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가 있는 병영] 차이

입력 2024. 08. 01   15:05
업데이트 2024. 08. 0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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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웅 시인
김종웅 시인

 


굴비 한 두름에 백만 원이나 한단다
아따, 한 마리 값이면 
우리로서는 
몇 끼니 아니, 며칠 분의 식사를 하고도 남을 것인데 
이런 굴비를 먹는 사람은 어떤 똥을 눌까 
참으로 궁금한데 
오늘 아침 밥상에 생조기가 꼬들꼬들하게 구워져 올라왔다 
웬 횡재인가 하고 물었더니 
한 마리 오백 원이라 샀단다 
어찌나 맛있든지 
뼈도 빨고 머리도 쪽쪽 빠는데 
아내는 한 마리 오백 원짜리도 이렇게 맛있는데 
오만 원짜리 굴비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하고 묻는다 
나는 
쪽쪽 빠는 생각 외엔 아무런 대답을 할 여지도 없이 
소화를 잘 시켜선지 
오백 원짜리 생조기를 먹은 
오늘 아침 똥이 황금빛으로 구수하다 


<시 감상>

이 시는 ‘굴비 한 두름에 백만 원이나’ 하는 세태의 서민 밥상을 배경으로 한다. 한 두름은 20마리이니 한 마리에 5만 원인 셈이다. 서민 밥상에 올리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래서 초반부의 ‘이런 굴비를 먹는 사람은 어떤 똥을 눌까’라는 냉소적인 언술로 자칫 부조리한 세태를 비판하는 시로 짐작할 수도 있을 듯싶다.

그런데 화자의 ‘밥상에 생조기가 꼬들꼬들하게 구워져 올라왔다’ ‘웬 횡재인가’ 싶어 ‘뼈도’ ‘머리도 쪽쪽’ 빨아먹는 장면에서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게다가 아내의 ‘한 마리 오백 원짜리도 이렇게 맛있는데/오만 원짜리 굴비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하는 물음에, 화자는 딴전 피우듯 천연덕스럽게 “오백 원짜리 생조기를 먹은/오늘 아침 똥이 황금빛으로 구수하다”는 마무리 언술이 독자를 어떤 세태에도 주눅 들지 않는 건강한 서민 밥상으로 견인한다. ‘황금빛’ 행복한 밥상으로. 충격적인 소재나 독특한 표현은 그 나름대로 새로운 가치와 매력을 지니지만, 우리 일상의 풍경이 문득문득 내비치는 예사로운 삽화에서 발산하는 은은한 매력이 그대로 새로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시가 보여 주는 밥상의 언어는 일상에 육화된 감각어로 사족 같은 해석의 군말이 필요 없다. 시행에 흐르는 동영상 같은 느낌을 떠올리며 편안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삶과 한 몸이 된 감각적인 시어가 전하는 새로운 느낌, 감동과 서정의 울림은 깊고 멀리 오래간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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