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우리 곁에, 예술

과학과 예술의 접목, 지극히 다빈치스러운…

입력 2024. 07. 18   16:55
업데이트 2024. 07. 18   17:00
0 댓글

우리 곁에, 예술  
Artist Studio ⑩ 김윤철 현대미술가

비커·온도계…실험실 온 듯
음악 유학 갔다가 미디어 아티스트로
과학자들과 영감 주고받는 예술가
재료 구성하는 물질 자체에 대한 탐구
도대체 이게 뭐지
거대한 금속 매듭·우주의 뮤온 입자…
과학지식 없어도 본능적 감상 제안
그것이 작가가 지향하는 ‘물질의 세계’

CHROMA IX. 1660×430×370cm, 2024 ‘Elliptical Dipole: Visceral Particles and Sorcerous Flows’. 제공=798CUBE
CHROMA IX. 1660×430×370cm, 2024 ‘Elliptical Dipole: Visceral Particles and Sorcerous Flows’. 제공=798CUBE

 


나노 단위 초미세 입자 물질, 수은, 하이드로겔, 자기장 등 흔히 예술에서 호출되지 않는 재료를 연구하고, 물질에 대한 실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현대미술가 김윤철. 그의 작업실은 여느 작가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비커와 온도계, 실험 표본, 다양한 색상의 액체가 담긴 실린더 등 과학자의 실험실과 같이 실험기구와 그 흔적이 가득하다. 작가는 스튜디오에서 독서와 토론을 하고, 컴퓨터로 설계 도면을 그리는 등 시뮬레이션 작업을 한다. 또 작품 재료가 되는 물질을 지난할 만큼 오랜 시간을 들여 실험한다. 실험실과 같은 스튜디오에서 창의적 연구를 하는 그는, 과학자들과 초학제적 연구와 영감을 주고받는 현대미술가다.

김윤철 작가는 본인을 음악을 전공한 후 미술로 전향한 독특한 케이스라고 소개했다. 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 독일 유학 중 오디오 비주얼 매체를 전공했다. 이 과정이 그를 음악가에서 미술가의 길로 인도했다. 전자음악을 하며 영화, 애니메이션, 연극, 현대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을 만나 교류했고, 자연스럽게 멀티미디어 작업으로 확장됐다.

“전자음악을 하면서 컴퓨터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시각예술로 전향하는 다리 역할을 했어요. 1990년대 컴퓨터아트나 매체 예술로 연결되면서(컴퓨터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디지털아트의 한 형태인) 제너레이티브 아트 등 매체 작업을 일찍 시작했죠.”

백남준이 미디어아트를 창시했듯, 김윤철에게도 본인만의 언어가 필요했다. 수년간의 고민 끝에 그가 찾은 답은 ‘물질의 세계’로 흙, 물감 등 예술의 재료를 구성하는 물질 그 자체에 대한 탐구였다. 그는 물질에 대한 탐구를 작품이라는 구조와 형태 속에 갇혀 있는 재료의 해방이라고 정의한다. 시각적 재현 속에 갇힌 재료, 즉 로댕의 인물 조각상의 포즈가 의미하는 문화적 의미 등이 아닌 ‘돌’이라는 재료 그 자체를 직면하게 함으로써 물질 차원에서 예술을 만나게 하는 것이 그만의 새로운 언어다.

물질을 탐구하려니 화학이나 물리 등 과학적 지식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김 작가는 관련 논문과 자료들을 공부했다. 그 실험의 결과로 선보인 첫 개인전은 미술계는 물론 재료공학 등 과학 분야 전문가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과학자들이 김윤철 작가를 그들의 연구실에 초대해 작품에 대해 질문하고 과학적 정보를 공유하는 등 최근 주목받는 초학제적 연구와 협업을 제안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의 과학적인 탐구와 실험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비엔나응용미술대학의 예술연구프로젝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예술·과학 융합 프로그램 등이 그 과정이었다.

“당시 연구에는 이론가, 과학자, 철학가, 작가 등이 함께 참여했고, 연구진은 원래 예술과 과학은 같은 곳에서 출발했으나 점점 다원화·전문화되면서 그 연결 고리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길을 갔다고 봤어요. 2000년에 이르러 다시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만나면서 예술가들이 더 근원적으로 과학의 기저에 있는 자연을 이해하고자 했고, 기술 이전에 과학과 자연을 이해하는 근원에는 항상 예술이 있었죠. 그래서 연구팀은 예술과 과학을 단지 하나의 만남, 융합 차원이 아니라 원래 같은 뿌리로 다시 만나게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었습니다.”

 

 

Argos-the Swollen Suns. 400×250×200cm, 2022 ‘Elliptical Dipole: Visceral Particles and Sorcerous Flows’
Argos-the Swollen Suns. 400×250×200cm, 2022 ‘Elliptical Dipole: Visceral Particles and Sorcerous Flows’

 


김윤철의 작업 전개 과정을 듣고 보니 그의 작품에 매번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탐구해온 물질의 세계는 어떤 과학적 태도를 바탕으로 작품에서 시각적, 미적 형태로 구현되는가?

거대한 금속 매듭, 또는 승천하는 용의 형상과도 같은 ‘크로마’는 천장에 매달린 채 움직이는 키네틱 설치작품이다.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소개되며 김 작가의 대표 작품으로 알려진 ‘크로마’는 작품을 구성하는 유닛 개수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국내외 미술관, 기관 등에 설치돼 있다. 크로마는 고대 그리스 신화 중 자신의 꼬리를 무는 뱀을 뫼비우스의 띠 형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작품 몸체를 감싼 오묘한 색상의 발광 물질과 작품의 움직임으로 관람자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나의 유닛은 실리콘 물질로 채워져 있고, 기계 신호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며 기온과 명암에 따라 다채로운 색상을 드러낸다. 이는 움직임에 따른 재료의 휘는 각도와 압력 등에 대한 치밀한 계산과 수많은 실험을 바탕으로 구현된 결과다.

‘아르고스(Argos)’는 우주에서 방출되는 뮤온 입자가 공기 중에서 검출될 때마다 그 마찰로 플래시를 터트리고 전기 음을 내며 반응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뮤온(muon)은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입자 중의 하나로,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우주선(cosmic ray)에 의해 지상에서 10㎞ 이상의 높은 고도에서 생성된다. 전자와 비슷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더 작은 입자로 쪼개지지 않고 그 자체로 가장 근본적인 입자이며, 내부 구조가 없는 점 입자다.

아르고스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의 이름으로, 마치 거대한 선지자가 우주 신호를 찾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100개의 눈을 가졌으나 인간의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미세한 존재의 물리적 사건을 가시적인 유체역학적 현상으로 번역함으로써 중력, 밀도, 경계, 복잡성과 같은 새로운 물질적 관계들의 차원과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외에 수만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돌을 나노 입자 형태로 만들어 그 성질에 변화를 주고, 자기장을 이용해 재료를 움직이게 한다.

어려운 이론이나 재료, 과학에 대한 지식 없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지 지레 진입장벽을 느낄 필요는 없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을 몸으로, 감각적으로 보고 느끼기를 제안한다. 작품을 보며 ‘도대체 이게 뭐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라. “언어로 정의되기 이전의 어떤 것” “형태로 포착되기 이전의 무엇” “문화로 포착되기 이전의 차원”이 김윤철 작가가 지향하는 물질의 세계로, 형태와 개념, 문화적 코드에서 분리된 물질 그 자체에 대한 본능적 감상이기 때문이다.

 

 



김윤철(1970)은

추계예대 작곡과와 쾰른매체예술대 오디오비주얼매체 전공을 졸업했다. 세계 최대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세른이 수여하는 콜라이드 국제상(2016)과 VIDA 15.0 국제상을 받았다. 예술·과학 프로젝트 그룹인 플루이드 스카이스 멤버(2012~2014), 비엔나응용미술대학의 예술연구프로젝트 리퀴드싱즈의 연구원(2012~2015),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프로그램 독립연구단 매터리얼리티의 연구책임자로 활동한 바 있다. 한국을 비롯해 독일, 슬로베니아, 영국 등지에서 15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으며,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과 기획전에 출품했다.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필자 심지언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시각예술 전문 매체 월간미술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