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핵세계의 무법자와 힘에 의한 평화

입력 2024. 05. 29   16:53
업데이트 2024. 05. 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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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러시아와 북한은 핵세계의 무법자인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핵 사용 위협을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5월에는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벨라루스군에 핵 운용 훈련까지 시켰다. 러시아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과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서 탈퇴했고, 상대국의 정찰위성을 파괴하는 우주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험용 위성(Cosmos-2553)도 발사했다. 우주조약(1967)까지 파기할 기세다. ‘불패의 핵 강국’을 지향하는 북한의 핵 행보도 매우 거칠다. 평양은 ‘자위적 핵 보유법’(2013)과 ‘핵무력 정책법’(2022) 제정으로 핵 억제를 넘어 실제 핵 사용을 전제로 하는 ‘핵전투’ 전략을 선포하고 ‘대남 선제 핵 사용’을 위협해 왔다. 유럽과 한반도의 핵 긴장 고조는 당연한 귀결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29일 국정연설에서 “러시아 전략핵들은 서방 목표를 강타할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고 밝히면서 ‘전술핵 선제 사용 문턱’도 낮췄다. 프랑스가 3월과 5월에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언급하자 러시아는 지난 21일 나토를 겨냥한 핵 공격 훈련으로 화답(?)했고, 프랑스도 22일 라팔 전투기들로 모의 핵탄두를 장착한 ASMPA-R 공대지 순항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 프랑스는 약 300기의 핵무기를 4척의 핵추진잠수함, 전략공군 전투기 40여 대, ‘샤를드골’ 항모에 속한 해군항공대 전투기 10여 대 등에 분산 운용 중이다.

푸틴의 핵 위협 의도에 관해선 다양한 분석이 있다. 서방의 공포감을 자극해 우크라이나 지원이나 개입을 차단하는 엄포용, 서방의 지원의지를 가늠하는 탐색용, 집권자의 정치적 위기 돌파를 위한 내치용, 상대를 제약해 전장을 주도하겠다는 강압용, 향후 핵 사용을 정당화하는 명분축적용 등이다. 이런 분석들은 북핵에도 유효하지만, 한국은 2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비중 차이는 있지만 모든 분석이 정답일 수 있기에 특정 분석만을 맹신하는 아전인수는 금물이다. 즉 “순수 엄포용 또는 내치용이므로 실제 핵 사용 가능성은 없다”는 단언은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북한이 한국을 ‘평정 대상인 적대국’으로 선언한 것은 실제 핵 사용을 위한 사전 포석일 수 있다.

둘째, 실제 핵 사용이 아닌 핵 강압도 엄중한 안보 위협이다. 그래서 지난 24일 미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NBC 방송에서 북한이 미 대선을 앞둔 10월 고강도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10월 도발설(October surprise)’을 언급한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북한은 5월 26일 자 국방성 담화를 통해 한미군의 북방한계선 인근 정찰·순찰활동을 ‘해상주권 침해’로 비난하면서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핵 강압을 앞세우고 무력으로 서해의 현상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을 일깨워 주는 사건들이다.

요컨대 무법자들이 가진 핵무기는 실제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상대 국가들엔 심대한 안보 위협이다. 그래서 ‘힘에 의한 평화’가 중요하다.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두고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알아야 할 평범한 사실이 있다. ‘힘에 의한 평화’든 ‘협상에 의한 평화’든 모두가 전쟁 예방을 목적으로 하며, 협상이나 외교에만 기대는 평화는 상대의 자비에 의존해야 하는 데다 상대방 변덕에 따라 언제든 깨진다. 협력과 설득은 중요한 정책 수단이지만 일단은 ‘힘에 의한 평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 핵 무법자와 상대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강력한 국방력이 확고한 도발 응징의지를 뒷받침할 때 그 도발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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