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도법 바로알기 -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 위한 ‘헤이그협약’
세계대전 이후 1954년 첫 다자조약
1999년 ‘제2의정서’ 보호 강화 규정
중요 문화재는 모든 적대행위 금지해
한국, 가입하지 않았지만 협약에 구속
육군·해병대 군사교범 형사책임 기술
최근 가입 논의 전략적 측면 고려해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인도법은 무력충돌 시 파괴 위험에 처한 문화재 보호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2022년 3월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은 국제인도법, 특히 1954년 채택된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1954년 헤이그협약)’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상기시키고 우크라이나 문화유산 보호에 협력을 요청하는 서한을 러시아 외무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문화재를 겨냥한 러시아군의 공격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현재까지 역사적·예술적 건축물 및 박물관, 도서관, 아카이브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문화재의 훼손건수는 400여 건에 이른다. 러시아의 행위는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상징을 겨냥한 고의적이며 중대한 위반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무력충돌 상황에서 문화재가 파괴 표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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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파괴는 적대행위의 부수적 결과로 초래되는 경우와 문화재가 지닌 상징성 파괴 자체가 공격 목적이 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다.
문화재의 가치는 그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온 민족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적대 민족의 정체성에 중대한 손상을 입히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재를 훼손하는 행위가 자행돼 왔다. 2000년대 들어 발생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 폭파, 2015년 이슬람국가(IS)의 고대 아시리아 유적 및 시리아 팔미라 유적 파괴는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이런 맥락에서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 규범 또한 두 가지 흐름으로 발전해 왔다. 첫 번째 유형은 국제인도법의 기본 원칙인 ‘군사적 필요의 원칙’에 따른 부수적 손상 규제다. 1907년 헤이그 제4협약에 부속된 육전 규칙 등 문화재 보호에 관한 규정, 1935년 워싱턴협약, 1954년 헤이그협약, 1977년에 채택된 1949년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 등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국제인도법상의 규범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형성돼 왔다. 두 번째 유형은 문화재의 의도적 파괴·손상 규제다. 대표적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제8조 제2항 나호(9) 및 마호(4)’는 역사적 기념물의 고의적 공격을 전쟁범죄로 간주한다.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목적으로 유네스코의 주도 아래 맺은 1954년 헤이그협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 국제사회가 경험한 문화재 파괴에 대한 반성과 피점령지의 문화재 유출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다자조약이다. 이 협약은 대상으로 삼는 모든 문화재의 보호에 관한 일반규정을 두고, 중요 문화재는 별도로 특별보호제도를 둬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협약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1999년 채택된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헤이그협약에 대한 제2의정서(제2의정서)’에선 그 내용이 보완돼 ‘강화된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54년 헤이그협약과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협약 가입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 중인 군사적 상황을 고려해 대한민국 정부는 협약 가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2009년 미국이 1954년 헤이그협약을 비준하자 이듬해부터 당시 문화재청, 외교부, 국방부가 협약 가입을 위한 법적 과제를 검토하고 관련 국내 입법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2020년부터 문화재청은 협약 가입에 관한 법제 정비를 추진하고 있고, 올해 5월 국가유산청으로 조직이 개편되면서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문화재 보호 가치를 선도하고 관련 국제규범의 발전을 반영한다는 큰 틀 안에서 협약 가입을 검토 중이다.
이처럼 1954년 헤이그협약 가입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면서 비당사국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확인함과 동시에 협약 가입의 의의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4년 헤이그협약 체약국이 아니더라도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 규범의 적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문화재 파괴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하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체약국이어서 이 규정이 적용된다. 또한 1954년 헤이그협약은 체약국과 당사국이 아닌 국가 간 협약 적용관계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제18조 제3항). 즉 비당사국도 협약 수락을 선언하고 이를 사실상 적용하는 경우엔 이 협약에 구속된다.
대한민국 육군·해병대의 군사교범은 전시 점령지에서 수행되는 군사작전과 관련해 문화재 관리지침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작전 시 문화재 손상·파괴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현재 비당사국임에도 1954년 헤이그협약 내용을 숙지하고 이를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 그 외에도 국제인도법에 관한 교육자료 등에 제2의정서의 강화된 보호와 위반 시 형사책임이 기술돼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볼 때 대한민국이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국제인도법을 준수하고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도모하기 위해선 1954년 헤이그협약의 체결은 여전히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 문화재 보호 극대화를 위해 ‘군사적 필요의 원칙’을 배제하고 있는 제2의정서 가입은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문화재가 지닌 상징성은 분쟁 이후의 평화 구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문화재 공격이 가져오는 결과를 피할 수 없는 부수적인 손해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무력충돌이 종료된 이후 야기될 수 있는 영향의 중대성을 인식한다면 문화재 보호는 군사 전략적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군 지휘관의 판단엔 더욱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황과 규범 고려가 요구된다. 1954년 헤이그협약 가입으로 문화재 보호 국제인도법 준수를 위한 법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협약 준수로 문화재 보호를 실천하기 위해선 군의 국제규범 교육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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