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현대 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이성·과학·진보 추구하며 ‘개인의 주체성’ 강조

입력 2024. 07. 03   16:08
업데이트 2024. 07. 0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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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⑬ 18세기 계몽주의(상) 인간 이성 드높이다 

18세기 주류 사조로 합리주의 전통 재확립

시민 사고 일깨워 프랑스혁명 씨앗 뿌려
“아는 것이 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하는 힘 ‘이성’ 당대 지적 대세 자리잡아

시·공간 제약 초월 보편적·불변적 법칙 중시
천부인권 사상 제시해 인간의 존엄성 제고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이마누엘 칸트의 동상.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이마누엘 칸트의 동상.

 

 

오는 26일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세계인의 축제인 하계 올림픽이 열린다. 흔히 프랑스는 서양 예술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게는 오늘날 세계인의 이념이 된 자유민주주의를 세계사 흐름 속에 최초로 각인시킨 나라다.


자유·평등·우애를 삼색기(三色旗)로 상징화해 꾸준히 세계인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러한 위상을 지니게 된 발단은 1789년 7월 프랑스인들이 부르봉왕조의 절대주의 통치에 저항해 일으킨 프랑스혁명이었다. 혁명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사상적으로 혁명을 부추긴 것은 바로 18세기 주류 지성 사조(思潮)이던 계몽주의(啓蒙主義·Enlightenment)였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 계몽주의 영향 아래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불합리한 요소를 찾아내고, 이의 해결을 촉구한 개혁가들의 외침이 시민의 사고를 일깨워 급기야 대혁명으로 폭발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계몽주의는 17세기 과학혁명에서 유래했다. 우주에 일정한 운행 법칙이 있다면 인간 사회에도 이에 상응하는 법칙이 있으리라는 가정 아래 인간 이성을 통해 이를 발견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은 데서 나왔다. 한마디로 일종의 낙관적 진보사관이었다.17세기가 ‘과학의 세기’ 또는 ‘천재의 세기’였다면 18세기는 ‘이성의 세기’였다. 잘 알려진 바대로 18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3부작(『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에서 인간 이성의 본질과 한계를 넓고 깊게 탐구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계몽주의란 무엇일까? 핵심 개념인 계몽은 전통과 무지몽매를 타파하고 인간 이성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당대 활동한 철학자 칸트는 『베를린 월보』(1784년 12월호)에 기고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란 제목의 에세이에서 계몽을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한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그는 계몽주의의 모토처럼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고) 과감히 알려고 하라. 그대 자신의 이성을 행사할 용기를 가져라”고 외쳤다.


1948년 12월 공포된 유엔 세계인권선언 내용.
1948년 12월 공포된 유엔 세계인권선언 내용.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수비대와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성난 파리 민중.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수비대와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성난 파리 민중.



계몽주의의 기본 개념으로 이성, 자연법, 진보를 꼽을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계몽주의는 인간 이성(理性·reason)에 깊은 신뢰감을 표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개인의 주체성이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으로 대두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중세엔 “신앙(믿음)이 힘(Faith is power)”이었으나 이제는 “아는 것이 힘(Knowledge is power)”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르네 데카르트 역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외치며 진리에 이르는 확실하고 유일한 안내자는 바로 이성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생각하는 힘’인 이성을 무기로 의구심을 끝까지 천착해 이에 어긋나는 비합리적 요소를 철저하게 배격하고자 했기에 서양 문명 속에 합리주의(rationalism)의 전통을 재확립할 수 있었다. 이유를 묻고 따져 이치에 맞는 것을 수용하는 이성적 사고방식이 당대의 지적 대세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초반 과도한 이성 만능의 분위기에 반발해 감성(感性·emotion)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물결이 거세게 밀어닥칠 때까지 이성 중시 경향은 이어졌다.

다음으로 자연법(自然法·natural law)을 꼽을 수 있다. 계몽주의는 신학과 대비되는 과학, 자연적인 것을 강조했다. 대자연과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영원불변 법칙(=자연법)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인간 이성을 통해 발견하는 게 가능하다고 봤다. 이성적으로 입증하려면 각자의 주관적 차이를 초월한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바, 이를 위해선 판단 기준이 되는 일반적 원리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자연법이었다. 세상의 인위적 법률 및 가치와는 달리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보편적·불변적 법칙이었다.

원래 자연법은 고대 로마시대에 스토아 철학자들이 추구한 개념이었다. 중세엔 이른바 신법(神法)에 눌린 채 잠복하고 있다가 드디어 17~18세기 지성의 균열된 틈을 뚫고 재발아한 것이다. 프랑스혁명 시기 활동한 사상가인 콩도르세는 “자연법은 이성에 의해 발견되며, 실정법보다 앞서고 모든 민족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특히 18세기 저명한 계몽사상가들이 자연법에 따른 통치질서의 재구축을 주장하면서 당시 보편적 정치질서로 믿어 온 절대왕정을 타파하는 저항의 이념이 됐다.

중요하게는 18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자연법에서 근대 자유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긴요한 자연권(natural right) 개념이 흘러나왔다. 특히 누구도 예외 없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천부인권(天賦人權) 사상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에는 상식화되다시피 한 보편적 인권(universal human right)의 이념적 근거로 작용했다. 실제로 계몽주의의 자연권에서 배태된 인권 개념은 미국 독립선언서(1776), 프랑스혁명 인권선언서(1789), 유엔 세계인권선언(1948) 등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개인 인권 신장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뉴욕 유엔본부 입구에 있는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디 시라지의 시 ‘아담의 후예’ 중 “모든 아담의 후예는 구성원으로 서로 결속돼 있고 같은 원리 안에서 창조됐다”는 구절은 바로 자연권의 보편적 적용이 창조주의 명령임을 암시하고 있다.

계몽주의는 왜 추구해야 할까? 이와 관련돼 끝으로 꼽을 수 있는 계몽주의 개념은 바로 진보(進步·progress)다. 즉 인간 이성으로 자연법을 발견하고 이를 기준 삼아 인간 사회의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할 경우 해당 사회는 무한한 진보와 행복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었다. 이는 낙원 상태에서 타락과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그리스도교 역사관과 대비되게 원시와 미몽의 상태에서 희망이 넘치는 유토피아를 향해 인류 역사가 전진할 수 있다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인 낙관론이었다. 이러한 기대를 콩도르세는 『인간정신의 진보』(1794)에서 “자연은 인간의 기능을 완성시키는 데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다”고 선언하면서 진보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二重) 혁명’으로 서양세계의 근본 구조가 흔들리기 이전엔 경제적으로는 농업, 사회적으로는 신분제, 정신적으로는 종교적 세계관이 주도했다.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종교와 신념이 자연현상과 인간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였다. 일반인의 경우 신(神)이 세상사를 주관하기에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게 세상을 무리 없이 사는 길이었다. 바로 이러한 망탈리테에 인간 이성을 앞세워 파열음을 낸 지성 사조가 계몽주의였다.

17세기 선구자들에 이어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과학이 자연에서 얻은 결과를 인간 사회 연구에 적용하려는 ‘위험한’ 지식인들, 즉 계몽사상가(프랑스어로 ‘Philosophes’로 불림)가 대거 등장해 정치, 경제,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백가쟁명식 논쟁을 벌인다. 이들의 주장과 활동에 관해서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자.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내주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군사사연구실장이자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로, 영국 근현대사와 군사사를 전공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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