이 양국 간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1950년대 부산 독일적십자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감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토가 분단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서독은 1990년 통일됐지만, 남북한은 여전히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슈미트 대사는 “한국만큼 독일 통일을 자세히 연구한 나라도 없다”면서도 “주로 통일시기를 많이 연구하는 것으로 아는데, 동·서독이 분단시기에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974년 동·서독은 상대 수도에 (사실상 대사관인) 상주대표부를 설치했다. 동·서독은 정치적으로는 달랐지만 어떻게 같이 살아갈지, 갈등을 예방할지 많이 연구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등 한국 내 많은 기관과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독일 통일에서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변화는 언젠가 찾아온다. 그때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독일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되기까지 12개월이 안 걸렸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인식을 토대로 유연한 결정을 한 것이 주효했다.”
“한국 매력에 푹 빠져”
지난해 8월 부임한 슈미트 대사는 아시아와 많은 인연이 있다. 홍콩대에서 역사학·경제학 학사, 런던대에서 극동아시아학 석사를 마쳤으며 외교관이 되고서는 주일 독일대사관 1등 서기관, 독일연방대통령청 아시아·호주·아프리카·개발협력과장 등을 역임했다. 직전 근무지도 태국이었다.
슈미트 대사는 “그간의 경험과 웬만한 한자는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주한 독일대사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한국만의 고유한 역사·문화·정책이 있기에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일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특색을 알아가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슈미트 대사는 1980년대 말 관광객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는 한국의 변화가 당시와 비교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금은 한국의 산·전통시장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고향이 독일 슈바르츠발트 산악지역이라 원래 산을 좋아한다. 서울은 몇 걸음만 걸으면 산이 있어 좋다. 산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는 것도 반긴다. 전통시장은 물건을 직접 보고 냄새를 맡아 보며 사는 것을 좋아해 자주 찾는다. 전통시장 광팬이라고 봐도 좋다.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불필요한 포장재가 없어 친환경적이라는 이점도 있다.”
슈미트 대사에게 남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물었다. “한국과 독일의 안보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는 첫 목표는 독일의 유엔사 가입으로 성사됐다. 두 번째 목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주한 독일대사관은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기후대화’ 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해법을 논의 중이다. 인구변화 대응이 세 번째 목표다. 한국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아는데, 원인 분석과 해법 마련이 간단하지 않다. 사회정의, 불균형 등의 문제도 결합해 있다. 한국과 독일이 해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기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장을 대사관에서 열어 관련 분야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매개체 역할도 하고 싶다.”
유엔사는?
1950년 7월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제84호에 따라 창설된 미국 주도 통합사령부다. 이에 따라 유엔군사령관은 정전협정 서명자이자 이행·준수자다. 최초 유엔사 회원국은 6·25전쟁 전투병 파병 16개국이었다. 일부 국가의 탈퇴·재가입, 의료지원국 가입이 이어지며 최근까지 17개국 체제로 유지됐다. 독일의 가입으로 유엔사 가입국은 18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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