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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찍어낸 금발의 먼로 붓질 없이도 선명한 명성

입력 2024. 08. 08   16:36
업데이트 2024. 08. 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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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⑪ 앤디 워홀 ‘샷 세이지 블루 매릴린’

#앤디-워홀
복제 가능한 실크스크린 기법
노동 필요한 창작물 인식 깨고
예술의 벽 허물며 대중성 확

#매릴린_먼로
먼로 연작에 총 쏜 행위예술가
파란색 배경 작품만 총격 피해
20세기 미술품 중 최고가 낙찰

앤디 워홀의 ‘샷 세이지 블루 매릴린’(1964년,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01.6×101.6㎝, 개인 소장). 출처=크리스티 홈페이지(www.christies.com/en/lot/lot-6369449)
앤디 워홀의 ‘샷 세이지 블루 매릴린’(1964년,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01.6×101.6㎝, 개인 소장). 출처=크리스티 홈페이지(www.christies.com/en/lot/lot-6369449)



전설적인 할리우드 배우 매릴린 먼로(Marilyn Monroe·1926~1962). 36세로 요절하자 세상은 금발미녀 스타의 굴곡진 인생을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가며 수많은 이미지를 생산해 냈다.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Andy Warhol·1928~1987)도 뭔가 보여 주고 싶었다. 먼로가 주연을 맡아 흥행한 영화 ‘나이아가라’의 흑백 홍보사진을 활용해 ‘황금빛 매릴린 먼로’를 만들어 추모했다. 호응을 얻자 2년 뒤인 1964년에는 같은 이미지로 정사각형 캔버스에 각기 다른 색상으로 묘사한 5점의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중 파란색 배경에 먼로의 특징인 금발머리와 빨간 입술이 도드라지는 초상화가 다수의 소장자를 거쳐 2022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9504만 달러(약 2485억 원)에 판매됐다.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을 제치고 경매로 거래된 20세기 미술품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것이다. 작품은 현장에 있던 미국의 미술상인 래리 거고지언이 낙찰받았는데 데이비드 게펀, 스티브 코언과 같은 억만장자 컬렉터를 고객으로 보유한 연매출 1조 원의 세계 최대 갤러리를 운영하는 인물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샀는지, 아니면 고객을 위해 구매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작품의 이전 소유자인 스위스 미술상인들이 설립한 ‘토마스&도리스 암만 재단’은 낙찰금 전액을 어린이 의료와 교육을 위해 기부했다.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먼로와 워홀의 조합은 미술품 수집가들의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워홀은 먼로의 ‘나이아가라’ 사진을 활용해 약 50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특별히 5점의 연작이 높은 작품가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렌지색 배경 작품은 2017년 개인 간 거래로 2억 달러에 판매돼 화제를 모았고, 이번 경매로 파란색 배경 작품이 시리즈 5점 중 두 번째로 비싼 작품으로 남게 됐다. 아무리 워홀이 팝아트의 제왕으로 불리더라도 작가의 헌신과 고뇌의 흔적이 담긴 붓질로 채워진 작품이 아닌, 대량복제가 가능한 판화기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들이 높은 가치를 받을 만한지 의문이 든다.

5점의 연작이 완성된 1964년 가을의 어느 날, 여성 행위예술가인 도로시 포드버가 워홀의 작업실 한쪽에 겹쳐 세워 둔 먼로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저기에 총을 쏴도(shoot) 될까?”라고 물었다. 워홀은 사진을 찍어도(shoot) 되는지로 이해하고 허락했다. 포드버는 바로 소형 권총을 꺼내 총을 쐈고, 이마 부분에 구멍이 뚫린 4점은 이 사건으로 인해 ‘샷 매릴린(Shot Marilyns)’이란 별명을 얻으며 유명세를 치렀다. 바로 보수된 작품들은 소문을 들은 컬렉터들에게 모두 소장됐다.

다른 곳에 보관돼 유일하게 총격을 피한 청록색 배경 작품은 행운의 상징으로 가치가 높아져 2007년 거고지언의 중개로 코언에게 8000만 달러에 소장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파란색 배경 작품은 스튜디오 총기사건과 색상으로 ‘샷 세이지 블루 매릴린(Shot Sage Blue Marilyn)’으로 명명됐다.

먼로 연작은 모두 실크스크린이라는 판화기법으로 제작됐는데, 이는 워홀이 팝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된 주요 요인이다. 실크스크린은 실크천을 프레임에 고정시킨 뒤 그 위에 원하는 사진이나 이미지를 사진감광법으로 옮긴 다음 천의 미세한 구멍에 물감을 통과시켜 인쇄하는 방식이다. 다른 판식에 비해 잉크가 많이 묻어 선명한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이미지라도 크기와 색깔, 농도를 달리하거나 겹쳐 찍는 방식으로 변형을 가할 수도 있다. 워홀은 1962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캔버스에 작품을 대량복제하는 작업실을 마련해 이를 ‘팩토리’라고 부르며 조수들을 고용해 작품을 기계적으로 찍어 냈다.

그는 이 기법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촉진하는 미국의 경제체제를 상징한다고 판단했다. 미술작품은 작가의 영혼을 불어넣어 고된 노동 끝에 완성되는 창조물이란 기존 개념을 뒤집는 발상이자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고급 문화의 전유물이었던 캔버스에 표현한 것이다. 달리 말해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와 방식을 활용해 예술을 보다 많은 이가 즐기고 소유하는 풍토를 조성한 것이다. 이는 당시 미국의 시대상을 민활하게 반영한 독창적 방식이기에 워홀의 작품 가치와 의미는 높아졌다.

워홀이 먼로를 포함한 유명 인사의 초상을 활용한 이유는 이를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낸 허상으로 봤기 때문이다. 캔버스의 인물은 감정 표현 없이 외형만 남은 텅 빈 얼굴을 하고 있다. 산업사회의 발전에 따라 더 바쁘게 살게 된 현대인은 타인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없다는 인간의 가치 변화를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만큼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니 외형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 워홀이 즐겨 쓴 먼로의 이미지는 당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여자 스타의 특징인 금발머리, 파란 눈, 빨간 입술을 갖고 있다. 인간 개성의 획일화를 풍자한 것이다.

워홀 작품에서 활짝 웃고 있는 먼로의 화려한 겉모습 뒤 숨겨진 내면이 보고 싶어진다.

실크스크린 방식을 활용한 워홀을 그림도 못 그리는 작가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워홀은 카네기멜런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후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개인전도 열고 뉴욕 미술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여유 있는 삶을 영위했지만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순수미만 추구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뉴욕의 미술계를 각성시키고, 이로 인한 불멸의 명성도 얻고 싶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캠벨 수프 통조림을 시작으로 주요 인물의 이미지를 활용해 예술의 높은 벽을 허물며 대중성을 확장해 나갔다. 일찌감치 작가 자신이 유명해져야 작품값이 오르고 영향력도 커진다는걸 깨달았기에 다방면에서 적극 활동한 결과 ‘워홀리즘(Warholism)’과 ‘워홀 효과(Warhol Effect)’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명성을 쌓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대중의 기억에서 흐릿해질 유명인의 전성기 모습을 선명하게 만들었고, 다양한 색상·크기로 변주를 가하며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그들의 사후 명성은 생전의 인기를 넘어섰는데, 워홀의 감각이 한몫했다는 걸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워홀의 먼로 초상화는 단순한 이미지 복제가 아니다. 팝아트의 정수를 담고 있기에 시대를 초월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필자 백승옥은 미술사와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비커밍아트 대표로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독일 갤러리 에스더쉬퍼의 외부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필자 백승옥은 미술사와 문화정책을 전공했다. 비커밍아트 대표로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독일 갤러리 에스더쉬퍼의 외부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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