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다큐 영화 ‘춘천대첩 : 3일의 기억’ 장 이 레 감독
‘춘천대첩 : 3일의 기억’
10월 1일 국군의 날 맞아 전국 극장서 개봉
6년간 고증과정 거쳐 사실 바탕으로 작품 완성
승리로 이끈 영웅들 재조명
학도병·여공들 일화 소개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의 가치·안보의식 일깨워주고 싶어 최선
“우리는 6·25전쟁 당시 치러진 ‘춘천대첩’을 기억해야 합니다. 3일간 적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적과 싸워 나라의 운명을 바꾼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죽음이 개인사가 아닌 역사로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미래가 없습니다.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글=김민정/사진=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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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춘천대첩 : 3일의 기억’을 기획·연출한 장이레 감독은 역사적 사명감과 직업적 소명의식은 상당하다.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려면, 역사가 기록돼야 한다’는 일념하에서 6년간 고증과정을 거쳐 사실만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해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의 가치와 안보의식을 일깨워주겠다며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춘천대첩 : 3일의 기억’이다.
‘춘천대첩 : 3일의 기억’은 6·25전쟁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히는 ‘춘천대첩’을 승리로 이끈 영웅들을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6·25 남침 직전 북한군 동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전투를 준비했던 김종오 대령의 역할, 북한군의 자주포 부대를 육탄 저지한 심일 소령의 용기와 공적을 담아냈다. 영화는 또 다른 영웅으로 이름 없는 민병대, 춘천중·춘천농업학교·춘천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500여 명의 학도병, 피난을 포기하고 국군을 지원한 제사(製絲)공장 여공들의 일화를 소개한다.
최근 열린 상영회에서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주목받았다. 국회에서 상영회를 주관한 국방위원회 소속 한기호 의원은 “당시 6사단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과 처음 마주하는 적 자주포에 맞서 육탄으로 응전했다. 이들의 용기를 본 춘천시민들도 피난 보따리를 풀고 군번 없는 군인으로 함께 싸웠다”며 “우리 국군이 거둔 최초의 승리인 ‘춘천대첩’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불가능했다. 이제라도 춘천대첩의 의미와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희생, 용기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오성(전 육군참모총장) 육군협회장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잘 표현해냈다”며 “우리가 해야 했을 일인데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장 감독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건네기도 했다.
이처럼 각계각층에서 주목받고 있는 ‘춘천대첩 : 3일의 기억’은 오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기념해 전국 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최근 국방일보는 개봉 준비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장이레 감독을 만나 작품 제작과정과 에피소드,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6·25전쟁 당시 ‘춘천대첩’이 민·관·군이 하나가 되어 최초로 승리한 전투인데, 이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스스로 반성하게 됐다. 춘천·홍천에서 북한군을 성공적으로 저지했기에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고, ‘7일 안에 남한을 점령한다’는 북한 전략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대한민국 공산화를 막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전투인데, 그 의미와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이제라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역사를 바로 알릴 의무가 있다. 그래서 댜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 왜 작품의 부제가 ‘3일의 기억’인가.
“3일을 막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 3일을 막았기에 북한군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진격하지 못했다. 그 사이 미군 파병이 결정 났고, 유엔군이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 3일 때문에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있게 됐고, 인천상륙작전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3일 동안 민(民)이 포탄을 나르고, 주먹밥을 나르고, 환자를 치료했다. 학도병과 민병대가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 목숨 바쳐 싸웠다. 이 3일을 우리는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부제를 ‘3일의 기억’으로 붙였다.”
- 작품 제작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6년간 고증과정을 거쳤다. 사실 그대로 만들고 싶었다. 자료를 확인하고, 학자들에게 검증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작비 관련 문제도 컸다. 촬영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찍었다. 대출도 받고, 집도 팔고 월세로 옮겼다. 가족들이 믿고 지지해줬다. 사명감이 생기니까 끝까지 잘 해내고 싶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6·25전쟁 참전용사 인터뷰할 때다. ‘잠깐 기다려라. 화장실 다녀올게’ 하시더니 두 손 가득 음료수를 사오셨다. 그러면서 그분이 “이렇게라도 우리의 역사를 알려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내가 춘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
“74년 전에 전장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위해 그렇게 했는가, 그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전투로 지금 우리가 이 땅을 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 향후 계획이나 목표는?
“다큐멘터리에 그치지 않고, 극 영화와 뮤지컬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는 완성됐다. 영화 제목은 ‘작전명: 폭풍’이다. 다큐를 통해 3일의 이야기를 기억했으니, 그 3일의 이야기를 풀어드리고 싶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장병들에게 한마디.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 군인들이 자랑스럽다. 응원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춘천대첩 : 3일의 기억’도 많이 응원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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