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패션의 역사

옷! 신인류 낳다…날개를 달다…

입력 2024. 08. 26   16:14
업데이트 2024. 08. 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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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 - 한국의 패션사 3


20세기 개인주의 확립의 시대
청년 문화 급부상·해외 문화 유입
1세대 아이돌 패션 아이콘 뜨고
미시족·압구정 스타일 등 유행

21세기 다양화의 시대
직구 가능해지고 패스트패션 등장
팬데믹 거치며 편안함·실용성 중시
트렌드 경계 허무는 ‘신인류’ 탄생

 

서태지 패션. 출처=ELLE(1995년 11월)
서태지 패션. 출처=ELLE(1995년 11월)

 


1990년대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성장의 절정을 경험했으며,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가 확립됐다. 반면 1997년 말,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는 대기업의 구조 조정, 실업 증가, 사회적 불안 등을 초래했으나 이를 계기로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개혁되고, 금융 시스템이 더 현대화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과 PC 통신 서비스(천리안·하이텔 등) 확산으로 정보 접근성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휴대전화 보급이 시작됐다. 정보기술(IT) 발전으로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또한 여성의 사회적 역할 확대에 따라 성평등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해지는 등 여성운동도 강화됐다.

1990년대는 청년문화 급부상과 해외 문화 유입으로 인해 특히, 영화, 음악, 패션 등에서 한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이 커졌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드라마 ‘모래시계’(1995)와 영화 ‘쉬리’(1999)가 큰 인기를 끌며 한국 대중문화 위상을 높였다. 당대는 한국 대중음악 또한 크게 발전한 시기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핑클, S.E.S.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며 K팝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들은 청소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팬 문화를 형성하며 패션의 아이콘이 됐다. 아이돌의 과감한 패션을 따라 입는 현상은 유행의 한 축을 차지하며 패션의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했다.

 

 

미시족의 전형. 출처=패션투데이(1994년 8월)
미시족의 전형. 출처=패션투데이(1994년 8월)

 

 

1990년대는 글로벌리즘(globalism)의 대두로 국가 간 교류 확대를 통해 문화의 장벽이 없어졌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타결로 한국은 금융, 건설, 유통,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해외에 문호를 개방했다. 패션도 베네통, 라코스테, 피에르가르뎅 등 해외 유명 명품이 유입되며 내수시장 구조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이 시기 국내 디자이너들이 파리, 일본 등 세계 무대 진출을 시작하면서 국내 패션도 글로벌리즘 시대에 환승하게 된다. SFAA(서울패션아티스트협회)는 ‘1991 S/S 컬렉션’을 시작으로 매 시즌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으며, 그 외 다양한 협회(KFDA, JDG, NWS)의 연이은 활동은 패션 발전에 일조하게 된다. 1992년 이영희, 이신우, 1993년 진태옥, 1995년 홍미화가 꾸준히 해외 컬렉션에 참여했고, 1998년 설윤형, 한혜자, 김동순, 지춘희, 박윤수 등이 뉴욕 컬렉션에 참가한다. 

1990년대는 ‘개인’과 ‘개성’을 중시하며 서울 압구정, 강남역 일대 등 젊음의 거리를 탄생시킨 X세대와 신세대 주부를 지칭하는 ‘미시족’ 등이 등장했고, 이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패션브랜드가 대거 출현했다. 당시 힙합, 그런지, 펑크 등의 다양한 스트리트 패션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했으며, ‘강남스타일’이란 용어가 이 시기 등장했다. 강남스타일은 압구정 일대의 미국이나 유럽 패션 영향을 받은 유학파와 부유층 젊은이들의 패션을 의미했다. 영화 ‘건축학개론’(2012)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tvN, 2012), ‘신사의 품격’(SBS, 2012)은 1990년대 유행했던 의류 브랜드와 패션 스타일이 잘 재현돼 있다. ‘건축학개론’에는 청남방과 게스(GUESS) 티셔츠가 등장하고, ‘신사의 품격’에서는 허리에 묶은 셔츠와 ‘잔 스포츠’ 백팩 등이 등장했다. ‘응답하라 1997’에서도 ‘게스’ ‘안전지대’ ‘겟 유즈드’ ‘인터크루’ ‘엘레쎄’ 등 당시 유행한 브랜드들이 등장한다.


진태옥, 레드 자수 이브닝드레스(S/S 1995). 출처=The Fashion Book(1998)
진태옥, 레드 자수 이브닝드레스(S/S 1995). 출처=The Fashion Book(1998)



당대 패션니스타들은 스키니한 가죽 바지, 펑퍼짐한 힙합바지, 배꼽이 보이는 크롭 톱, 마리떼 프랑소아 저버 청바지, 속옷의 겉옷 스타일, 머리엔 두건, 마름모 선글라스, 앞뒤·좌우가 다른 언밸런스 패션을 즐겼다. 이 시기에는 여러 겹의 옷을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과 서로 다른 스타일을 조합하는 믹스 매치 스타일이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패션을 추구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때의 여성은 10㎝의 통굽과 군화, 남성도 굽이 있는 웨스턴 부츠를 즐겨 신었다. 압구정 거리에는 모히칸 헤어, 피어싱, 패션 문신들이 넘쳐났다. 여대생 사이에서는 통 넓은 청바지(고소영 바지)가 필수 아이템이었고, 페라가모 헤어밴드· 페라가모 숄더백· 페라가모 구두로 포인트를 준 일명 ‘이대 스타일’도 인기였다. 1990년대는 크롭티, 핫팬츠 등의 프렌치 캐주얼, 아디다스 라인이 들어간 스포츠룩, 스쿨걸룩, 비대칭형 아방가르드룩, IMF 이후 베이직 클래식 스타일 등 다양한 스타일이 유행했다. 1990년대 패션스타일은 포스트모더니즘 영향으로 자유롭고 다양한 스타일이 혼합되는 양상을 띠고 있으며, 현대 패션에도 강력한 영감을 주고 있다.

20세기를 개인주의의 확립 시대였다고 본다면 21세기는 우리가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는 다양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패션도 각자가 상상하고 공유할 수 있는 ‘동시대적인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21세기는 인터넷 확산과 SNS의 발달로 지역 간, 국가 간 경계가 무너졌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디자이너 컬렉션이 인터넷에서 실시간 중계되고, 온라인 패션잡지와 패션 블로그, 디자이너 웹사이트를 통해 패션 정보 공유가 가능해졌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아이템은 온라인 구매대행이나 직구(직접 구매)가 가능하다. 또한 자라(ZARA), H&M, 유니클로(UNIQLO)와 같은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러한 브랜드들은 빠르게 변화하면서 트렌드 수명을 단축시켰다. 우리는 팬데믹을 거쳐 엔데믹 시대를 맞이하며 편안함과 실용성을 중시하게 됐다. 그에 따라 원마일 웨어, 라운지웨어(loungewear), 애슬레저(athleisure), 오버사이즈 룩 등이 인기를 끌면서 외출복과 실내복의 경계를 허무는 트렌드로 이어졌다. 또한 마스크와 같은 방역용품이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며, 이를 활용한 스타일링도 등장했다. 21세기는 고기능성 소재와 첨단기술이 결합한 테크웨어(Techwear),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의류, 스마트 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술이 발전하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패션쇼가 열리기도 한다.

이제 한국 패션은 팬데믹 이후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의 증가, 디지털화와 소셜미디어의 강력한 영향력, 젠더와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 확대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패션 트렌드를 넘어 새로운 시도를 끌어내며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종족, 신인류를 끝없이 탄생시킬 것이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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