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스파이, 그들이 온다

돈되는 정보, 팔아볼까? 그 순간만 지켜보고 있다

입력 2024. 06. 16   15:09
업데이트 2024. 06. 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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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 FBI 함정에 빠진 방위산업 스파이

러시아 동경 의심되는 방산업체 직원
브라질에 핵잠 자료 유출 시도한 부부
위장요원 접근해 물증 확보하고 기소
함정수사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방산 침해에 대한 방첩’ 법 조항 마련
전투기 전자전 시스템 유출한 방산업체 엔지니어



지난 4월 30일 미국 법무부는 전직 방위산업체 직원인 65세의 존 머레이 로 주니어가 국방 정보를 외국 정부에 전달하려 시도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40여 년간 여러 곳의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며 주로 미 공군 전자전 기술 전문가로 일해온 1급 비밀취급 인가자였다. 2020년 3월 그는 러시아 정보요원으로 위장한 FBI 요원과 만난 자리에서 2급 비밀에 해당하는 전투기 전자전 시스템의 세부 사항 정보를 누설했다.

이후 8개월 동안 그는 FBI 위장요원과 300통의 이메일을 교환하면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비밀 정보 지식을 노출하며, 러시아 정부와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같은 해 9월 FBI 위장요원과의 두 번째 접촉에서도 국방 비밀을 누설한 그는 2021년 12월 15일 체포돼 필라델피아 연방구치소에 수감됐고, 2년이 넘은 지난 4월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선고 공판은 오는 8월로 예정돼 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여러 차례 보안규정을 위반했고, 러시아를 향한 동경심을 표출, 2017년 4월부터 이미 스파이 혐의자로 주목받아 왔다. 2018년 2월에는 보안구역 내에 휴대용 저장장치(USB)를 소지하고 출입하다 동료에게 발각됐다. 1주일 후엔 회사 보안팀에 미국과 러시아의 비밀취급 인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지를 문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FBI가 함정수사를 시작한 것은 그의 이러한 의심스러운 행동 때문이었다. 그는 2020년 4월 30일 FBI 위장 요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모두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얘기하고 있고, 나는 손녀에게도 러시아어를 배우라고 한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법안에 사인한 것에 큰 관심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FBI가 방위산업 침해행위와 관련한 스파이 사건에서 자주 활용하는 방법이 바로 함정수사다. 위장 요원(Undercover Agent)을 활용해 대상자와 직접 접촉해 상대의 의도를 알아내고, 범죄 실행에 나서면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이번 사건처럼 개연성은 충분하나 증거 포착이 곤란한 스파이 사건의 경우 매우 유용한 방법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땅콩버터에 숨겨진 핵 잠수함 원자로 기술

2022년 11월 미 해군 엔지니어 조너선 토비 부부가 미군 잠수함의 핵 추진 시스템 설계와 관련된 비밀 자료를 유출하려 한 혐의로 각각 징역 19년과 21년형을 선고받았는데(부인은 같이 수감 중인 남편에게 편지를 전달, 사건 조작을 사주하다 사법방해죄 추가) 그 배경에는 역시 FBI의 함정수사 기법을 활용한 방첩 공작이 있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토비는 핵 잠수함을 원하던 브라질 정부 측에 비밀자료의 일부를 보내면서 추가 정보를 얻고 싶다면 연락하라며 비밀접선 방법을 알려줬다.

이에 브라질이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이를 미국에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스파이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 FBI는 브라질 정보요원으로 위장해 수개월간 연락하면서 수천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주기로 하고 거래를 성사시켰다.

2021년 6월 8일 FBI는 1만 달러 상당의 가상화폐를 보냈고, 26일 토비는 핵추진 잠수함의 원자로 설계와 관련된 비밀자료를 SD카드에 담아 땅콩버터 샌드위치에 끼워 미리 정해둔 무인 수수소(Dead Drop·스파이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정해둔 비밀 장소)에 가져다 뒀다. 위장 요원이 SD카드를 회수한 후 2만 달러를 더 보내자 토비는 비로소 파일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메일로 알려줬다.

8월 28일에도 토비는 또 다른 무인 수수소에 SD카드를 숨긴 껌 박스를 가져다 뒀다. FBI가 7만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전달하자 비밀번호를 알려줬는데, 거기에는 핵잠수함 원자로와 관련된 비밀 자료가 들어 있었다. FBI는 10월 9일 세 번째로 무인 수수소에 SD카드를 지니고 나타난 토비 부부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방산수출 환호에 앞서 방산방첩 강화해야

산업보안에 ‘역치’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경제 규모와 기술 발달이 어느 수준 이상이 돼야 산업보안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에서 경쟁 우위의 기술을 확보했다. 2000년대에 들어 산업보안에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2003년에는 국가정보원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설립되는 등 국가 차원의 기술보호 노력이 강화됐다.

하지만 대규모 자본과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방위산업이 수출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22년에는 173억 달러로 역대 최대 수출실적을 기록했고, 2023년에도 14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며 글로벌 10위권에 올랐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특수에 기인한 바가 크다지만 그동안 북한과 대치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체 방산기술을 꾸준히 성장시켜 온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방위산업은 고대로부터 중요한 정보전의 대상이었다. 적이 지닌 무기의 성능, 제원, 기술력, 생산능력 등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첨단기술이 동원되고, 수출 증대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수준이 높아지면서 방위산업을 둘러싼 국가 간 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방위산업에 대한 외국의 정보적 위협은 단순한 기술 유출뿐만 아니라 공급망 침해, 무기체계 획득계획 등 국방정책 및 ROC(작전요구성능) 설정 과정에 개입, 자국에 유리하게 조작하는 영향력 공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방위산업 최강 국가인 미국이 방위산업 방첩을 위해 DCSA(국방방첩보안국)를 통해 비밀을 취급하는 방산업체 종사자의 철저한 신원조사, 외부인의 수상한 접근 시 신고의무, 일정한 범위의 해외여행 등록의무 등 엄격한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2020년 12월 국정원법 개정을 통해 직무조항 중 ‘방첩’에 “방위산업 침해에 대한 방첩을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또 ‘방위산업 침해 대응센터’를 개설해 군사기밀 및 방산기술 유출 예방에 나선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우리 군의 미래 전투기인 KF-21 관련 자료가 공동개발에 참여 중인 인도네시아 연구원들에 의해 대량 유출된 사고가 발생하는 등 방심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안보와 국익 경쟁에서 피아 구분이 힘든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군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민간기업인 방산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정보적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기 위한 방첩기관의 교육, 홍보, 정보공유 노력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미국 방첩기관이 자신들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국민 경각심(Awareness) 제고’를 내세우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앞서 있다는 것이니 나쁜 일만은 아니지 않는가?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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