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희의 마·이·클(마음으로 이어주는 클래식)
슈베르트의 피아노 듀오 ‘군대행진곡’
정확한 소리 장점 ‘악기의 왕’ 불려
19세기 중·상류층 자녀 교습 열기
전문 피아니스트, 레슨으로 생계 가능
슈베르트 듀오 위한 70여 연탄곡 작곡
군대행진곡, 앙상블 연주 인기 레퍼토리
팡파르풍 당당한 선율 들을 때마다 경쾌
‘엘리제를 위하여’ ‘소녀의 기도’ ‘은파’ ‘강아지 왈츠’. 어린 시절 피아노학원에서 한 번쯤은 들어 본 『피아노 명곡집』에 나오는 곡들입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고, 한 번쯤은 배워 본 경험이 있어 피아노라는 악기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조성진, 손열음, 임윤찬 등 우리나라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으로 피아노 애호가가 많이 늘었습니다.
피아노는 어쩌면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악기여서 특별히 설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피아노에 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피아노 건반은 모두 88개입니다. 건반을 누르면 연결돼 있는 해머가 각 현을 때려 소리를 내게 돼 있습니다. 악기 분류상 건반악기에 속하지만 현악기와 타악기의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는 복합적인 악기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재 피아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악기를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의 악기 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입니다. 원래 그는 피렌체의 명문가인 메디치가에서 일하며 피아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쳄발로를 제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피아노 이전에도 많은 건반악기가 있었고, 그 기원은 무려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피아노와 가장 닮은 악기는 쳄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도 많이 연주되는 악기죠.
크리스토포리는 쳄발로의 강약 조절이 어려웠던 점을 개량하고 싶었습니다. 좀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현을 뜯는 대신 해머장치를 이용해 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액션을 고안해 냈습니다. 1709년경의 일이었습니다. 1720년 그가 개발한 피아노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피아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는 “피아노 소리는 천둥소리처럼 강하고 봄밤의 나이팅게일처럼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음색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죠. ‘악기의 왕’ 혹은 ‘작은 오케스트라’라고도 표현되는 피아노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음악사에서 중심이 되는 악기였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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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누가 건반을 누르더라도 정확한 소리가 납니다. 연주를 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소리를 내는 과정 자체는 다른 현악기나 관악기에 비해 그다지 어렵지 않죠. 또한 혼자서 선율, 화성, 리듬을 금방 배워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 시민사회에 널리 퍼질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악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교양 있는 중류층 이상의 가정에선 응접실에 피아노를 한 대씩 놓는 게 트렌드가 됐습니다. 궁정의 귀족 살롱은 물론 대규모 홀에서도 울려 퍼질 수 있는 음역과 음량을 가진 피아노를 위한 음악회도 많이 열렸습니다.
또 피아노는 악기 특성상 ‘평균율’을 채택해 쉽게 조를 바꿔 연주할 수 있고, 작곡가들은 다채로운 분위기의 곡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평균율’이란 한 옥타브를 12개의 반음으로 등분해 정립한 음률로, 피아노의 한 옥타브가 흰건반 7개와 검은건반 5개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피아노 음악은 바로크 시대 이후 더욱 발전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세 아들 빌헬름 프리데만,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작곡가와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고전주의 시대로 건너는 ‘다리’ 역할을 맡게 됩니다.
소년 시절 피아노를 접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77년 빈 연주여행 중 만난 슈타인 피아노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음색이 투명하고 깨끗한 슈타인이 만든 피아노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역시 애용했는데, 액션 속도가 빠르고 고른 소리를 낼 수 있어 표현력이 뛰어난 연주가들이 좋아했습니다. 노래하는 듯한 멜로디를 잘 살릴 수 있었던 슈타인의 피아노로 모차르트는 수많은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을 비롯한 명곡을 남겼습니다.
작곡가 이전에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먼저 알린 베토벤은 유럽 여러 나라의 피아노를 차례로 섭렵했고, 일생에 걸쳐 32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피아노 협주곡 5곡을 남기며 피아노가 ‘악기의 왕’임을 입증했습니다. 특히 그의 후기 피아노 작품들은 악기의 낮은 음역과 최고 음역의 음을 고루 사용해 풍부한 울림을 담고 있습니다.
베토벤과 이전 작곡가들은 자신의 곡을 직접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악기가 점점 발달함에 따라 19세기에는 전문적인 피아니스트가 등장합니다. 더불어 피아노 작품뿐 아니라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교향곡이나 규모가 큰 작품을 피아노로 즐길 수 있도록 많은 곡들이 편곡되기도 했습니다. 오케스트라처럼 음량이 풍부하고 강약을 자유자재로 살릴 수 있었던 피아노는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악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피아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프레데리크 쇼팽과 프란츠 리스트의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기에 중·상류층 자녀들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많은 음악가가 작곡과 연주뿐 아니라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위한 난도가 높지 않은 곡은 물론 두 명의 연주자가 한 대의 피아노에서 함께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듀오 작품, 즉 연탄곡이 많이 작곡됐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형제자매, 친한 친구, 사제지간에 연주하기에 적합했습니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70여 곡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듀오 작품을 썼습니다.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두 딸을 가르치면서 선율의 흐름과 정확한 리듬감을 길러 주기 위해 많은 작품을 만들었죠. 그는 17개의 피아노 듀오 ‘행진곡’을 작곡했습니다.
‘3개의 군대행진곡 작품 51’의 첫 곡 D장조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구도시철도 승강장에서 열차가 도착할 때 이 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짜임새 있는 화성 구조, 대담한 전조, 다양한 리듬을 표현하고 있어 앙상블 연주의 인기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또 여러 독주곡,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편곡되기도 했습니다.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했을 때 프랑스군의 열병식을 바라보며 애국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이 곡에서 그는 그때의 애국심을 담아 오스트리아 왕실 군대의 용맹함과 위풍당당한 군인들의 모습을 그려 냈습니다. 또한 행진곡이지만 아름다운 선율, 폭넓은 감정, 발랄한 리듬 등의 다채로운 음악적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팡파르풍의 당당한 선율로 시작되는 경쾌한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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