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만나는 2024 트렌드 - '밥'상의 전환
가정 요리·외식 개념 모호한 시대
투자하는 시간·노력 따라 재구분
편한 곳서 자주 먹는다면 일상식
노력 들이면 흔한 음식도 특별식
“집밥보단 외식?”…1인당 쌀 소비 50년 새 절반으로 ‘뚝’ (2024년 8월 7일 자 기사)
“비싼 외식 대신 집밥 먹는 소비자” (2024년 8월 12일 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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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제목의 기사가 불과 5일 차이로 보도됐다. 5일 사이에 외식을 많이 하던 소비자들이 집밥으로 돌아섰을 리는 없고 두 기사는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기사는 통계청 통계개발원의 통계플러스 봄호에 실린 ‘하루 세끼, 우리는 쌀을 어떻게 소비할까’ 보고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에서 2022년에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56.7㎏으로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내식(‘집밥’)으로 섭취한 쌀이 외식으로 섭취한 쌀보다 많았으나 2019년에 이르러 외식 쌀 섭취량(59.4g)이 내식 쌀 섭취량(49.3g)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반면 두 번째 기사는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분기 지수가 75.60으로 지난 분기 대비 3.68포인트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에서도 가정간편식(HMR)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을 들어 소비자들이 외식보다 집밥을 찾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두 기사 모두 충분히 이해할 만한 내용이지만 사실 두 기사는 ‘집밥’과 ‘외식’이라는 말을 조금 다른 뉘앙스로 사용하고 있다.
첫 번째 기사에서 다룬 보고서는 외식을 가구 내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은 경우(가공식품 제외)로 정의한다. 집밥(혹은 내식)은 이름 그대로 집에서 조리과정을 거친 음식이다. 다시 말해 조리(생산)가 어디에서 이뤄졌는지 공간이 그 기준이다. 반면 두 번째 기사에서 외식은 다소 비싸고 기분 낼 때 먹는 식사, 집밥은 저렴하고 특별하지 않은 식사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돌아보면 현재 공간에 따른 집밥과 외식의 개념 구분은 모호해졌다. 남은 배달 음식을 새롭게 조리해 먹는 것은 집밥일까 외식일까? 다시 말해 이제 밥상을 나누는 새로운 기준은 식사에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들이는가에 있다. 이에 따라 ‘일상식’과 ‘특별식’이라는 발상의 전환, 아니 밥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기존 집밥 개념을 대체하는 일상식은 일상적으로 자주 섭취하며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하는 식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매우 편한 차림으로 집 앞의 자주 가는 분식집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온다면 소비자는 이를 특별식이 아니라 일상식으로 인식할 것이다.
집밥 대신 일상식이 주요한 식사가 되면서 나타나는 변화의 첫 번째는 ‘밥’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혼살림을 장만하며 밥솥을 구매하지 않는 젊은 부부가 많은데 이들은 필요할 때 즉석밥을 이용한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햇반’의 지난해 국내외 전체 매출은 2020년 5595억 원에서 2023년 8503억 원으로 급증했으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량도 중요하겠지만 용량을 줄인 작은공기나 잡곡밥 등 소비자 요구에 맞춘 제품 출시도 한몫했다. 이외에 한 그릇만으로 끼니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볶음밥, 비빔밥 등의 즉석밥을 출시하는 회사도 많아졌다.
두 번째 변화는 소스 시장의 성장이다. 흔히 소스라고 하면 케첩, 마요네즈 등 음식에 곁들여 먹는 ‘테이블 소스’가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짜장 소스, 불닭 소스 등 ‘요리용 소스’ 비중이 커졌다. 간단한 재료만으로 요리를 만들 수도 있고, 기존 음식에 소스만 다르게 첨가해도 새로운 요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식품회사들은 소스 전문 브랜드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샘표는 중식 소스 브랜드 ‘차오차이’를 론칭했는데 중식 소스로만 11종이 넘는다. 전통적인 식품회사뿐만 아니라 라면업계에서는 삼양식품의 ‘불닭 소스’, 농심의 ‘짜파게티 소스’ 등 시그니처 제품을 응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소스류 출하액은 2019년 3조507억 원 수준에서 2022년 4조113억 원으로 3년 새 3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식에 대비되는 특별식은 말 그대로 자주 먹진 않지만 한 끼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투자하는 식사다. 배달의민족과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 소비자 4779명에게 설문한 결과 전 연령대에서 절반 정도의 응답자가 맛집을 가기 위해서라면 ‘차를 타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이동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거리에 상관없다’고 응답한 사람도 연령대에 따라 15.7%((10대)~18.7%(20대)에 이르렀다. 음식 자체에 들어가는 수고뿐만 아니라 식사하러 가는 차림새가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젊은 소비자들은 음식점 콘셉트에 옷차림을 맞추기도 하고, 동행하는 친구와 ‘꾸밈의 정도’를 미리 정하기도 한다. 특별식은 ‘경험’을 얻고자 하는 것이며 대체로 사진을 남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특별식이 이전 외식과 다른 점은 메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 ‘외식한다’고 말할 때는 대체로 집에서 만들어 먹기 어려운 메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제는 라면이나 순대, 김밥도 특별식이 될 수 있다. 마포에 있는 ‘리북방’이라는 음식점은 순대 오마카세로 유명하다. 흔히 포장마차에서 먹는 순대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통적인 순대부터 독특한 순대까지 종류도 다양하지만 곁들이는 소스와 반찬, 조리 방법까지 세심하게 고안돼 하나의 경험으로 소비된다.
밥상의 전환은 사회 변화에 따른 결과다.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집에서 식사를 차려 먹는 일이 줄고 간편식과 외식 시장 품질이 높아지면서 식사를 자연스럽게 외주화하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세대에 따른 변화도 있다. 1020 젊은 소비자들은 어려서부터 맞벌이인 부모님이 많았고 ‘급식’을 경험하며 집밥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집밥 같은 거 사 먹자’처럼 메뉴로 생각하기도 한다.
식품 및 외식산업에서는 이러한 식생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식은 시간과 노력뿐만 아니라 빈도가 높은 만큼 가성비도 중요하다. 반면 특별식은 가격 저항이 적지만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은 차별화된 경험을 요한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변화를 놓치지 않고 뾰족한 전략이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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