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정훈장교로서 체험했던 ‘무제한’ DMZ 확성기방송

입력 2024. 06. 14   14:55
업데이트 2024. 06. 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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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효식 같다커뮤니케이션 대표 예비역 육군대령
엄효식 같다커뮤니케이션 대표 예비역 육군대령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남북한의 확성기방송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치졸한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지난 4일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부 정지했으며,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2018년 이후 중단한 대북 확성기방송을 6년 만에 재개했다.

북한 김여정은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새로운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지금은 확성기방송을 두고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2000년 이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남북한이 확성기방송을 그야말로 마음껏 했다.

최전선 부대로 배치받았을 때 가장 먼저 ‘여기가 최전방이구나’ 실감하게 된 것은 북한군 방송의 어색한 목소리와 노래였다. 당시 근무한 25사단의 백학 지역에서는 민가에 있어도 북한군 방송 소리가 선명했다. 밤새도록 울리는 확성기 소리는 내가 군인임을 자각시켰고, 사명감을 돋우는 보약이었다. 북한은 우리를 향해 ‘대한민국 비방과 북한 예찬’의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쏟아냈고, 우리도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고성능 출력 확성기로 공세적인 방송을 했다.

당시 일반전초(GOP)대대의 정훈실은 독자적인 방어방송도 했다. 최전선 대대정훈장교가 정훈병과 함께 운용했는데, 북한군이 방송을 시작하면 즉시 앰프의 파워를 높여 북한군 방송을 차단하는 게 1차적 목적이었다. 경계근무에 헌신하는 장병들의 사기 증진과 격려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정훈실에 있는 앰프 출력을 높여 놓고 전망대에 올라가면 넓은 DMZ평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북의 확성기방송 소리만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북한 방송 내용은 듣자마자 헛웃음이 나오거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남북 확성기 소리가 멈추게 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도 했다.

가끔 휴가복귀하는 병사들이 정훈과로 찾아와 좋은 노래 테이프를 건네며 야간근무 투입 및 아침 철수 때 틀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음악을 듣는 대대 장병들의 컨디션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은 지금도 느낌이 생생하다.

야간에 정훈병과 함께 따뜻한 커피 보온병을 들고 철책선 초소에서 밀어내기 경계근무 중인 병사들을 만났다. 군 복무 소감을 묻고 그들의 군대생활 애환도 들어보곤 했다. 더 열심히 경계근무하고 건강하게 전역하는 날까지 즐겁게 지내자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시간에도 사무실에서 틀어놓은 방어방송은 익숙한 멜로디를 장병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특히 밤에는 라디오 방송 진행자의 차분한 목소리와 음악을 장병들이 선호했다. ‘김희애의 FM 인기가요’는 철책선으로 피어오르는 임진강의 물안개와 함께 군 생활의 아스라한 추억이 됐다.

물론 북한군 방송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윙윙거리는 소음으로 들리거나, 바로 옆에서 소리지르는 것처럼 선명한 경우도 있었지만 병사들의 반응은 간결했다. “황당합니다.”

당시 남북한 군인들이 직접 확성기로 일대일 대화하는 대면방송이란 게 있었다. 감시초소(GP)에 근무하는 우리 장병이 북한군 GP의 인민군과 확성기로 대화하는 것이다. 경계심을 약화시키거나 정보를 캐내는 작전의 일환이었는데,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는가도 관심사항이었다. 당시 김일성 세습체제를 비난하면 북한군이 과격한 반응과 함께 즉시 방송을 중단하곤 했다. 확성기방송 전쟁은 이미 2000년 이전에 승패가 결정됐다. 북한이 다시금 확성기를 시작하려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패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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