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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의 재발견 모퉁이 돌아 ‘골목대장’을 만났다

입력 2024. 05. 23   16:33
업데이트 2024. 05. 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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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골목 속으로 - ⑨ 대구 ‘명품 길’ 방랑기

원조 동인동 찜갈비
신발 수두룩 대안동 수제화
빠라바라바라밤 인교동 오토바이
옛 번화가 북성로 공구
지글지글 연탄불고기

전국구 브랜드 탄생시킨 ‘뼈대 있는’ 소비 도시 
‘대구의 명동’ 동성로엔 대관람차
대형 카페 즐비한 ‘앞산’ 투어는 하루 모자라
‘막창’ ‘단팥빵’ 떠오르다면 옛사람
‘무설탕 떡볶이’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 보러 가볼까

 

앞산의 한 카페에서 보이는 대구 전경
앞산의 한 카페에서 보이는 대구 전경

 


대구의 순우리말은 ‘달구벌’. 큰 마을, 넓은 평야라는 뜻이다. 
실제로 대구는 서울보다 면적이 더 크다. 
우리나라엔 1개의 특별시(서울)와 
6개의 광역시(부산·대구·광주·인천·대전·울산)가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번화했던 도시는 서울을 빼면 대구가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반일항쟁의 시발점이었으며, 기독교 등 신문물의 유입도 빨랐던 곳이다. 
주체적이면서도 개방적인 세련됨이 유구한 역사와 함께 대구를 관통한다. 
이런 이유로 대구는 갈 곳도, 맛집도 많다. 당연히 골목도 많다. 
긴 역사가 차곡차곡 층을 이뤄 ‘샌드위치’가 됐다. 
흔한 샌드위치가 아닌 호텔 주방장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유일무이한 샌드위치가 바로 대구의 골목이다. 
다양한 맛으로 오감을 자극할 준비가 끝났다면 대구로 향해 보자. 
명품 골목여행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오랜 시간의 내공, 화려함과 세련됨

2021년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일 때 자전거로 전국을 돌았다. 경북 경산에서 대구로 넘어가면서 대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때 벅차오르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마다 여행 취향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자연보다 도시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스팔트에 아파트만 가득한 시멘트 도시를 좋아한다는 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소시민들의 흔적, 골목이나 기사식당, 작은 카페 등을 좋아한다. 잘 조성된 공원에서 긴장을 풀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보는 것도 즐겁다.

대구 약령시장 골목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종일 자전거에 시달린 종아리로 절뚝절뚝 동성로 일대를 걸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대구의 번화가는 충분히 화려하고 신기했다. 선남선녀들의 옷차림은 세련됐다. ‘대구가 이 정도였어?’라고 할 만큼 골목골목의 모든 것이 흥미롭고 활기가 넘쳤다.


문화적 욕구가 남다른 대구 

대구에는 뮤지컬·연극·콘서트 포스터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이 많은 공연장을 채울 관객이 있다는 건가?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구만큼 공연이 많은 도시도 없다. 그만큼 문화에 관한 관심과 소비가 강렬한 도시라는 건데, 대구만의 여유가 궁금하고 또 놀라웠다. 강연이나 북콘서트 때문에 전국 여기저기를 다니지만, 대구만큼 반응이 뜨거운 곳도 없었다. 

대구 국제공항에서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한 대, 두 대 구름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샘솟는다.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하는 도심의 모노레일과 수많은 한옥카페는 참으로 멋스러운 대조다.

기발한 식당 이름과 배꼽을 잡게 하는 문구들도 흔하디흔하다. 손님을 잡아 두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신도시에 갑자기 들어선 가게들과는 사뭇 다른 감성과 멋이 대구의 골목골목을 흐른다. “참 세련되게 농익은 도시야.” 골목을 거닐다 보면 대구가 궁금해지고, 대구 사람들을 알고 싶어진다.

 

 

근대골목의 모습.
근대골목의 모습.



전국구 프랜차이즈의 성지 

“그게 대구에서 시작된 거였어?” 치킨부터 떡볶이까지, 수도권을 꽉 잡은 전국구 브랜드 중 대구 출신이 많다. 대구는 뼈대 있는 ‘소비도시’다. 갑자기 땅값이 오른 졸부의 도시들과는 근본이 다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경주에서 대구로 도읍지를 옮기려 했을 정도로 번성했으며, 1990년대까지 한국 섬유산업의 메카였다. 당연히 자부심도, 눈높이도 다르다. 지금의 대구는 수준 높은 대구 소비자들의 결과물인 것이다.

커피를 잘 내리는 바리스타나 질 좋은 스테이크 고수가 대구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서문시장에서 맛본 칼국수는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고, 동성로에서 먹은 ‘짜장면 팥빙수’는 즐거운 충격 그 자체였다. 짜장인 줄 알았는데 팥이었고, 단무지로 보이는 건 탱글탱글 망고였다. 설탕은 단 1g도 들어가지 않은 윤옥연할매떡볶이는 또 어떻고. 단짠단짠이 아닌 매운맛으로만 승부한 소스라니. 처음엔 너무 맛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그 떡볶이를 먹기 위해 일부러 서울에서 KTX를 타고 대구로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세련됨의 극치, 앞산 카페 골목 

대구 골목 중에서도 앞산의 카페 골목을 좋아한다. 대구 앞산은 엄연한 고유명사다. 앞산엔 대형 카페들이 즐비한데, 카페투어만 해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카페들은 작품이라 해도 좋을 만큼 공을 들였다. 날씨가 화창하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앞산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시원하게 펼쳐진 대구시내가 그야말로 장관이다. 

동성로는 대구의 명동이다. 대구에서 제일 비싼 노른자 땅이면서 옷 잘 입는 멋쟁이들이 집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관람차는 동성로 중심에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도심형 테마파크 옥상에서 동그랗고 거대한 관람차가 천천히 돌아간다. 덕분에 동성로 전체가 놀이공원처럼 보인다. 그 누구라도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 누가 이런 곳에 관람차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아이디어가 참 천진하다.

동성로처럼 역사가 오래된 번화가에서 붐비는 곳은 가성비라든지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오랜 검증의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가게들이기 때문이다. 허름한 간판의 중국집이라면 머리가 하얗게 센 요리 고수가 숨어 있을 확률이 높다.


수많은 골목에서 길을 잃어 보자 

도대체 뭘 먹어야 하지? 대구에서는 메뉴를 정하기가 특히 어렵다. 그만큼 맛집이 많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대구 단팥빵을 최고로 치는데,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비슷한 빵들을 많이 팔지만 과거 대구의 단팥빵은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빵에 진심인 여행자라면 대구 골목투어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

빵뿐일까? 원조 찜갈비를 먹을 수 있는 동인동 찜갈비 골목, 수제 신발과 특색 있는 카페가 수두룩한 대안동 수제화 골목, 가수 김광석을 기리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 조선시대엔 말이었으나 지금은 오토바이가 장사진을 이루는 인교동 오토바이 골목, 동성로 이전 최고의 번화가였던 북성로 공구 골목, 역시 북성로에 자리한 연탄불고기 골목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골목이 있다. ‘대구’ 했을 때 막창만 떠오른다면, 꼭 다시 한번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전국구 수준의 맛집, 세련된 카페, 오랜 역사의 노포집과 카페가 어디든 넘쳐난다. 국가대표급 골목을 거느린 도시가 바로 대구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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