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서양세계의 지적 뿌리를 찾아서 - ⑪ 17세기 과학혁명 (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지식 확장 한계
르네상스 시대 선각자들에 의해 지식 쌓이자
지적 탐구 새 방법론으로 귀납법·연역법 등장
베이컨 ‘경험론’, 사실 관찰·연결로 진리 도달
데카르트 ‘합리론’은 명제를 끌어내 분석·증명
인간을 관찰·생각의 힘 지닌 자아로 끌어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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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류사회의 화두는 단연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와 같은 첨단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이것이 향후 우리에게 미칠 영향 및 파장에 관한 이야기다. 또 가끔 전해지는 저 멀리 우주 속 일명 ‘라그랑주 점’에 안착한 최첨단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에서 전송되는 심연(深淵) 은하계의 신비한 사진은 우리를 ‘황홀함’과 동시에 ‘당혹감’ 속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은 어떻게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이러한 과학기술적 발전을 가능케 한 중요한 지성적 사건으로 17세기 서구에서 일어난 ‘과학혁명’을 꼽을 수 있다. 유럽 근대 산업사회가 발현하는 데 자양분이 된 정신적, 과학적 진보가 바로 이 시기에 이뤄졌다.
실제로 16~17세기 서양에서는 위대한 천재가 잇달아 등장해 지구와 하늘에 대해 새로운 설명을 제시했다. 이때 만개한 과학 분야의 발전은 세상과 우주에 대한 기존 사고 틀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대표적으로 갈릴레이와 뉴턴은 우주가 신의 섭리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사람들은 신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정보를 수집 분석한 후 이를 근거로 판단을 내렸다. 바야흐로 인간 이성(理性)의 시대가 그 문을 활짝 연 것이었다. 저명 과학사가인 헤르베르트 버터필드(1900~1979)는 “과학혁명은 유럽 역사상 그리스도교 출현 이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성적 자각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르네상스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필두로 여러 선각자에 의한 지적 축적의 ‘선행(先行) 과정’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17세기 전반기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과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정립해 제기한 지적 탐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영국 제임스 1세 시대 대법관이자 과학철학자인 베이컨은 지식 획득의 새로운 방법으로 실험과 경험을 중시한 귀납법을 제시했다. 그는 경험주의 철학의 토대를 세우고, 이를 무기로 정의와 명제 중심 사고에 빠져 있던 중세 스콜라철학 및 신학에 도전장을 던졌다. 구체적인 개별 사실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조사해 경험적 지식을 습득한 후 이를 바탕으로 일반화된 명제에 도달하는 방법인 귀납법(歸納法)은 중세 스콜라철학의 접근 방식과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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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은 이러한 방법론을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기관(Organum)』을 반박하는 의미로 『신기관(Novum Organum)』이라 명명한 자신의 저술에서 피력했다. 그렇다면 고전 그리스 시대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한 연역법인 삼단논법이 있었는데, 왜 베이컨은 굳이 귀납법을 창안했으며, 이는 왜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평가됐을까?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로 전개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은 결론 내용이 이미 전제에 포함돼 있어 새로운 지식의 확장을 가져오기 어려웠다. 이는 성경 말씀처럼 진리 또는 사실로 여겨지는 명제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얻어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모르는 현상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그 한계가 분명했다.
이러한 점을 깨달은 베이컨은 근대인보다 아는 것이 적었던 고대인 발언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고대인이든 근대인이든 역사 속 현자(賢者)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 무턱대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봤다. 베이컨이 생각한 진리는 실제 관찰을 통해 검증된 사실이었다. 그는 모든 선입견을 배제한 상태에서 면밀히 관찰해 결과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사실을 빠짐없이 수집해 하나의 보편적 틀로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고대와 중세에 ‘아는 것이 선(善)’이었다면, 근대에서는 바로 ‘아는 것이 힘(knowledge is power)’이었다.
17세기에 접어들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그동안 유지돼온 자연의 일방적인 우세가 변하기 시작했다. 베이컨이 관찰을 통한 자연법칙의 발견 가능성을 외치면서 이제 자연은 인간에 대한 폭압자라기보다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했다. 인간은 법칙 발견으로 자연 특성을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그 자연을 자신의 삶에 맞도록 변형시킬 수 있었다. 이제 자연을 지배하려면 그 자연에 힘껏 가까이 다가가서 알아야만 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언명은 바로 17세기 과학혁명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베이컨에 이어 새로운 탐구 방법론을 내세운 인물은 프랑스 출신인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였다. 잘 알려진 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선언에서 엿볼 수 있듯 데카르트는 주저인 『방법서설(Discourse on Method)』(1637)에서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 최후에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이 역시 모든 것이 신의 은총과 섭리로 조화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중세 사고체계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외침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단언으로 그는 인간을 신에게 예속된 수동적 존재로 본 중세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소크라테스의 회의(懷疑)가 그리스철학을 탄생시키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의가 중세철학의 발단이 됐다면, 데카르트의 회의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을 제시했다.
베이컨의 귀납법에 대응해 데카르트의 사고 방법론은 흔히 ‘연역법(演繹法)’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머릿속 생각을 통해 명제를 이끌어낸 후 의심을 거듭하는 논리적 추론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었다. 베이컨이 제시한 경험론이 외부 사실을 먼저 관찰하고, 그 사실들을 연결하는 이론을 찾는 ‘종합의 방법’인 반면 데카르트가 정립한 합리론(rationalism)은 명제를 먼저 제시하고 이를 설명해 나가는 ‘분석의 방법’이었다. 무엇보다 데카르트는 다양한 유형의 자연현상이나 지적 조류에 앞서 인간의 정신 자체를 철학적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모든 지식이 유래하며 심지어는 신의 존재마저 증명할 수 있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지식 추구의 시종(始終)에 준하는 사고(思考) 원리를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철학이 인과론적이었다면 중세에 풍미한 그리스도교의 사고방식은 신의 심판과 세상 종말로 향하는 목적론적이었다. 그런데 17세기 자연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자연현상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라 설명되지 않고 수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다. 갈릴레이의 말처럼 “자연이 수학으로 쓰인 책”이라면, 중세사회를 지배한 단일 진리서인 성경의 가치와 권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추세에 불을 붙인 사상가들이 바로 인간을 ‘관찰과 생각의 힘을 지닌 자아’로 밀어올린 베이컨과 데카르트였다. 이들의 방법론을 기초로 잔존하던 중세의 지적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역할은 다음 회에서 살펴볼 일군의 천문학자들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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