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년 개항한 칠레 제1의 항구 도시 해군사령부 위치…서민 모습 보여줘 산티아고, 박물관의 도시라 불릴 정도 코리아타운 교민 성실성으로 자리 잡아 노벨상 네루다 생가·집필 공간 둘러봐 국제해상방위전 참여 대양해군 위용
발파라이소항에 정박 중인 ‘2002 해군순항훈련함대’ 천지함과 광개토대왕함.
세계에서 제일 긴 나라 칠레. ‘2002 해군순항훈련함대’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목적지인 칠레 발파라이소항에 도착한 것은 11월 29일이었다.
너무 순탄한 항해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잔잔하던 태평양의 파도는 대양의 항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듯 심술을 부렸다. 내일이면 칠레에 입항할 수 있다는 희소식이 전해지던 날, 항해 처음으로 폭풍을 만난 것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조리실에서는 불도 피우지 못했다. 덕분에 그전까지 풍성하게 차려주던 식사와는 잠시 헤어짐을 통보하고 김밥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고생이 많으면 보람도 큰 법. 야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발파라이소항은 우리에게 더욱더 정답게 다가왔다.
휴양 도시 비냐시에 있는 해변.
비냐시에서 열린 국제해상방위전시회. 순항훈련함대도 행사에 참여해 ‘대양해군’의 위상을 높였다.
수도 산티아고의 산타루시아 언덕에 건립된 성.
발파라이소는 칠레 제1의 항구 도시다. 1536년 개항한 유서 깊은 도시로 해군사령부와 국회가 이곳에 있다. 이웃의 비냐델마르(비냐)가 세련된 휴양 도시로 다소 인공적인 모습을 지닌 데 비해 발파라이소는 서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칠레 사람 대부분이 언젠가는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입항 다음 날 찾아간 수도 산티아고는 칠레 인구 중 3분의 1이 사는 남미 제4의 도시다. 인디오 시대의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부터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까지 다수의 박물관이 있어 ‘박물관의 도시’라 불릴 정도다.
산티아고에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반가운 곳이 있다. 바로 파트로나투(일명 코리아타운). 주로 의류 상품을 다루는 상가로, 한국의 동대문시장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의 상권은 원래 아랍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우리 교민들이 진출해 특유의 성실성으로 차츰 시장의 주도권을 쥐어가며 350여 개의 가게를 활발히 운영함으로써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드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가 바람·여자·돌의 삼다(三多)로 유명하듯이 칠레는 ‘3W’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3W는 생활력이 강한 칠레 여자(Woman)와 포도주(Wine),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Weather)를 의미한다. 이중 칠레산 포도주는 해외에서 질이 좋기로 유명한 프랑스 포도주와 명성을 다툴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파블로 네루다의 흔적이 남아있는 기념관도 찾았다. 네루다는 칠레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외교관, 정치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칠레에는 그를 기념하는 곳이 다섯 군데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그가 태어난 생가와 해변에 있는 집필 공간 ‘이슬라 네그라’를 둘러봤다.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네루다 생가는 입장료를 내면 안내인이 한 명씩 붙어 설명해준다.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 중 택일. 일단 영어를 하는 안내인을 선택했다. 문제는 나였다. 국어를 존중하는 나는 안내인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말이 저 말 같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그저 알아들은 척 고개만 끄떡일 뿐이다.
특이한 형태의 카페도 방문했다. 발파라이소 시내를 둘러보다 들어간 카페. 아르바이트 학생이 주문받으러 왔다. 그런데 복장이 이상하다. 비키니 차림이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대화는 안 통한다. 아르바이트생은 스페인어만, 나는 한국어만. 20살이라는 것만 확실히 알았다. 손짓과 발짓에 아는 영어 단어 겨우 꿰맞춘 결과다.
순항훈련함대는 시내 호텔에서 열린 ‘국제해상방위전시회(EXPONAVAL) 2002’에 참여해 ‘대양해군’의 위용을 뽐내기도 했다.
나흘간 열린 전시회에는 우리나라와 개최국 칠레, 브라질·콜롬비아·멕시코·파나마·페루·우루과이·싱가포르·미국·영국·스페인 등 12개국이 참가해 해상 방위 전력을 선보였다. 당시 칠레는 해군 전력 강화를 위해 군함 도입(FF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각국의 로비가 매우 치열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광개토대왕함을 방문한 칠레 해군 기획참모부 FF사업단 일행은 우리 관계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관심을 보여 대한민국 방산 능력과 기술력에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29시간이 걸린다는 칠레. 순항훈련함대는 이곳에서 6박 7일이라는 긴 시간을 머물렀다. 절대 짧지 않은 기간. 우리의 시골 인심을 연상케 하는 순박하고 친절한 칠레인들의 모습, 일주일 전부터 음식을 준비했다는 교민들의 따뜻한 정성….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는 우리들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후일담 하나. 순항훈련함대가 떠나는 날 항구로 작은 배 한 척이 배웅나왔다. 배에 탑승한 ?은 칠레 여성들이 손을 흔들며 환송해 줬다. 이렇게까지 열정적인 배웅이라니. 나중에 전해들은 사연은 이러했다. 우리 수병들이 상륙했을 때 어떤 모임에 참석했고, 뛰어난 댄스 실력으로 좌중을 매료시켰다. ‘국제신사’로서 멋진 예절과 함께. 이에 반한 여성들이 순항훈련함대의 여정을 응원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육로를 이용해 페루까지 따라왔다고 한다.
산티아고에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생가.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폭풍 지나니 야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항구 '발파라이소' 눈 앞에
입력
2024.
05.
12
09:16
업데이트
2024.
05.
20
11:08
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⑤ 2002 해군순항훈련 -칠레
1536년 개항한 칠레 제1의 항구 도시 해군사령부 위치…서민 모습 보여줘 산티아고, 박물관의 도시라 불릴 정도 코리아타운 교민 성실성으로 자리 잡아 노벨상 네루다 생가·집필 공간 둘러봐 국제해상방위전 참여 대양해군 위용
발파라이소항에 정박 중인 ‘2002 해군순항훈련함대’ 천지함과 광개토대왕함.
세계에서 제일 긴 나라 칠레. ‘2002 해군순항훈련함대’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목적지인 칠레 발파라이소항에 도착한 것은 11월 29일이었다.
너무 순탄한 항해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잔잔하던 태평양의 파도는 대양의 항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듯 심술을 부렸다. 내일이면 칠레에 입항할 수 있다는 희소식이 전해지던 날, 항해 처음으로 폭풍을 만난 것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조리실에서는 불도 피우지 못했다. 덕분에 그전까지 풍성하게 차려주던 식사와는 잠시 헤어짐을 통보하고 김밥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고생이 많으면 보람도 큰 법. 야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발파라이소항은 우리에게 더욱더 정답게 다가왔다.
휴양 도시 비냐시에 있는 해변.
비냐시에서 열린 국제해상방위전시회. 순항훈련함대도 행사에 참여해 ‘대양해군’의 위상을 높였다.
수도 산티아고의 산타루시아 언덕에 건립된 성.
발파라이소는 칠레 제1의 항구 도시다. 1536년 개항한 유서 깊은 도시로 해군사령부와 국회가 이곳에 있다. 이웃의 비냐델마르(비냐)가 세련된 휴양 도시로 다소 인공적인 모습을 지닌 데 비해 발파라이소는 서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칠레 사람 대부분이 언젠가는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입항 다음 날 찾아간 수도 산티아고는 칠레 인구 중 3분의 1이 사는 남미 제4의 도시다. 인디오 시대의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부터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까지 다수의 박물관이 있어 ‘박물관의 도시’라 불릴 정도다.
산티아고에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반가운 곳이 있다. 바로 파트로나투(일명 코리아타운). 주로 의류 상품을 다루는 상가로, 한국의 동대문시장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의 상권은 원래 아랍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우리 교민들이 진출해 특유의 성실성으로 차츰 시장의 주도권을 쥐어가며 350여 개의 가게를 활발히 운영함으로써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드높이고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가 바람·여자·돌의 삼다(三多)로 유명하듯이 칠레는 ‘3W’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3W는 생활력이 강한 칠레 여자(Woman)와 포도주(Wine),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Weather)를 의미한다. 이중 칠레산 포도주는 해외에서 질이 좋기로 유명한 프랑스 포도주와 명성을 다툴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파블로 네루다의 흔적이 남아있는 기념관도 찾았다. 네루다는 칠레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외교관, 정치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칠레에는 그를 기념하는 곳이 다섯 군데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그가 태어난 생가와 해변에 있는 집필 공간 ‘이슬라 네그라’를 둘러봤다.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네루다 생가는 입장료를 내면 안내인이 한 명씩 붙어 설명해준다. 언어는 영어와 스페인어 중 택일. 일단 영어를 하는 안내인을 선택했다. 문제는 나였다. 국어를 존중하는 나는 안내인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말이 저 말 같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그저 알아들은 척 고개만 끄떡일 뿐이다.
특이한 형태의 카페도 방문했다. 발파라이소 시내를 둘러보다 들어간 카페. 아르바이트 학생이 주문받으러 왔다. 그런데 복장이 이상하다. 비키니 차림이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대화는 안 통한다. 아르바이트생은 스페인어만, 나는 한국어만. 20살이라는 것만 확실히 알았다. 손짓과 발짓에 아는 영어 단어 겨우 꿰맞춘 결과다.
순항훈련함대는 시내 호텔에서 열린 ‘국제해상방위전시회(EXPONAVAL) 2002’에 참여해 ‘대양해군’의 위용을 뽐내기도 했다.
나흘간 열린 전시회에는 우리나라와 개최국 칠레, 브라질·콜롬비아·멕시코·파나마·페루·우루과이·싱가포르·미국·영국·스페인 등 12개국이 참가해 해상 방위 전력을 선보였다. 당시 칠레는 해군 전력 강화를 위해 군함 도입(FF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각국의 로비가 매우 치열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광개토대왕함을 방문한 칠레 해군 기획참모부 FF사업단 일행은 우리 관계자들을 놀라게 할 만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관심을 보여 대한민국 방산 능력과 기술력에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29시간이 걸린다는 칠레. 순항훈련함대는 이곳에서 6박 7일이라는 긴 시간을 머물렀다. 절대 짧지 않은 기간. 우리의 시골 인심을 연상케 하는 순박하고 친절한 칠레인들의 모습, 일주일 전부터 음식을 준비했다는 교민들의 따뜻한 정성….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는 우리들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후일담 하나. 순항훈련함대가 떠나는 날 항구로 작은 배 한 척이 배웅나왔다. 배에 탑승한 ?은 칠레 여성들이 손을 흔들며 환송해 줬다. 이렇게까지 열정적인 배웅이라니. 나중에 전해들은 사연은 이러했다. 우리 수병들이 상륙했을 때 어떤 모임에 참석했고, 뛰어난 댄스 실력으로 좌중을 매료시켰다. ‘국제신사’로서 멋진 예절과 함께. 이에 반한 여성들이 순항훈련함대의 여정을 응원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육로를 이용해 페루까지 따라왔다고 한다.
산티아고에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생가.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