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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하게 웃긴 좀비에 감염되다

입력 2024. 07. 23   17:17
업데이트 2024. 07. 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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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이블데드’

6년 만에 귀환
좀비들의 대광란 파티
B급 코미디 A급 웃음 선사
피튀기는 ‘블러드밤석’ 인기

한여름 무더위 싹 

엄·근·진 따위는 버리고
마음껏 소리치면서 관극을
좀비 혐오증 환자에게도 추천

 

뮤지컬 ‘이블데드’ 한 장면. 사진=랑 제공
뮤지컬 ‘이블데드’ 한 장면. 사진=랑 제공



여름은 납량물이 먹히는 시즌. 지난번 ‘카르밀라’가 뱀파이어였다면 오늘 소개할 ‘이블데드(EVIL DEAD)’의 주연은 좀비 되시겠다. 

“그 이블데드?” 하신다면, 맞다. 그 이블데드다. 많은 사람이 이블데드를 영화로 접했을 것이다. 막상 물어보면 기억하는 스토리가 조금씩 다른데, 이게 무려 4탄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최초로 1탄이 나온 것이 1981년, 마지막 4탄이 2013년이니 장장 30년이 넘는 변천사를 갖고 있는 여름철 스테디셀러다. 이후 TV 시리즈물로도 제작됐고, 심지어 PC게임도 있다.

뮤지컬로는 2003년 제작됐는데, 놀랍게도 캐나다 작품이다. 토론토의 작은 클럽에서 시작된 이 B급 뮤지컬은 그야말로 좀비처럼 성장해 2006년 미국 진출에 성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초연했는데 충무아트홀 중극장(블랙)에서 공연했음에도 대극장 부럽지 않은 대박을 쳤다. 초연 출연진도 스타군단. 류정한, 조정석, 정상훈, 양준모, 최혁주의 이름이 보인다. ‘조정석 애쉬-정상훈 스캇’ 조합은 전설이 됐다. 이번 시즌 이블데드는 6년 만이다.

스토리는 딱히 소개할 것도 없다. 대학생들이 수상쩍은 숲속 오두막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상한 일이 하나둘씩 벌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한밤중에 좀비들의 대광란 파티가 열린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 나가고(좀비가 돼고), 새벽은 멀기만 한데….

그렇다. ‘좀비물의 탬플릿 불러오기’ 버튼을 누르면 제일 먼저 튀어나올 만한 스토리다. 또 다른 좀비물의 교과서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이 ‘탬플릿’에서 불러온 듯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아무리 말려도 굳이 어두운 밖을 조사하겠다고 나갔다가 좀비, ‘나는 집에 갈래’ 하고 약삭빠르게 먼저 탈출했다가 좀비, 연인과의 뜨거운 밤을 기대하며 혼자 침대에서 뒹굴다가 좀비, 술 먹다가 좀비, 게임하다 좀비, 좀비가 된 친구를 비웃다가 좀비. 여하튼 사람들이 몽땅 좀비가 되는 얘기다.

B급 장르를 관람할 때는 관객도 B급이 되는 것이 티켓값을 뽑는 비결이다. 관객이 빵빵 터져줘야 배우들도 충분히 달궈진다.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따위는 평론가들에게 맡기고 마음껏 웃고 소리치면서 관극하자.




무대 바로 앞자리 ‘블러드밤석’을 예매하는 것도 추천. 공연장에 들어가면 블러드밤석 관객들이 1회용 비옷을 입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2막에서 좀비들이 뿌려대는 피(물론 가짜지만)를 흠뻑 맞게 되는 자리기 때문이다. 좀비 배우들은 심지어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에게 피를 뿌리고, 치덕치덕 손으로 묻히기도 한다. 이 자리는 인기가 많아 금방 매진이 돼 버린다고. 지금은 많이 순해진(?) 것으로, 초창기 시즌에는 스프링클러처럼 허공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는 얘기가 있다.

1막에서 B급 호러 코미디 감성에 ‘훅’ 빠져들다가 2막에 이르면 정신마저 혼미해졌는데, 이 맛을 알게 되면 매 시즌 이블데드를 기다리게 된다. 공연장 에어컨을 온풍기로 바꿔버리는 좀비들의 떼춤을 볼 수 있는 ‘네크로노미콘’은 정말 최고다.

내심 기세중의 ‘애쉬’를 노리고 있었는데, 배나라 ‘애쉬’도 상당히 좋았다. 애쉬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종업원으로 이블데드의 주인공. 좀비들을 신나게 때려잡는 영웅 역할이다. 애쉬의 가장 친한 친구 ‘스캇’은 조권. 2017년 시즌에도 조권 ‘스캇’으로 봤는데, 역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조권 스캇’은 대한민국 뮤지컬의 수출 품목이다. 좀비가 된 스캇이 뚫린 배에서 내장을 끝도 없이 꺼내는 웃긴 장면은 이 작품의 간판 명장면이다.

애쉬의 여자친구 ‘린다’는 매우 유교적인 캐릭터지만 좀비가 되고 나서는 반전매력을 보여준다. 이상아는 청순미가 돋보이는 배우인 만큼 ‘린다’는 희귀템이다. 이상아의 전작은 ‘레미제라블’의 청순녀 ‘코제트’였다. 스캇의 여동생 ‘셰럴’은 송나영이 정평이 있지만 김단이도 괜찮았다. 좀비가 된 셰럴은 이 작품에서 가장 찰지게 욕을 해대는 캐릭터다. 개그캐로는 빠지지 않는 김지훈 ‘제이크’를 투입한 것도 이번 시즌의 묘수.

좀비 혐오증 환자들도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는, 유쾌하기 짝이 없는 뮤지컬이다. 이블데드류의 뮤지컬을 싫어하는 사람과는 밥을 같이 먹을 순 있겠지만, 술은 마실 수 없을 것 같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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