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가 있는 병영] 안경

입력 2024. 07. 04   14:12
업데이트 2024. 07. 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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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하 시인
권갑하 시인



가슴으로 세상을 보는 
안경이 되고 싶다 
그대 눈물 흘릴 땐 
뿌옇게 가려주고 
플래시 터지는 날은 
따라 반짝 빛나고 싶다 

그리움의 아침이나
기다림의 저녁이나 
지쳐 누울 때는 
잠시 눈감게 하고 
저만치 
떨어져 앉아 
그댈 오래 바라보고 싶다 


<시 감상> 

사랑하는 사람이 슬픈 “눈물 흘릴” 때 감싸주고 “가려주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이 “지쳐 누울 때” 그 안쓰러운 모습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표현은 통속적이며 소박한 개별 감정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 걸까. 어쩌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회자(膾炙)돼 온 이런 말은 얼핏 상투적이고 진부한 언술로 들리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본디 사랑하는 마음이 그러하듯이 버릴 수도 숨길 수도 없다. 마음속에서 뭉클하며 저절로 솟아 나오는 진정한 사랑의 표현은 지금도 여전히 변용(變容)된 언술을 드러낸다.

시인은 사랑하는 마음을 “안경”에 비유한다. 안경은 시의 화자가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매개 수단(도구)이다. 그런데 안경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너무도 친밀한(이미 내 몸과 하나가 돼 따로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하는) 삶의 수단이다. 안경은 우리 몸의 장기와 같이 긴요한 것이지만, 착용한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이기도 하다. 시인이 안경이라는 일상적인 수단인 사물을 인격화해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소중한 사랑의 마음이 먼 곳 어딘가에 있는 초월적인 감정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언뜻 상투적이고 진부하게 보였던 사랑의 언술들이 “가슴으로 세상을 보는/안경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의 시어로 전이돼 참신하고 생생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지닌 시원(始原)의 샘과 같아 진부하거나 마르는 법이 없다. 지금 여기 내 일상에서 ‘안경’과 같은 사람, 또는 내가 먼저 스스로 ‘안경’이 돼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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