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도법 바로알기 - 무력충돌과 자연환경 보호
1949년 ‘제1추가의정서’에 따라
자연에 대한 전투 방법·수단 제한
필요성·비례성·예방조치 고려해 공격
국제조약 외 각국 야전교범 법적 효력
미, 작전시 적절한 보호조치 조항
유엔 국제법위·ICRC, 인식 전환 도와
생태계의 보고인 ‘한국 DMZ’
람사르 협약·유네스코 협약
평화시는 물론 전시에도 적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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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제법 학자들은 ‘전쟁’이란 용어 대신 ‘국제적 무력충돌’과 ‘비국제적 무력충돌’로 구분해 쓰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이 기사에선 ‘전쟁’ 또는 ‘전시’라고 표현) 희생자인 부상 군인, 병자·조난자, 포로, 민간인은 1949년 4개의 제네바협약에서 규정하는 보호 대상이다. 그러면 인간과는 별도로 ‘자연환경’ 역시 국제인도법의 보호 대상이 될까?
‘자연환경’은 인간이 사는 자연과 주위 상태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동식물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인간 역시 환경의 일부이며,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에 쾌적하고 건강한 자연환경 없이는 생존하기 힘들다. 역사적으로 전쟁 때마다 자연환경은 파괴됐다.
가령 ‘초토화작전’ 또는 중국의 ‘청야전술’은 전시 적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자, 식량, 자연환경 등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군사전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도 의도적인 자연환경 파괴가 이어졌다. 1975년 종식된 베트남전쟁 때는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라는 고엽제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공중 살포돼 정글을 황폐화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노출된 병사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1990~19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는 800개가 넘는 엄청난 유정(油井)을 불태움으로써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했다.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당시 유출된 원유는 독성을 가진 환경오염 물질로 남아 있다고 한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세르비아를 공습할 때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인체와 자연에 대한 방사성 피폭 논란을 불렀다. 학자들은 어떤 집단에 속한 인간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집단살해죄, 즉 제노사이드(Genocide)에 빗대 전시에 자연환경을 의도적으로 대량 파괴하는 행위를 ‘에코사이드( Ecocide)’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 전시 ‘자연환경’은 ‘1949년 8월 12일 자 제네바 제협약에 대한 추가 및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제1추가의정서)에 근거해 원칙적으로 보호받는다. 대한민국 정부도 이 조약에 가입(1982년 7월 15일 발효)했기 때문에 적용을 받는다. 제1추가의정서 제35조 3항은 “자연환경에 광범위하고 장기간의 심대한 손해를 야기할 의도를 가지거나 또는 그러한 것으로 예상되는 전투수단이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55조는 “보복의 수단으로서 자연환경에 대한 공격은 금지된다”고 규정한다. 위 규정을 정리하면 자연환경에 대한 전시 전투 방법 또는 수단은 무제한적인 게 아니다. 특히 무차별 공격은 금지된다. 군사적 필요성의 원칙, 비례성의 원칙과 예방조치를 취할 의무는 반드시 고려돼야 하며 자연환경이 민간인의 생명·민간물자와 관련될 때는 기존의 민간인 보호를 위한 관련 규정이 적용된다. 하지만 전시 자연환경이 무제한적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환경 공격이 군사적으로 필요하고, 자연환경 속에 군사목표물이 있다면 그것은 공격 대상이 된다.
국제조약 이외에도 법적 효력을 갖는 문서로는 각국의 야전교범(Field Manual)을 들 수 있다. 가령 미국 국방부는 ‘군사작전에서의 환경적 고려(Environmental Consideration in Military Operations)’라는 제목의 야전교범을 배포하고, 모든 군사작전 수행 때 발생할 수 있는 환경 훼손 우려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군은 모든 형태의 군사작전 수행 시 적절한 환경보호 조치를 적용할 것을 요구받는다. 여기엔 군사적 측면에서 환경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관련 법적 요구사항과 군사 프로그램 등의 이해를 들 수 있다. 미군의 야전교범은 21세기 환경이 갖는 전략상 의미를 설명함과 동시에 환경에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군사행동을 파악·예방하기 위한 방안과 군사행동으로 말미암은 환경 손해를 예방하고 완화시킬 적절한 수순을 언급한다. 또한 미군의 야전규범 부록은 관련 참고자료와 세부 서류양식, 군인이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목록 등을 수록하고 있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21세기 들어 채택된 다음 두 문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첫째, 2021년 유엔 국제법위원회는 ‘무력충돌 시 환경보호에 관한 원칙(Principles on the Protection of the Environment in Armed Conflict)’ 작업을 마무리하고 유엔총회에 보고했다. 둘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1994년에 초판을 발행했던 ‘무력충돌 시 자연환경의 보호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부분적으로 수정·보완해 2019년 새로 발표했다. 이 두 문서는 각 국가에 전시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이행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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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반도는 1953년 정전협정으로 설정된 휴전선과 비무장지대(DMZ)를 경계로 북한과 대치상태다. 정전 또는 휴전상태는 전시체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DMZ는 지구상에서 드물게 보전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지만, 그 존재는 정전협정에 따른 것이므로 무조건 보호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군사적으로 필요하다면 DMZ의 자연환경 훼손도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 정부가 가입한 1971년 습지 보호에 관한 람사르협약, 1972년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유네스코협약은 평화 시는 물론 전시에도 적용되므로 군작전 시 감안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자연환경은 국제인도법상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이지만 군사작전으로 말미암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볼 수도 있고, 합법적 군사목표물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교전자는 다른 여느 경우와 마찬가지로 군사적 필요성의 원칙과 비례성의 원칙을 고려하고 예방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닌다. 21세기 전쟁은 전자식 무기 개발과 사용으로 핀포인트 공격이 가능해짐에 따라 과거처럼 광범위한 자연환경 훼손은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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