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스테이지 -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고교생 4명의 꿈과 엇갈린 사랑
잔잔한 스토리·긴 여운…딱 일본 만화
와일드혼 작곡 넘버들 귀에 착~
김희재·케이, 만화 찢고 나온 듯
박시인·김진욱 인상적 연기 스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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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햇살이 잘게 부서져 벚꽃과 함께 쏟아져 내렸던 오후. 친구들이 배구를 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하얀 쌀밥에 다시마채조림, 달걀말이, 굴튀김 반찬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날씨가 화창한 아침에는 30분쯤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곤 했다. 봄비의 눅눅함이 완전히 가신 달큰한 공기, 기분 좋게 이마에 닿는 바람, 덧칠마저 벗겨져 원래 색을 알 수 없게 돼 버린 오래된 벤치, 노란 눈을 반짝이며 살금살금 걸었을 밤 고양이의 발자국.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그 아이가 내 눈 속으로, 나의 작고 초라한 세계로, 그 건강하고 앳된 한 줌의 어둠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발걸음으로 쑥 들어와 버린 것은. 그의 이름은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고, 의외로 평범한 것에 조금 놀랐다. 마사오, 나의 사토 마사오.”
일본 소설의 문체를 빌려 봤는데, 분위기가 조금은 느껴지시는지. 이런 일본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만화 특유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오늘 소개할 뮤지컬 또한 마음에 들 것이다. 제목은 ‘4월은 너의 거짓말’로 아라카와 나오시의 순정만화가 원작이다. 2022년 5월 초연됐던 일본 뮤지컬로 EMK뮤지컬컴퍼니가 라이선스로 들여왔다.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엘리자벳, 레베카, 웃는 남자, 팬텀, 마타하리, 엑스칼리버 등의 대작을 라이선스 또는 창작해 무대에 올려 온 EMK로서는 좀 의외다 싶을 정도로 그간의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잔잔하고 자잘한 일상 속에서 여운이 긴 감동을 핀셋처럼 집어내는 일본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뮤지컬의 음악을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확실히 몇몇 넘버는 와일드혼 특유의 귀에 쏙 감기는 멜로디를 갖고 있는데 ‘거짓말의 주인공’ 카오리가 부르는 1막의 넘버 ‘퍼펙트(Perfect)’가 그렇다. ‘위키드’ 글린다의 넘버 ‘파퓰러(Popular)’가 연상되는 이 곡은 관객들이 인터미션 시간에 흥얼거릴 정도로 중독성이 강력하다.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10대들의 사랑 얘기로, 히트 드라마의 흥행 아이템을 곳곳에 뿌려 놓았다. 어린 시절 기계처럼 정확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콩쿠르를 휩쓸어 ‘인간 메트로놈’으로 불렸던 천재소년 코세이는 전형적인 ‘힘숨찐(힘을 숨긴 찐따)’ 캐릭터.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다른 사람의 피아노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자신이 치는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돼 버린다.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코세이. 그의 세상은 온통 모노톤이다.
여학생 츠바키는 어린 시절부터 코세이의 단짝 친구로 운동선수(소프트볼) 특유의 건강하고 밝은 분위기를 풍긴다. 피아노를 그만둔 코세이를 안타까워하지만, 사실은 그를 마음속으로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눈에 보이는 거, 귀에 들리는 거 전부 다 컬러풀하게 바뀐대”라는 츠바키의 말에 끌려 소개팅에 나갔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카오리를 만나게 되고, 콩쿠르에서 자신만의 연주로 무대를 물들이는 카오리를 보면서 코세이는 충격을 받는다.
카오리를 사랑하게 된 코세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친구이자 축구부 주장, 학교의 인기남인 료타의 연인이다. 10대들의 엇갈린 사랑은 과연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병에 걸려 서서히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는 카오리의 고백. 그가 한 유일한 거짓말은 어떤 것이었을까.
김희재 ‘코세이’와 케이 ‘카오리’는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조합’이라는 흥미요소가 있다. 두 사람의 조합은 도시락에 떨어진 벚꽃처럼 반갑고 싱싱하다. 김희재는 큼직한 안경 소품과 어눌하고 답답한 말투로, 멍청해 보이는 코세이 캐릭터를 잘 만들었다. 김희재와 케이는 와일드혼이 팝 스타일로 작곡한 넘버들을 ‘내 것’처럼 편하게 소화했다. 두 사람의 마지막 이중창 ‘너의 소리가 들려(I Can Hear You)’는 꽤 울림이 길다.
EMK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이기도 한 박시인은 무엇을 하든 무대에서 돋보인다. 그의 ‘츠바키’는 빛과 어둠의 경계 어딘가가 아니라 어둠을 품은 빛, 빛을 감춘 어둠 같았다. 코세이에게 툭툭 던지는 농담, 급격한 기분의 전환, 남자 같은 씩씩함. 모든 것을 흘려듣고 볼 수 없게 만드는 배우다. 레미제라블 ‘앙졸라’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는 ‘료타’ 김진욱은 머지않아 대스타로 등극할 것 같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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