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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알고 나를 알면...백 번의 붓질, 백 개의 작품이 된다

입력 2024. 08. 15   13:11
업데이트 2024. 08. 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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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Studio <11> 김서울 작가

차곡차곡 정돈된 스튜디오
단호한 공간은 주인을 닮아

물감 안료·제작 과정까지
철저한 분석·완벽한 파악 끝에
고유의 발색·정체성 드러내려
시판된 168색 섞지 않고 쓴다

지구상 최고 수준 명작 향한
그 첫발은 결국 본질의 탐구



주문 제작한 가구에 가지런히 정렬된 168색의 물감, 발색과 내광성 테스트를 위해 직접 제작한 컬러칩, 동일한 재질의 통에 분류돼 있는 붓과 도구들. 김서울 작가의 스튜디오는 모든 것이 작가의 설계 아래 정돈돼 있는 분석적 완벽주의자의 공간과 같았다. 공간은 주인을 닮는 법. 작가는 김훈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호한 문체를 좋아하고, 최상의 재료로 제작한 지구상 최고 퀄리티의 작품을 추구한다고 했다. 1988년생 작가는 올림픽과 함께 서울의 희망을 마주한 부모님에 의해 ‘서울’이라 이름 지어졌다. 서울을 품은 김서울은 세계를 품은 백남준을 동경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작가를 꿈꾼다.

김서울 작가의 화면에는 물감, 붓, 캔버스 천과 프레임 등 재료와 도구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되고 있다. 작가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물감과 재료에 관한 연구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이 색의 안료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을까?’ ‘이 붓은 왜 둥근 모양일까?’ 원료와 제작 과정, 각각의 차이를 파악하기 위해 독학으로 공부하며 만만찮은 비용과 6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요즘 보기 드문 기본에 집중하는 작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의 물감 회사에서 제작한 올드 홀란드, 크라센, 벨라아르티, 프리드릭스, 에스코다 등 최고의 재료를 모아왔다. ‘물감의 안료 알갱이 하나하나가 지닌 빛깔과 질감’ ‘붓털 한 올 한 올이 지닌 감촉과 탄력’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해 보는 과정을 거치며 본인이 사용하는 재료와 도구를 완벽히 파악하고자 했다.

김서울은 시판되는 168색의 물감을 섞지 않고 사용한다. 몇 년에 걸쳐 안료를 분석했는데 왜 제시된 물감을 그대로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물감 고유의 발색이나 아이덴티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168색은 시판되는 가장 많은 수의 색상으로, 제조사에 의하면 더 이상의 컬러는 소비자(작가)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김 작가는 전 세계 작가가 동일하게 사용하는 168색으로 화가로서 본인의 정체성이 반영된 물감을 실험하기로 한다.

김서울 작가의 물감과 색에 대한 탐구는 그의 데뷔작 ‘애프터 드쿠닝’ 시리즈부터 시작됐다. 작가는 정방형의 화면을 168등분으로 나눠 168색의 물감을 등위로 배치했다. 이 시리즈에는 그가 컬러 차트라고 이름 붙인 설계도 작업이 선행됐다. 자신의 색 사용 습성과 감각을 깨고, 물감 자체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 하나하나의 색이 화면의 어느 위치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그러기에 ‘애프터 드쿠닝’은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물감을 얹어 놓은 것에 가까우며, 물감과 색은 작가 의도에 따라 그려진 것이 아니라 본래 자리를 찾아가는 도킹과 같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색상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의 채색을 찾아 붓의 질감, 물감의 묽기를 조정하고 유사한 색상의 군집과 흩어짐 등 13가지 버전을 실험으로 펼쳐냈다. 스스로 이 과정을 통해 붓으로 물감을 바르는 방식은 모두 연구했다고 할 만큼 충실한 실험이었다.

색에 대한 탐구는 도구로 이어졌다. 필버트 패밀리 시리즈는 가장 평범한 모양인 ‘필버트’ 붓에 대한 관심의 결과다. 필버트는 헤일즐넛과 같은 말로, 몸통은 동그랗고 머리는 마치 몸 전체를 쓸어 올려 가운데로 모은 것처럼 볼록 솟아 있는 헤이즐넛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필버트 붓을 매개로 하는 이 시리즈는 볼록한 붓 모양으로만 그린 것으로 그 모양을 확대, 해체 또는 조합하는 등 붓이 지닌 본래 형태를 단위 삼아 진행한 형태 실험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이전에 실험한 색의 사용은 줄고 극단적으로 붓 터치, 획으로만 구성한 화면을 펼쳐냈다. 붓 모양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화면은 장식적 패턴이 됐다가 구조적 건축물이 됐다가 숲, 하늘과 같은 풍경이 되기도 하며 변신, 확장했다.

2022년부터 시작한 ‘스칼라와 벡터’ 시리즈에 이르러 색과 형상에 운동성이 더해졌다. 이 시리즈는 역학에서 자연계를 보는 두 가지 개념인 ‘벡터(VEctor)’와 ‘스칼라(Scalar)’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스칼라는 일정 양을 지칭하는 단위로 온도, 무게, 거리, 시간 등 크기만 있는 물리량이다. 벡터는 크기에 방향을 더한 것으로 변화, 즉 ‘운동성’을 의미한다. 이전 작업이 색 배열과 붓 사용에 의한 형태 실험에 집중했다면, 이 시기에 이르러 붓 터치의 속력(힘)과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도입해 동사형의 화면으로 옮겨 간다. ‘스칼라’인 물감이 ‘벡터’라는 움직임을 만나 역동적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가 도킹하는 것이다. 색과 형에 운동성이 더해져 한층 자유롭고 리듬감 있는 화면과 색, 형, 붓질의 조화가 이뤄내는 미적 쾌감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어린 시절 바둑을 배운 작가는 작업을 바둑에 비유해 설명했다. 바둑에서 모든 수는 착수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냥 두는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도 이러한 바둑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그림의 돌아가는 형세를 파악하고 착수 시기와 위치, 그 이유를 고민하며 진행하기에 이유 없는 색과 형이 없고, 즉흥적인 요소로 읽히는 부분이 있으나 모두 근거 있는 수와 같이 정확한 위치와 크기, 운동성을 가지고 화면 내에 위치한다고 한다. 이러한 명확함을 바탕으로 그가 추구하는 작품은 아틀리에서 제작되는 최고의 명품차 부가티와 같이 지구상 최고 수준을 지향한다.

‘Color Chart for After De Kooning No.1’, 38×28㎝, 2016 사진=디스위켄드룸
‘Color Chart for After De Kooning No.1’, 38×28㎝, 2016 사진=디스위켄드룸



김서울은 지난 5월 잠재력 있는 신진 예술가를 지원하는 제1회 계명극재회화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김 작가의 작품을 두고 “뜨거운 추상으로 보이나 색과 색의 틈에서 보이는 이성적인 통제력, 절제와 계획된 움직임의 흔적, 그리고 재료 분석력과 화면 구성의 실험성이 돋보인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활동에 기대를 표했다. 전업 작가 8년 차를 맞은 작가에게 장기적인 계획을 묻자 미국의 자존심과 같은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는 최초의 아시안 작가가 목표라고 했다. 미국 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에서도 인정할 만한 성취와 혁신적인 작품을 보여주겠는 것이다. 작가는 8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다섯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김서울이 제시할 새로운 실험의 결과를 기대해 보자.



김서울(1988)은
국민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2024 계명극재회화상을 받았다. 디스위켄드룸(2021)과 아트딜라이트(2021, 2019)에서 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교토 쓰타야서점(2024), 갤러리 기체(2023), IBK 아트 스테이션, 을지예술센터(2022), 페리지갤러리(2021) 등에서 개최한 기획전에 참여했다. 2021·2019년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에 선정됐다. 오는 24일부터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리는 개인전 ‘도킹 왈츠’를 준비하고 있다.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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