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
패션과 예술의 컬래버레이션 - 초현실주의 스타일의 탄생
1920년대 프랑스
현실 초월 표현 유행
디자이너 ‘스키아파렐리’
‘달리’와 예술적 협업
과장·왜곡 패션 선봬
20세기 중후반
앤디 워홀 종이 드레스 등
패션·예술 끊임없이 교감
새로운 형태의 미학 창조
예술사에서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패션에 큰 영향을 줬다. 1920년대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초현실주의는 무의식, 꿈, 환상 등 잠재의식을 탐구하며 현실을 초월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표현 방식을 추구한다. 당대의 패션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과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를 키워 낸 패션디자이너로 일상의 패션을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중요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녀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만 레이(Man Ray), 장 콕토(Jean Cocteau) 등 당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예술가그룹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그들과의 예술적 교류를 통해 그녀의 패션작업 역시 그녀만의 독창적인 패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스키아파렐리의 예술적 시도는 ‘트롱프뢰유(Trompe l’oeil·1927)’ 스웨터로부터 시작된다. 스웨터는 언뜻 보면 니트 위에 리본이 묶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니트의 일부로 리본을 새겨 넣어 현실과 이상의 충돌을 보여 준다. 이는 이후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조너선 앤더슨(Jonathan Anderson)’ 등의 디자이너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수많은 패션 예술작품을 남겼다. 시인 장 콕토와는 공동으로 디자인했는데 ‘자수와 비드 재킷’(1937)은 콕토의 드로잉을 기반으로 제작했다. 길게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있는 여성의 옆얼굴과 앞 허리 손의 표현은 신체 부위·몸통의 인물과 부조화를 통해 초현실주의적인 표현을 했다. 이후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와 스키아파렐리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공동작으로 예술과 패션, 패션과 예술을 서로 선보이며 독특하고 강렬한 인상의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특히 스키아파렐리는 달리의 ‘랍스터 전화기(Lobster Telephone·1936)’ 작품과 접목해 ‘랍스터 드레스’(1936)를 탄생시켰으며, 이 드레스는 잘 익혀진 랍스터와 파슬리를 드레스 위에 배치해 패션이 초현실주의 예술의 한 형태로 인식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달리 또한 1937년 스키아파렐리의 드레스에 완벽한 액세서리가 될 유니콘 브로치와 랍스터 팔찌를 디자인하며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진정한 협업을 완성시켰다. 피부가 찢어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눈물 드레스(Tear’s Dress·1937)’는 스키아파렐리와 달리의 컬래버레이션 드레스로 옷을 찢는 것은 관습을 부정하고, 가장 격식을 차려야 할 이브닝 가운임에도 불구하고 파괴적으로 변질된 상태를 드러낸다. 이는 파시즘이 유럽 전역에 만연한 당시의 정치,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졌다. 이외에도 스키아파렐리는 책상 서랍처럼 주머니가 달린 ‘데스크 슈트(Desk Suit·1936)’, 구두를 그대로 머리에 씌운 듯한 형태의 ‘신발 모자(Shoe Hat·1937)’ 등 크기가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 사물의 새로운 배치 등을 통해 혁신적이고 과감한 패션 예술작품들을 발표하며 당대의 패션계를 사로잡았다.
1957년 21세에 크리스찬디올의 수석디자이너가 된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턱시도 팬츠 슈트’ 여성복을 발표하며 ‘르 스모킹 룩’이라는 시대 통념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예술에 대한 관심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그의 작품으로는 ‘몬드리안 드레스(Mondriaan Dress·1965)’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예술가와의 협업보다 예술작품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다. 피터르 몬드리안(Piet Modriaan)이 ‘구성 시리즈(Composition·1928)’ 작품을 발표한 지 30여 년이 지난 뒤 총 6개의 칵테일 드레스로 탄생시켰으며, 이는 ‘몬드리안 룩’이라고 명명됐다. “모든 것이 예술이고,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며 패션의 예술화를 주도한 그는 근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다수 발표했다.
20세기 중후반 대중적이고 대량생산적인 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자신의 작품을 옷으로 제작했는데 캠벨 수프 작품을 종이드레스에 입히는 등의 방식을 활용했다. 그는 회색 머리, 와이드 스트라이프 티셔츠, 가죽재킷, 사파리재킷, 블랙 패션, 보디페인팅 등 수많은 패션 아이템을 유행시킨 패션스타이기도 하다.
현대 들어 패션과 예술과의 협업을 통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는 사례는 빈번해지고 있다. 2001년 당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에 의해 시작된 협업은 젊은 고객들에게 매우 크게 어필했으며, 예술을 마케팅 수단으로서 잘 활용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잔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는 2018년 컬렉션에서 앤디 워홀의 원색적인 작품을 전신에 그대로 프린팅해 키치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2018년 레이 가와쿠보의 꼼데가르송에서 다카하시 마코토의 일본 망가(Manga) 소녀 캐릭터를 그대로 티셔츠, 스커트 등에 녹여 냈다. 현대예술가 중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마틴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디올 옴므(Dior Homme) 등과 협업해 드립 페인팅에서 액션 페인팅까지 다양하게 컬렉션에 녹여 내고 있다.
이상으로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패션과 예술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서 패션과 예술이 서로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고 유기적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볼 수 있었다. 패션과 예술은 끊임없이 서로 교감하면서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형태의 미학을 창조해 나갈 것이다.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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