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만나는 2024 트렌드 - 프로관리러
미래 불안 극복하려 ‘자기 통제’ 집중
건강한 삶 좋지만 압박은 벗어나야
지난봄, 야외활동하기 좋은 날씨가 되자 여기저기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인 2024 서울하프마라톤 행사에도 2만 명 넘는 사람이 참가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요즘 마라톤 행사를 보면 참가자들이 무척 젊다는 것이다. 올해 신청자 중 66%가 2030세대였는데 다른 대회들도 역시 대략 60~70%는 2030세대였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마라톤 대회에서 20~29세 참가자는 2019년 8230명에서 2023년에는 거의 만 명으로 증가했다. 뉴욕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LA), 보스턴 마라톤 등에서도 젊은 층의 참가율이 매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다고 한다.
마라톤뿐만 아니다. 2030에게 운동은 필수가 됐다고 할 만큼 자신의 루틴에 운동을 넣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이 하고 싶은 자기계발 1순위가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이 이처럼 운동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젊은 사람에게도 건강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됐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지만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자기 통제감도 한몫할 것이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과 시간, 그 무엇이든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에 빠진 사람이 늘고 있다. 자기관리를 마치 전문가처럼 하는 일명 ‘프로관리러’의 등장이다.
운동을 즐기는 양상이 변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젊은 층에서 전반적으로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종목도 다양해지면서 운동 빈도가 늘어났다. 자신의 운동 스케줄을 지키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여행지에서도 호텔 헬스장을 이용하며 인증하거나 새로운 운동기구를 경험할 겸 여행지 헬스장을 일회권으로 이용하는 경험을 콘텐츠로 제작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목표나 가시적인 성과도 중요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요즘 운동을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 대회에 참가하거나 자격증까지 따는 20대가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취득하는 ‘생활스포츠지도사’의 경우 2021년 대비 2023년 검색량이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운동 종목의 변화도 흥미롭다. 한화손해보험과 바이브 생활변화관측소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이 언급하는 운동 종목 중 줄넘기, 요가, 자전거 등은 언급량이 줄고 크로스핏, 클라이밍, ‘천국의계단’ (계단을 오르는 형태의 운동기구)등은 증가했다. 다이어트보다는 근육을 만들고 성취를 느낄 수 있는 고강도 운동이 인기를 얻는 것이다. 프로관리러에게 운동이란 단순한 취미나 건강 관리가 아니라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고 신체가 변화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자기통제의 수단이다.
정신 영역도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늘어나며 자기계발에 이를 접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해외 유명 뇌과학자의 하루 루틴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난 직후 10~30분 정도 산책하며 햇볕을 쬐고, 기상 후 90~120분까지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산책 후에는 소금물을 마시고, 찬물 샤워를 하는 등 열 가지 넘는 하루 루틴 목록이 존재한다. 이는 뇌과학 연구 결과에 근거한 것으로 하루를 더욱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이든 측정해 기록하는 것도 프로관리러의 일면이다.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 덕분인데 운동할 때 최대 심박수를 측정한다거나 수면 중 렘수면 주기를 기록한다. 이를 통해 운동과정과 수면의 질까지 관리할 수 있다. 다이어트도 무조건 식사량을 줄이던 이전과 다르게 이제는 휴대용 혈당 측정기를 통해 자신의 혈당 변화를 확인하고 혈당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혈당 스파이크’를 관리하는, 체계적인 관리로 진화하고 있다.
프로관리러가 관리해야 할 마지막 부분은 자원관리다.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며 지출 관리도 2030 사이에서 게임처럼 번지고 있다. 금융앱 토스에서는 일부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루 동안 카드내역에 새로운 지출이 없다면, 다음날 일정 포인트를 지급하는 ‘무지출 챌린지 베타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단순히 아끼는 것을 넘어서 게임 형태로 참여해 재미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자기계발에서 시간관리는 빠지지 않는 영역이지만 요즘 사람들의 시간 관리는 한층 프로답다.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 콘텐츠를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구글 캘린더로 스케줄 관리하는 방법’ ‘노션으로 개인 대시보드 만들기’ 등 개인 시간관리와 관련된 노하우다. 마치 업무를 효율화하듯이 일상생활에도 생산성 도구를 적용해 여가시간까지 계획하고 알차게 사용하려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2030이 더욱 자기관리에 진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최근 20대들이 마라톤에 빠지게 된 현상을 두고 ‘Quater-life crisis’라고 표현한다. 흔히 mid-life crisis(중년의 위기)란 중년을 맞이한 사람들이 생애주기가 변화함에 따라 자아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에서 혼란을 겪는 시기를 의미하는데 20대 중반의 시기를 그 말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생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통제감을 느낄 수 있는 마라톤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더욱이 나 자신의 중요성이 커진 시대다. 과거와 같이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자기계발의 목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취미 하나를 하더라도 자격증을 따야 만족하는 것이다.
프로관리러가 많아지는 현상은 양면적이다. 불안한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과도하게 자신을 다그치는 행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하게 일상을 관리하는 ‘갓생’ 열풍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걍생(그냥+生)’이라는 말은 자기관리 압박에 관한 피로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수준에서 자기관리가 지속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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