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이슈 분석 - 제2의 한민고 탄생할까? -
국방부-교육부
‘군인자녀 자율형 공립고’ 추진
9월 1일~10월 30일 3차 공모
20개교 내외 추가 지정 예정
제2의 한민고
입학생 다수 군자녀로 선발
사교육비 없는 기숙형 학교 조성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정이 평안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다. 군도 마찬가지. 군인들이 전방·격오지 근무, 비상대기 등 악조건에서도 온전히 조국 수호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은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인가족들은 홀로 육아를 이겨내거나 잦은 이사로 가족·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 특히 자녀 교육 문제는 전역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할 정도로 군 간부들의 큰 고민거리다. 국방부가 군인자녀 교육여건 개선을 중점 복지정책 중 하나로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의 연장선에서 국방부와 교육부는 지난 3월 한민고를 모델로 한 ‘군인자녀 자율형 공립고(제2 한민고)’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잦은 근무지 이동과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군 간부의 고충을 해소하고, 더욱 안정적인 복무여건을 조성해 안보를 튼튼히 하려는 이유에서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유치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가운데 제2 한민고의 필요성과 야전부대 군인들의 반응 등을 집중 분석했다. 글=임채무·박상원/사진=조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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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자율형 공립고(자공고) 2.0 2차 공모 결과, 아쉽게도 제2 한민고 탄생은 불발됐다. 유치를 희망한 지자체들이 한 곳도 지정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낙담하기는 이르다. 국방부와 교육부 협약 당시 시도별 1곳 이상을 설치하기로 했다는 점과 함께 오는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3차 공모를 하고 20개교 내외를 추가 지정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이에 따라 제2 한민고 탄생 여부는 올 연말 판가름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제2의 한민고 유치에 뛰어든 지자체들
희망 지자체들은 3차 공모에서 반드시 지정을 받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자체들이 재수, 삼수에 도전장을 내미는 이유는 지역 학생은 물론 전국 군인자녀가 입학하는 제2 한민고 유치로 인구감소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지자체 10여 곳이 유치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강원도 화천군과 경상북도 영천시가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화천군은 육군7·15보병사단 등 다수 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강원도 내에서 군 장병 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화천군이 한국정책역량개발원을 통해 연구용역한 결과에 따르면 지역내총생산(GRDP) 중 66.2%를 국방·공공 부문이 차지할 정도로 군부대 경제 의존도가 높다. 특히 지난 20년간 화천군의 인구는 젊은 군 장병과 가족들의 꾸준한 유입으로 증가세였으나, 2017년부터 데드크로스 발생으로 급격한 인구감소가 이뤄지고 있다.
화천군은 제2 한민고 유치를 위해 필요부지 무상임대와 학생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신축안을 제시했다.
화천군 관계자는 “육·해·공군 등 군부대가 많은 우리 도의 현실을 고려할 때 군인 자녀 연계 자율형 공립고는 필수”라며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 가족의 안정적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육군3사관학교·2탄약창 등이 위치한 영천시 또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접경지역과는 다르게 군부대 경제 의존도가 높은 편은 아니나 인구감소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영천시는 제2 한민고 지정을 발판으로 대구 군부대를 이전 유치해 지역 활성화 동력을 마련하려 한다.
영천시는 2011년에도 현재의 한민고와 유사한 자공고 유치에 나서 2015년 국방부에서 최종 선정됐지만, 감사원 감사로 2016년 설립이 보류되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번 자공고 2.0 2차 공모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중점 추진 사업인 만큼 3차 공모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영천시 관계자는 “공모사업으로 진행하는 만큼 개선점들을 보완해 3차에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지역 명문 공립고이자 과학중점학교인 영천고를 군인자녀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받겠다”고 말했다.
지정 학교에 5년간 매년 2억 원 지원
제2 한민고는 교육부가 추진 중인 자공고 2.0 형태로 설립된다.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학교를 전환하는 방식이다. 자공고 2.0으로 지정된 학교는 5년간 매년 2억 원(교육부 특별교부금+교육청 대응투자금)을 지원받고 무학년제, 조기입학·졸업, 지역 전문가·대학 교원과 협력 수업 등 학사운영의 특례가 주어진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교장공모제, 교사 정원의 100%까지 초빙, 교사 추가 배정 허용 등 교육청의 인적 지원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특히 종전의 자공고와 달리 학교가 지자체·대학·기업 등 지역의 여러 주체와 협약을 체결하고 협약기관이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인문학·과학·인공지능 등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학교 구성원이 희망하는 진로체험, 기초학력 지원 및 각종 심화학습 프로그램 등을 자율적으로 편성·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제2의 한민고는 이러한 자공고 2.0 이점을 활용한 가운데 입학생 다수를 군인자녀로 선발하는 기숙형 학교로 조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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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부모들 만족도 높아
왜 한민고일까? 제2 한민고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 대부분은 접경지역이거나 지역 내 다수 군부대가 위치해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공교육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한민고 자체가 주는 매력도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첫째 자녀를 한민고에 보낸 육군 A중령은 “규칙적인 생활, 양질의 식사, 열정적인 교육은 물론 같은 군인자녀들이 모인 만큼 학폭과 같은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 만족하고 있다”며 “특히 안심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학생인 둘째도 한민고에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민고는 단순히 군인자녀들을 모아 교육하는 것을 넘어 괄목할 만한 대입 성과를 내고 있다. 2024년도 대학입시에서는 수시 16명, 정시 5명 등 총 21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이 중 3명은 서울대 의대·치대·수의대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이재봉 한민학원 상임이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군인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니까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며 “한민고에서는 사교육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 우수한 교사진과 학생들의 자습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큰 고민거리인 자녀 교육 문제 해결 기대
야전부대 군인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자녀 교육으로 인해 고민이 많았던 만큼 이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부부군인인 육군 B중령은 몇 년 전 보직 이동으로 당시 중학생이던 첫째 자녀를 학기 중 전학시켰다. 사춘기 자녀는 새 학교, 친구들과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B중령은 이를 지켜보며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B중령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전학은 단순히 학교를 옮기는 것 이상의 스트레스를 준다”면서 “자녀가 있는 군인이라면 누구나 전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2 한민고를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2 한민고가 대도시보다는 전방지역 같은 곳에 유치돼 군인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해군 C원사는 아내와 고등학생·중학생 자녀를 직전 근무지인 경기 평택에 두고 홀로 서울에서 근무 중이다. 이사로 인해 자녀의 학습여건이 나빠질까 우려한 것이 이유였다. C원사는 “자녀들이 아빠를 따라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부대 인근에 제2 한민고가 생긴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자녀를 교육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2 한민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재 한민고의 교육과정과 노하우를 그대로 옮겨와도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냐는 것이다. 사립고 수준으로 설립된다고 해도 사립과 공립의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교사 인력 운영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다. 법인으로 운영되는 사립고의 경우 학교 운영자와 교사들의 이동이 적은 반면 공립고는 운영주체가 지자체와 교육청이라 주기적인 인력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운영 예산에서도 교육부·교육청의 지원이 있지만, 자공고보다는 사립고의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군인복지기본법 개정안 발의 제도 개선도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회에서는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기호 의원은 지난달 23일 군인복지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군인 자녀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자율형 공립고를 지정·운영하는 자에게 교육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법에서는 제2 한민고가 생기더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예산을 지원할 수 없어 군인자녀들의 교육여건이 충분히 개선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의원은 “국가안보는 군인과 군인가족의 헌신이 바탕이 되고 있어 그 희생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과 군인가족의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이뤄지도록 제도 개선에 앞장서겠다”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군인가족들에게 자녀 교육의 핵심은 안정성이다. 좋은 대학을 잘 보내는 학교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안정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학교다.
국방부가 조사해 올해 3월 밝힌 자료 등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군 간부 중 79%는 복무 중 10회 이상 이사 경험이 있으며 자녀교육을 위해 떨어져 지내는 군 가족도 25%에 달했다. 2023-2027 군인복지기본계획 실태조사에서도 ‘군인의 복지가 가장 필요한 분야’로 주거환경(40.5%)에 이어 자녀보육 및 교육여건 개선(24.6%)이 꼽혔다. 결국 제2 한민고의 성패는 군인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 여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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