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수실에서

인공지능 번역기와 외국어 학습

입력 2024. 07. 29   15:04
업데이트 2024. 07. 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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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영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영어과장·소령
문현영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영어과장·소령

 


“만약 지금 단순 의사소통을 위한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면 당장 멈추세요! 그건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미국 시사주간지에 실린 한 학자의 주장이다. 그는 현재 기술 발전의 정도와 속도를 근거로 몇 년 안에 원활한 외국어 의사소통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이 나올 것이라며 외국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속도보다 인공지능(AI)의 발달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게 그 근거였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우리나라 대기업은 ‘실시간 번역’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얼마 전 출시했다. 영어뿐만 아니라 아랍어·러시아어 등 총 16개 언어를 실시간 통·번역할 수 있는 이 기술은 통화 중에도 이용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훌륭한 통역가를 데리고 다니는 것과 같은 시대가 도래했다. 생도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자로서 내 직업에 대해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외국어 학습의 시대는 끝난 것인가?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아무리 AI 통·번역 기능이 발전해도 인간의 외국어 습득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단초인 의사소통은 단순히 언어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닌 언어 속에 숨어 있는 문화적·역사적 상징과 의미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인간 관계가 쌓인다. 또한 통·번역 매체를 통하는 것과 직접 그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친밀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에도 미래에도 외국어 학습이 필요하다는 나의 주장은 비단 외국어 공부 자체에서 오는 이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주장은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을 염두에 둔 결과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우리 생활이 얼마나 달랐는지 떠오를 것이다. 가족·친구 전화번호 몇 개쯤은 외우고 다녔고, 지방 여행을 할 때는 몇 번 도로를 따라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있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원시적인 방법으로 살았다. 요즘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샛길을 실시간으로 안내해 주고, 심지어 언제 출발해야 가장 단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지 예측해 준다. 정말 편리하고 ‘스마트’하다. 하지만 이건 휴대전화를 지니고 있을 때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스마트폰 없이는 정말 스마트하지 않은 시대다. 매일 가던 길이 헷갈리고 부모님 전화번호도 가물가물하다. 마치 뇌를 클라우드에 저장해 놓고 인터넷이 끊긴 것 같은 느낌이다.

군대에선 인터넷에 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군사보안 때문이다. 일반적인 내용은 통·번역 기능을 이용할 수 있겠지만 민감한 군사정보라면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내가 업로드한 정보가 어디에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어서다. 또한 전자전·사이버전 상황에서는 인터넷 기반 AI 활용이 차단될 수 있다. 즉 군사적 상황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AI 번역기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외국어 구사 능력 없이 번역기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AI는 인간의 언어가 내포한 미세한 뉘앙스나 상황을 알지 못하므로 내 의도에서 벗어난 오역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오역인지 모른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언어적으로 AI가 만들어 낸 산물을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AI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현재에도 외국어 공부는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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