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 기억될 역사 기억할 영웅
6·25 참전유공자 5인 인터뷰 - 이태근 / 박황규 / 박정일 / 홍종희 / 박래봉
참전유공자 예우, 수당 인상 1순위 꼽아
지자체 지급액 제각각 “너무 아쉬워”
의료비 부담 보훈의료제도 강화 필요
보훈부, 위탁병원 확대 편의성 높여
주요 전투서 많은 전공 세운 전설들
참혹함 경험…희생 기억해줬으면
일상의 평화에 취해 선배 전우들의 희생을 잊을 때가 많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전유공자를 예우하는 일에 결코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되는 이유다. 국방일보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 참전유공자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이들은 수당 지급과 의료 지원 등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해 진솔한 얘기를 털어놨다.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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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 어려워 참전수당 유용해
지난달 30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6·25참전유공자회 충북지부에 5명의 참전유공자가 모였다. 영웅들의 가슴에 패용한 기장이 증명하듯 이들은 6·25전쟁 중 여러 전공을 세웠다.
이태근 충북지부장은 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에서 활약했고, 박황규 참전유공자는 육군통신학교(현 육군정보통신학교) 1기 출신으로 적의 공세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박정일·홍종희·박래봉 참전유공자 역시 주요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살아 있는 전설이다.
이들에게 예우에 대해 묻자 입을 모아 참전명예수당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얘기했다. 현재 참전유공자들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과 243개 모든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지원조례에 따라 추가 지급하는 참전수당을 받고 있다.
박정일 참전유공자는 “참전명예수당은 기본적인 생활비를 지원해 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 준다”며 “가끔 증손자가 집에 오면 작은 금액이지만 손에 쥐여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국가보훈부(보훈부)와 행정안전부가 ‘제43차 정책소통포럼’에서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참전유공자를 예우하기 위한 방법으로 참전수당 인상이 가장 시급하다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 보상대상 의료혜택 확대와 보훈가족 지원정책 강화가 그다음 순이었다.
보훈부가 2021년 통계청과 진행한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서도 6·25 참전유공자들의 노후생활 준비수단 1순위는 보훈급여금이었다. 당시 조사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를 구분하지 않아 정확한 6·25 참전유공자 수를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조사에 응한 15만 명의 참전유공자 중 90세 이상이 20%라는 점에서 3만 명 정도는 6·25 참전유공자로 추정된다.
이들이 참전명예수당과 참전수당을 중요하게 꼽은 이유는 노후를 위한 금전적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응답자 중 60.3%가 노후 준비에 대해 ‘전혀 또는 잘 준비돼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결국 참전유공자 3분의 2가 보훈급여금에 의지해 남은 생을 이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활동을 하기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일부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나 고령 또는 질환 등으로 별도 수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참전명예수당 같은 보훈급여금이 이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전유공자들의 최소 생활비는 168만7000원, 적정 생활비는 220만 원이었다. 보훈급여금만으로는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다.
희망적인 것은 정부 차원에서 인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전명예수당의 경우 2002년 5만 원에서 현재 42만 원까지 올랐다.
이태근 참전유공자는 “전쟁은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많은 이가 전쟁 후유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직업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며 “수당은 이런 어려움에 처한 참전유공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부연했다.
나라 위해 똑같이 헌신…대우는 달라
참전유공자들은 지자체가 지급하는 참전수당이 제각각이란 점을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지자체마다 재정여건에 따라 참전수당을 주는데 지역 편차가 크다.
6·25참전유공자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 평균 참전수당은 20만5000원이다. 충남 서산시(기초지자체)는 매월 50만 원을 참전유공자에게 지급한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여기에 광역지자체인 충청남도가 1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해 서산시 거주 참전용사는 참전수당 60만 원에 정부의 참전명예수당을 합해 102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전북 전주시의 경우 참전수당 월 6만 원을 지급한다. 도에서 주는 4만 원을 더하면 전주시 거주 참전용사는 참전수당 10만 원에 정부 지급 참전명예수당을 합해 52만 원만 지원받는다.
이날 만난 충북지부 회원들이 받는 참전수당도 제각각이었다. 진천군은 22만 원을, 청주시는 13만 원을 지급하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똑같이 헌신했지만, 사는 곳이 어디인지에 따라 참전유공자들이 받는 대우는 달랐다. 같은 전투에서 싸웠음에도 훗날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다. 지급액이 낮은 지역 참전유공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생각보다 크다.
청주시에 거주하는 이태근 참전유공자는 “수당이 적기도 하지만, 일단 다른 지역과 금액이 달라 많이 섭섭하다”며 “보훈부 등 정부가 나서 통일안을 제시했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훈부는 지난해 10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자체 참전수당 지침’을 배포해 기초·광역지자체에서 참전수당을 평균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할 것을 권고했다. 이를 통해 지자체별로 다른 참전수당을 상향 평준화하고 격차를 해소해 나갈 방침이다.
“보훈의료제도 덕분에 남은 삶 걱정 줄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예하 각 보훈병원과 위탁병원을 통한 보훈의료제도도 참전유공자들이 체감하는 복지 중 하나다.
이날 만난 박정일 참전유공자는 다리가 불편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주로 대전보훈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며 “병원에서도 6·25 참전용사는 따로 대기 없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게 해 줘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호평했다.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서 참전유공자 의료비 부담 수준을 분석한 결과 42.5%가 의료비가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참전유공자들이 많이 앓고 있는 병은 고혈압(23.2%), 근골격계 질환(16.5%), 비뇨기계 질환(10.1%) 순으로, 특히 치매 유병율은 1~2% 내외인 다른 보훈대상자에 비해 4%로 높게 나타났다.
이에 보훈부는 ‘단계별 의료전달체계’로 이뤄진 보훈의료제도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집에서 가까운 위탁병원(전국 730개소)에서 1차 진료, 지방보훈병원에서 2차 진료, 전문센터를 갖춘 중앙보훈병원에서 3차 진료를 받도록 한다.
이는 경증질환은 집 근처 위탁병원에서, 중증질환은 보훈병원에서 진료를 전담하는 합리적인 의료체계를 구축한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특히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점을 고려해 보훈·위탁병원을 대폭 늘리고 있다. 위탁병원은 보훈병원과 원거리 지역에 거주하는 보훈대상자의 진료 편의·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정한 의료기관이다. 보훈부는 올 연말까지 730개소인 보훈·위탁병원을 920개소로 확대하고 오는 2027년까지 위탁병원 규모를 시·군·구별 평균 5개소인 1140여 개로 확충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출신학교에 명패 증정 최고의 예우
보훈부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는 주거개선사업도 영웅들에게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체감하는 예우 중 하나였다. 단순히 집을 리모델링하는 개념이 아닌 고령·장애 등을 고려해 맞춤형 보금자리를 선물하고 있어서다.
참전유공자들은 무엇보다 국가유공자로서 예우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에 보훈부는 올해 예산과 협력기관 등을 대폭 늘려 1000여 가구의 국가유공자 집을 개선할 방침이다.
우리 군이 2009년부터 펼친 6·25 참전유공자 출신학교 명패 증정행사도 참전유공자들이 손에 꼽는 예우였다. 6·25참전유공자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172개 학교에 명패가 증정됐다. 이 중 초등학교는 102개교, 중학교는 9개교, 고등학교는 59개교, 대학교 2개교다. 참전유공자들은 자신과 가족에게는 자긍심을, 후배들에게는 애국심을 심어 줬다고 평가했다.
“후손들 평화의 이유 잊지 않길…”
인터뷰가 끝날 무렵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들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다. 자신들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였다. 그들은 입을 모아 영웅을 예우하는 문화가 또 다른 영웅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수많은 동료의 희생 덕분입니다. 저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후손들도 우리의 희생과 노력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유와 평화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이를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박정일 참전유공자)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경험한 우리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후손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의 희생을 잊지 않는다면 그들이 누리는 평화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처럼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기를 바랍니다.”(박황규 참전유공자)
“저는 주변인에게 항상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싸웠던 이유, 우리가 겪었던 고난. 그들이 지금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우리와 우리 동료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전부입니다.”(홍종희 참전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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